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추노>,아들 독살시킨 패역한 조선땅..백성들의 치열한 삶 담아


 
       "세자 저하가 꿈꿨던 조선은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입니까?”
 KBS드라마 <추노>에서 송태하(오지호 분)가 던진 물음이다. 지난 11일 방송(제14회)에서 그는 함께 혁명을 꿈꾸는 무리들과 언쟁을 벌였다. 덮어놓고 세상을 뒤집고 보자는 이들을 향해, 죽은 세자가 바라던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였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다. 단지 권력을 쥐기 위함이 아니라, 어떤 세상을 꿈꾸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문제제기였다.
 
▲  소현세자가 꿈꾸던 조선을 만들고자 개혁의 칼을 뽑은 장군 송태하(오지호 분)  
 요즘 인기리에 방영중인 <추노>의 배경은 소현세자가 독살로 살해된 직후. 조선의 국왕이 남한산성에서 치욕을 당했던 병자호란 이후, 볼모로 잡혀갔던 그 세자와 관련된 이야기다. 지금 이 드라마에선 소현세자와 함께 ‘포로생활’을 했던 장군 송태하가 세자의 어린 아들을 지키고, 조선의 개혁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그런데 이 송태하란 장군이 무장의 꿈을 꾼 남자들이라면, 모두다 우상으로 섬기던 그런 ‘남자 중의 남자’였나 보다. 죽자고 달려들던 검객들도 그가 ‘송태하’라는 걸 알면 머리를 조아리니 말이다. 그러나 모든 남자들이 존경하는 그의 이마에는 ‘종 노(奴)’자가 새겨져 있다. 소현세자가 죽자, 권력싸움에 의해 노비가 된 것.
 
도망노비 신세가 된 송태하. 그리고 그를 쫓는 추노꾼 '이대길'(장혁 분) 패거리. 쫓고 쫓기고, 얽히고 엉킨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전체 줄거리다.
 
어쨌든 그런 송태하가 이미 소현세자는 죽고 없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며 그를 따르던 이들과 다시 뭉쳐 혁명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다들 소현세자가 꿈꿨던 세상을 구체적으로는 모른 채 혁명에만 관심이 쏠린 것. 8년간 그의 옆에서 원대한 꿈을 꿨던 송태하, 그는 혁명의 단꿈에 젖은 이들에게 찬물을 끼얹는다.

“누가 권력을 잡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생각을 갖고 혁명을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세자 저하가 꿈꿨던 조선은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입니까?” 
 
소현세자의 볼모길은 조선의 기회
소현세자, 그가 바라던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이었을까?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장희빈이나 연산군처럼 역사 드라마의 단골 주제는 아니지만 이들의 삶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의미도 있으며 무대도 드넓다”고 소현세자를 소개했다. 그런데 이 소장은 그의 저서 <조선왕독살사건>에서 소현세자의 일생을 그리며 청나라로의 볼모길이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소현세자에게 북방 길은 분명 위기였으나 조선으로서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중국에서조차 이미 끝나 가는 성리학을 금지옥엽처럼 모시는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사고방식을 깨뜨리고, 또한 국제 정세는 명분이 아니라 힘에 의해 좌우된다는 현실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311쪽)
 

▲ 소현세자(강성민 분). 아담 샬의 회고록에 의하면, 그는 "성서는 마음을 닦고 덕을 기르는 데 적합하다고"말했다고 전해진다.

 소현세자의 볼모길이 조선으로서는 기회였다는 해석이다. 당시 조선땅은 성리학을 명분삼아, 권력을 잡은 이들이 정적을 제거하고, 민중들을 수탈하던 때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이미 양반층은 그 존재의 이유를 상실했음에도, 그들은 그럴수록 더 성리학을 굳게 붙들고, 알량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조선의 썩어가는 현실과는 달리, 국제 정세 판도가 바뀌는 한복판에 소현세자가 가는 것이니, 꼭 슬퍼할 일만은 아닌 것이다. 소현세자가 그곳에서 부국강병을 위한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국내에서는 소현세자를 왕으로 추대하는 일 따위로 논쟁이 일어났지만, 그는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북경에 있었다.
  
예수회선교사 아담샬과의 교제
중요한 사실은 여기서 아담 샬(Adam Schall)과 교제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새로운 사상과 문물로 세례를 준 아담 샬은 예수회 선교사. 몇몇 기독교 사학자들도 이러한 기록을 놓치지 않았다. 김양선은 <한국기독교사연구>(1971)에서 “병자호란때 인질로 잡혀갔던 소현세자는 북경에서 제스잍선교사 아담 샐과 친교를 맺고 인조 23년(1645) 귀국할 때 주교연기(主敎緣記), 진복성전(眞福性詮), 주제군징(主制群徵) 등의 천주교 교리서를 얻어가지고 천주교 신자인 명조의 환관 수명을 동반 귀국”하였다고 적었다. 이들의 만남을 ‘개신교 이전의 한국 기독교 역사’로 본 것이다.
 
실제로 소현세자는 아담 샬의 거주지와 남천주당을 찾아 선교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치욕적 역사를 떠안은 볼모살이 소현세자가 그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 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이들의 만남을 지켜 본, 한 신부의 기록은 그들의 사이를 잘 말해준다.
 
“순치 원년(1633)에 조선 국왕 인조의 세자는 북경에 볼모로 와서 아담 샬 신부의 명성을 듣고, 때때로 남천주당을 찾아와 천문학 등에 대해서 살펴 물었다. 샬 신부도 자주 세자 관사를 찾아가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깊이 사귀었다. 샬 신부는 거듭 천주교가 정도임을 말하였는데, 세자도 자못 듣기를 좋아하며 자세히 물었다. 세자가 귀국하자 샬 신부는 자신이 지은 천문, 산학, 성교정도 서적 여러 가지와 여지구(지구의), 그리고 천주상을 선물로 보냈다.”<정교봉포(正敎奉褒)>
 
선물을 받은 소현세자는 “서로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태어난 우리가 이국땅에서 상봉하여 형제와 같이 서로 사랑해 왔으니 하늘이 우리를 이끌어 준 것 같다”며 감사의 편지로 답했다. 이들의 우정이 얼마나 돈독했는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소현세자 "조선에 신부(선교사) 보내달라"… 백성들 위해서

▲ 독일 선교사 아담 샬

이덕일 소장은 “아담 샬이 조선에 천주교가 전파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자, 신부를 대동하고 귀국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해 아담 샬을 놀라게 했을 정도로,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었다”고 세자를 평가했다. 그가 꿈꾸었던 조선이 어떤 나라였는지를 짐작케 한다.(물론 당시는 중국도 신부가 부족한 때였기에, 아담 샬은 신부 대신 천주교 신자인 환관과 궁녀들을 함께 보낸다)
 
한편 <한국교회사>(1992)의 저자 이영재 교수는 이 때 “아담 샬이 선물한 물건들 가운데 천구의와 천문서 등 서양 물건들은 받아 가지고 왔으나 천주상과 성교정도(聖敎正道) 등 천주교에 관한 서책과 물건은 후에 선교사를 보내줄 것을 부탁하면서 사양하였다”고 적었다. 여러 교회사가들도 이러한 의견을 따르고 있는데, 어느 것이 정확한 해석인지는 알 수 없으나 소현세자가 천주교 사상을 조선에 도입하려는 데에 적극적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인질로 끌려가 8년만에 돌아온 세자가 가져온 물건에 서양서적과 천주교 물품이 있다니 “사악한 학문에 혼까지 팔아버렸다”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를 지은 건국대 신병주 교수는 “당시 소현세자는 국가 경제력 회복이나 백성생활에 유용하다면 다양한 사상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었다며 “서학을 수용한 것도 백성들의 삶에 유용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아들 독살시키는 극악무도한 조선땅에서 버려진 기독교의 씨앗 
그러나 백성들을 살리는 부강한 조선을 꿈꾸며 귀국했던 소현세자는 결국 두 달 만에 죽어버린다. <인조실록>에는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라고 독살설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덕일 소장 역시 “시신이 까맣게 변하거나 눈, 코, 귀 등에서 피가 나오는 것은 독약을 먹고 죽은 사람의 시신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며 독살설을 확신한다. 권력에 눈이 멀어, 자신의 아들을 독살시키는 극악무도한 조선에서는 기독교 사상을 싹 틔울 수 없었던 것일까?
 
결국 소현세자가 꿈꿨던 개혁의 나라, 개방의 나라는 사라지고 만다. 천주교 사상을 갖고 왔던 청나라의 환관들도 사신들과 함께 돌아가 버렸다. 조선은 그의 뜻과는 전혀 다른, 반대의 나라로 흘렀다. 국교가 주자학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회복불능의 나라가 됐다.
 
<추노>는 이런 절망적인 운명에 처한 조선땅을 살아내는 인간 군상들의 삶을 그린다. 특히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나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음을 안 ‘언년이’, 사당패에서 13살때부터 몸을 팔다가 추노꾼들과 합류하는 ‘설화’, 선대에 갚지 못한 빚 때문에 노비로 팔려 양반에 대한 분노를 쌓는 ‘업복이’, 권력가의 딸이지만 뇌성마비로 괴로워하는 ‘이선영’ 등, 시대적 모순이 낳은 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담겼다.
 

▲ 초복이(민지아 역) 아비는 겨울에 얼음 가지러 강에 갔다가 빠져죽고, 어미는 주인 손에 다른 노비와 혼인하여 따로 나가 어릴때부터 혼자다. 왼쪽뺨의 '종 노(奴)'자가 선명하다.

이들의 고통은 소현세자의 죽음을 더 안타깝게 한다. 과연 소현세자가 꿈꿨던 조선은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였을까? 권력의 편이라 비판받는 한국 교회가 곱씹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