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희생자 장례예배 설교 "한국교회 중산층 길 가지 않아야"

 이상림 양희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 씨 등 철거민 5명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례예배가 순천향대학병원 장례식장 4층에서 유족과 손인웅 목사(한목협 회장)를 비롯한 교계 목회자와 성도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한국교회봉사단을 비롯한 종교계의 적극적인 중재 노력으로 사태를 해결하고 이날 기독교 주관으로 장례예배를 치룬 것이다. 사태 발생 355일만이다. 특히 유가족과 재개발조합장이 한 교회를 출석하고 있어서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국교회봉사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 예수살기, 하나누리이 주관한 예배에서 한국교회봉사단 단장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유가족들에게 임하기를 기원했다.

 

 오 목사는 특히 43년간 부산의 빈민가에서 철민들과 함께 목회를 한 부친 오상진 목사의 사역을 소개하면서 지금은 강남의 대형교회를 목회하지만 사역의 정신을 그곳에 두고 있다고 밝히면서 유족들을 위로했다. 사랑의교회는 그동안 재개발지역의 단전단수된 가정을 후원하는 등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오 목사는 특히 한국 사회의 심각한 갈등구조를 언급하면서 “한국 교회는 중산층 지향하는 것이 아닌, 중보지향적, 복음지향적 길, 한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선한사마리아인의 길을 걸어야 한다.”며 예수의 사랑으로 세상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며 "거룩한 중보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마땅히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더불어 함께 하는 삶, 혼자 껴안는 상처는 곪지만 함께하는 상처는 꽃이 핀다."고 말했다.

 

 예상치 않은 일도 발생했다. 방인성 목사(뉴스앤조이 이사장)가 갑자기 5분여 동안 사랑의교회 예배당 건축을 중단하라는 발언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참석자들 중에는 “용산참사 희생자 장례예배에서 그런 발언을 한 것은 유가족들이나 참석자들에게 큰 실례를 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한국교회봉산단 대표회장 김삼환 목사의 역할도 컸다. 지난해 6월부터 사태 해결에 나서면서 유가족 자녀 학비지원, 물품 지원을 했고, 장례비용 5억원을 기독교계가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할만큼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보이지 않게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이번 용산참사사태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한국 교회가 세상의 화해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대를 갖게 한 것도 세상으로부터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오정현 목사 설교 전문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와 슬픔을 보시고 치유와 회복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상처와? 슬픔을 하나님께 올려드림으로 회복과 위로를 받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금 이 자리가 위로와 긍휼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상처를 치유하시고 슬픔을 위로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린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기듯이 “위로의 주님 품에 안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담하시고 우리의 모든 인생의 짐들을 대신 지신 분이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가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 공동체는 세상의 고통과 그 고통에 대한 사람들의 아픔을 중재하는 역할을 해야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공동체가 형성되는 곳마다 긍휼이 생겨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 속에 흘러 넘치는 사랑과 긍휼의 에너지 때문에 오늘 유가족을 포함하여 우리 사회의 상처받고 고통하는 사람들이 위로와 치유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독교가,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웃의 아픔과 상처를 치료하는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해야 합니까? 그것은 거룩한 중보자의 삶을 사는데 있습니다. 거룩한 중보자의 삶은 한 사람을 천하보다 낫게 여기는 예수님의 길에 서고, 그 길을 묵묵히 가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중보자로서 걸어야할 예수님의 길은 화해의 길이요, 통합의 길이요, 생명의 길입니다. 그 길은 세상의 냉대로 가슴속에 응어리와 상처를 안고 살았던 사마리아 여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영적인 갈증을 생명수로 채우는 길입니다. 그 길은 여리고 도상에서 강도 만나 쓰러져 죽게된 자를 자기 몸처럼 붙들고 그의 상처를 치유하며 그의 고통을 함께하였던 선한 사마리아인이 걸었던 그 길입니다. 강도 만난 자의 친구로서 유대와 사마리아간의 적대감을 해체시킨 선한 사마리아인의 긍휼도 한 생명을 귀히 여기셨던 에수님의 길 위에서만 가능하였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에수님의 길은 세상의 어떤 유혹이나 비난에도 묵묵히 걸어야할 중보자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중보자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죄인을 중보하고, 세상의 고통받는자를 중보하고, 세상의 무거운 짐을 지는 자들을 중보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사명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대계명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계명을 받은 자들은 중산층지향의 삶이 아니라 중보지향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이러한 중보의 삶에는 예수님처럼 마땅히 희생의 삶이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세상을 중보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상의 제물로 올려놓는 희생의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거룩한 중보자의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마땅히 값을 치르는 삶, 희생의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희생에서 세상을 치유하는 능력이 나오는 것임을 믿어야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중보를 통해서 진정한 위로와 회복으로 가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거룩한 중보가 우리가 이웃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예수님의 길이라면, 이것을 우리의 실제의 삶 속에서 이루는 길은 무엇입니까? 저는 “더불어 함께”하는 삶에서 현실적인 해답을 얻고자 합니다. 혼자서 껴안는 상처는 곪지만 함께 껴안는 상처에는 꽃이 핀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상처를 치유하고, 상처에서 벗어나려면 힘이 들더라도 함께하는 삶에 올인 해야합니다. 어떤 분들은 용산 참사가 치유 불가능 이라는 딱지를 붙인채 가슴 밑바닥에 내던져진 상처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상처도 예수님의 사랑 속에서는 꽃으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상처를 그대로 두면 곪아서 더 큰 상처로, 더 큰 아픔으로, 치유할 수 없는 자국을 남길 뿐입니다 그러나 그 상처를 더불어 함께하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감싼다면 그 상처는 오히려 자신과 이웃의 상처를 치료하는 상처받은 치유자로서 삶으로 꽃피울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용산에서 건물 철거 과정에서의 비극적인 참사로 인하여 유가족은 물론이요 우리 사회에 참사의 큰 상처와 아픔이 있습니다. 이 상처가 더 깊이 곪지 않고, 오히려 상처를 통해서 꽃을 피우는 비결은 그 상처를 “더불어 함께하는 사랑”으로 가열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겉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옷을 주며, 오리를 가자는 자에게 십리를 함께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더불어 함께하는 우리가 걸어야할 예수님의 길을 봅니다. 유족들의 깊은 상처와 아픔들이 우리의 함께하는 눈물과 사랑을 통해서 유가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위로하며 우리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생명의 꽃으로 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지저스타임즈 제휴사 뉴스미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