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교수 칼럼
              무속인에게 맡겨진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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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간 나라경제를 걱정하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 그것은 한 재벌그룹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때문에 알려졌다. 외유중이든 그룹의 총수가 급거 귀국하는 모습에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광경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룹의 총수와 그룹의 재무관계에 대해서 압수수색을 받아야 할 만큼 어떤 심각한 비리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탈세나 착복, 유용, 아니면 리베이트나 비자금과 같은 것들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정작 이어지는 소식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그룹의 총수가 주식에 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입게 되었는데, 그것이 개인 돈이 아니라 회사를 담보로 자금을 끌어다가 투자한 것이 문제란다.

즉 주식시장에서 선물(先物)투자를 위해서 회사를 담보로 돈을 끌어다가 거액을 투자했다가 모두 손실처리 됨으로써 회사의 재무사정을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회사에 투자를 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데 더 걱정되는 것은 그룹의 총수가 주식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한 무속인의 말을 믿고 그가 하라는 대로 했다는 데 있다. 그것도 한두 푼이 아니라 수천억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일반인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이다.

그 거액을 회사를 담보로 빌렸고, 그것을 선물시장에 투자했다가 원금까지 모두 잃게 됨으로써 문제가 된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그만큼 손해를 끼쳤으니 주식에 투자한 모든 사람들에게 손해를 보게 한 셈이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을 생각하게 된다. 재계 3위라면 한국의 경제를 좌우할 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그룹의 총수가 한 무속인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선물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돈을 투자했다면 잃어버린 것으로 끝낼 수도 있겠지만 공적인 회사를 담보로 해서 거액을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서 투자를 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만일 그가 선물투자를 해서 이익을 봤다고 해도 그것은 불법이며 권한의 남용이고 공적인 재산을 개인을 위해서 유용한 것이다.

게다가 그룹의 회장이 젊었다는 데 더 안타까운 마음이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에서 그의 종교와 개인적인 의식을 공적으로 뭐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재계 3위의 그룹을 운영하는 사람이 한 무속인의 말에 따라서 투자를 한다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회사를 무속인의 점괘에 의존하여 운영한다는 말이 아닌가.

그 큰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속인의 점괘에 전적으로 그룹경영을 의존하고 있다면 과연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계획한다고 모두 그대로 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대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경영철학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전문 경영 참모진들에 의해서 계획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데 무속인의 한 마디 말에 의해서 경영되는 회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그 회사에 투자하고 있는 많은 투자자들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

한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가내수공업수준의 자영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용납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재계 3위의 그룹이라면 그 기업은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투자자 모두의 것으로 이미 공기업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경영자는 다만 회사를 경영할 수 있도록 위탁을 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회사를 잘 운영하여 이익을 남기고, 이익을 투자자들에게 가능하면 더 많이 분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마치 그것이 자신의 소유인양 자기 마음대로 쓰거나 운용한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고, 악한 일이다. 소자본을 투자한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갈 이익금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본주의의 기본이 흔들리게 된다.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자본시장에 대한 불신은 경제활동에 심각한 문제를 동반시키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은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되며 투자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업과 투자자 사이의 신뢰가 반드시 형성되어야 한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자본을 대고 기업은 그것을 잘 활용해서 많은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투자자들에게 이익으로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기본원리다. 한데 그 자본을 위탁받은 사람이 무속인의 말에 따라서 투자한다면, 그리고 손해를 끼친다면 어떻게 투자를 할 수 있겠는가.

이번 사건은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정말 큰 충격이다. 거대그룹의 총수가 자본을 운영함에 있어서 한 무속인의 말에 의존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다. 이 사건은 이 나라의 미래가 한 무속인의 말에 달렸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큰 충격이다.

우리나라의 평균 국민교육수준이 OECD국가들 가운데서도 현저히 높은 나라이건만 아직도 국민의 수준이, 아니 그룹총수의 수준이 무속인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이 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계획하고 이루어가야 하는 것인지. 앞이 보이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