칼 럼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사무총장 윤요셉 목사-003011.jpg 어떤 사람이 말씀을 보니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은 차지도 않고 뜨겁든지도 않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러므로 그는 그 의미를 알고자 어떤 목자를 찾아갔다. 이에 그 목자는 이것을 보면 알 수 있다며 한편의 영화를 보여주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넓은 사막이 펼쳐져 있었으며 그 사막의 한가운데로 군인들이 전쟁터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대머리를 한 남자와 여자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림이 세워져 있었고 그 그림 뒤로는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시작되는 곳에는 좁은 길이라는 푯말이 있었으나 그 길을 따라 기쁨과 소망과 겸손과 자유와 평화를 주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좁은 문이라는 푯말이 서 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낙원과 같이 좋은 곳이 펼쳐져 있었다.

 반면 왼쪽 길이 시작되는 곳에는 넓은 길이라는 푯말이 있었고 그 길을 따라서는 멋진 자동차와 좋은 집과 놀이동산과 나이트클럽과 술집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창녀들이 슬픔과 낙심과 교만과 억압과 두려움을 주는 음식들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넓은 문이라는 푯말이 서 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에는 사아 있을 때 자기의 욕심과 명예를 얻기 위해 서로 속이고 헐뜯고 싸우고 죽인 자들이 함께 모여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잠시 후 어떤 여자군인이 자기의 가족들과 함께 사막 길을 걷다 갈라지는 곳에 도착하자 모든 푯말을 읽더니 자기의 가족을 이끌고 왼쪽 길로 들어섰다. 그러므로 그 여자와 가족들은 그 길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아귀다툼을 하다 마지막에는 그 넓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또한 다른 여자군인들도 계속해서 왼쪽 길로만 들어섰다. 그러나 어떤 남자군인은 자기의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그곳에 도착해 모든 푯말을 읽은 후 오른쪽 길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 남자의 아내는 그 좁은 문 뒤에 있는 낙원 같이 좋은 곳에 가고는 싶었으나 다리가 약해서 잘 걷지를 못했다. 그러므로 그 남자는 아내를 부축하고 자녀들을 이끌고 그 좁은 길을 걸어갔다.

 그리하여 그 남자와 가족은 그 길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다 마지막에는 그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 낙원에서 도든 것을 즐기며 안식을 취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군인도 자기의 아내와 가족들을 데리고 그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푯말을 읽은 후 왼쪽 길로 가려다 발걸음을 멈추었다. 또한 오른쪽 길로 가려다가도 멈추었다. 그리고 그 갈림길에 그냥 주저앉았다. 잠시 후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좁은 길로 걷고 있는 자들을 다 죽이기 위해 날카롭고 번쩍거리는 칼을 들고 좁은 문으로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그 좁은 문에는 그 악한 자가 가지고 있는 칼보다 더 날카롭고 번쩍거리는 큰 칼을 가진 사람이 서 있었다.

 그러므로 그 악한 자는 그 좁은 문을 나오지 못했으며 그리하여 좁은 길에 있는 사람들을 한명도 죽이지 못했다. 결국 악한 자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넓은 문을 통해 나왔다. 그리고 그 길에 있는 창녀들의 옷을 벗겨 차례차례 칼로 베어죽이며 갈림길에 앉아있는 그 가족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므로 그 가족은 살육을 위해 날카롭게 마광된 그 칼을 보고 무서워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왼쪽으로 가려다 발걸음을 멈추고 오른쪽으로 가려다 멈추고 갈림길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므로 그 가족은 가만히 서 있다. 결국 그 악한 자의 칼에 맞아 죽음을 당했다.

 이제 영화가 끝난 후 목자를 찾아갔던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영화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사막과 갈림길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대머리를 한 남자와 여자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림이 있는 곳까지 갔다.

 그러나 왼쪽으로 가려다 발걸음을 멈추고 오른쪽 길로 가려다 멈추고 그냥 그곳에 주저앉았다. 그러므로 그와 그의 가족도 그곳에 가만히 서 있다 그 악한자의 칼에 죽음을 당했다.

 이와 같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믿는 자들은 자신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으로 가고 싶어도 스스로 멈추었다. 또한 믿는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처럼 그의 살과 피를 드리라 하면 죽음이 두려워 그것도 피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망으로 들어갈 헛된 세상도 좇지 못하며 또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일도 하지 못하여 그저 그 가운데 그대로 주저 앉아있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곱 교회시대 가운데 마지막 교회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 믿는다고 말하면서 한 발은 그리스도께 두고 다른 한 발은 세상에 담그고 있는 자들이 참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들이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자신이 받은 첫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자들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

 즉 주님과 세상에 대해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므로 자신의 깨끗한 마음을 드리고 있다. 그들은 또한 아버지의 뜻과 거룩한 육체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 대해 마음이 뜨거운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소망하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과 공동체의 거룩에 애쓰고 있다. 그러다 마지막 날에 그 좁은 문 앞에서 이렇게 행하며 그리스도를 증거 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앞날의 일이니 그때에 그리스도의 모든 십자가 군사들이 그 마지막 영적 전쟁에서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외침이니 그들은 바로 이 말을 하며 피를 흘릴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그 뜨거운 피가 자기의 말하는 것들을 정확히 증거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3:15).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칼럼 윤요셉 목사(지저스119 독도지킴이 사무총장, 본지 실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