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빈락도(安貧樂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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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 나온 후 3년 안에 집 사지 못하면 잘못 믿는 것입니다.”이러한 열망 때문에 한국교회에는 집사(?)들이 그리도 많은가 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이루어지는 영생(靈生)의복된 삶을 살기 위함인 것이다.

부자가 되고 자녀들이 일류 대학에 합격하고 불치병이 치유되는 것 등이 교회의 회원이 되는 절대조건은 아닌 것이다. 만일에 기독교인으로서 이것이 전제조건이 된다면 사업에 실패하고 대학에 낙방하고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등 어려움을 당하는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된다. 위와 같은 소원이 성취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의 신앙관은 어딘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혹 그러한 목적만을 위해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영험한 무속인을 찾아 가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곳을 찾아가면 최소한 행운의 말(fortune tell)이나 아니면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불행 예방책이라는 것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난을 분별없이 미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난이 결코 하나님을 잘못 믿은 죄나 저주는 아닌 것이다. 무한경쟁사회에서 어떤 이는 부자 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가난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약육강식 논리는 분명히 하나님 나라의 법칙도 아니고 정상적인 사회의 법칙도 아닌 것이다. 초대교회는 안빈락도 정신으로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삶의 핵심으로 삼고 유무상통하면서 범사에 감사하는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안빈락도라는 말은 조선시대 노계 박인로가 곤궁한 현실과 그 개선의 가능성마저 무산되고 마는 절망감과 갈등의 심정을누항사라는 시가집에서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경 하박국 3:17-18에서는 보다 더 영적인 차원에서 안빈락도하는 신앙인의 지혜를 볼 수 있다.

기독교인이라 자부하는 이의 진리가 가난으로 인한 갈등으로부터 자유케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에게 진리가 아니고 실리(失理)인 것이다. 성경은 부자들의 성공 사례담이나 출세를 위한 처세술 비법책이 아니고 참되고 행복한 삶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참 생명의 지혜서인 것이다.

나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실로 우주적 사건이라 말 할 수 있다. 어쩌다 태어나서 팔자 사납게 죽지 못해 산다고 한다면 이는 창조주 하나님을 망령되게 하는 참으로 두려운 어리석음인 것이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초연하게 안빈락도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높여 나아가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임을 확신한다면,

하나님께서는보시기에 심히 좋다!”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