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프롤로그
"주님이 주는 생수는 어떤가? 영원한 기쁨이다. 영생하는 목마르지 않는 새수다"

  6-1 장한국 목사.jpg
  다니엘이 채식을 원하는 것은 오늘 날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을 말하느냐
? 하늘나라의 영생을 위한 열매를 맺는 삶, 그것이 우리의 삶이고 나의 양식으로 삼는 자가 된다면 다니엘이 채식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물은 뭐냐?, 요한복음 414절에내가 그에게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영원히 솟아오르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이 생수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마르지 않는 하늘에서 주시는 기쁨을 말하는데 예수님이 직접 피 흘려서 주시는 피도 주님이 주시는 물이다. 그리스도의 피 도 생수다. 희생제물인 소나 양의 피는 일시적으로 육체를 정결케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하다.

영원 속죄구원을 말한다. 사망권세아래서 목마른 죄인에게 예수그리스도의 피는 영원 속죄구원의 영생수이다. 예수님이 부어주시는 성령도 생수다. 하늘나라 영생을 위해서 하늘에 속한 기쁨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목마르지 않는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이 주는 포도주는 먹으면 기쁜가 안 기쁜가? 그것을 먹으면 기쁨이 있다. 포도주에 취하면 모든 것이 좋아 보인다. 왕이 주는 포도주는 깨면은 끝이다. 왕이 주는 포도주는 잠깐 동안 세상에 속한 기쁨으로 있다.

그러나 주님이 주는 생수는 어떤가? 영원한 기쁨이다. 영생하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다.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영원히 기쁨을 누리는 것이 좋은가? 잠시 기쁨을 누리는 것이 좋은가? 영원히 기쁨을 누리는 것이 좋다. 이제 답이 나왔으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채소, 즉 영생을 위한 열매 맺는 것을 우리의 삶의 양식으로 삶는 것과 또 생수의 물 즉 하늘에 속한 기쁨, 내게 첫째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이 주시려고 진리로 우리를 이렇게 인도해 가신다.

이런 것을 깨달으면 그 영광을 믿음으로 바라보면 그 기쁨이 굉장히 크다. 그 기쁨은 사라지지 않는 기쁨이다. 이런 기쁨을 갖는 것이 성령을 통해서 물을 먹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다니엘처럼 물을 먹는 것이다.

왕이 주는 진미가 율법에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못 먹겠다고 거부하고, 대신 씨가진 체소를 먹겠다고 했다. 그리고 포도주는 잠시 기쁨을 주는 것이지만 진정한 하늘의 영원한 기쁨을 주는 진리의 생수를 먹는 그런 중심으로 물을 원한 것이다. 오늘 날로 치면 예수님이 주시는 진리의 생수가 되는 것이다.

내게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가지고 열매 맺어서 열매 맺은 대로 하늘나라에서 내게 그것을 상으로 주시고, 그것을 내게 영광으로 입혀서 그 영광을 영원토록 누리게 한다면 그런 기쁨으로 산다면 자기 마음속이 천국이다. 영원히,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목마르지 않는 하늘에 속한 기쁨이 내속에 가득하다면, 그런 진리의 생수 같은 하늘에 속한 기쁨, 희락, 평강, 의로 하나님 중심으로 가득하면 즉 자기 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 진 것이다.

영원히,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평안이 내 속에 이루어지면 자기 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것이다. 채식과 물을 먹는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반드시 그들 속이 하늘에 속한 기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주시는 복으로 열흘간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다니엘과 세 친구의 영이 강건해 진 것이다. 그러므로 열흘 동안 채식과 물을 먹었을 지라도 육은 자동적으로 강건하고 아름답게 된 것이다.

(4)열흘 후에 당신의 처분대로 하소서(13)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다. 채식과 물을 먹는 것을 다니엘이 바라는 것이다. 다니엘은 멜살과 얘기할 때 믿음으로 받아가지고 있다. 다니엘이 열흘이 되기 전에 이미 실상으로 응답을 받아 가지고 있다. 믿음이 선재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다니엘의 믿음은 이미 순교의 신앙의 자리에 서 있다. 그러므로 노예 신분으로 왕명을 목숨 걸고 거부하지 않는가? 이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것이요. 곧 순교신앙을 말한다.‘열흘 후에 당신의 처분대로 하소서이것은 이미 물과 채식을 구하는 때에 믿음으로 받은 것이다.

(5) 더욱 아름답고 더욱 살찌게 보였다(15)

이것은 일반적인 이치로는 맞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으로 임한 다니엘과 세친구의 영이 강건해 진 것이다. 육신 몸은 영의 그릇에 불과하다.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만을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영이 강건하고 그러하니 육신은 자동적으로 강건하고 아름답고 살찌게 보인다. 그래서 은혜의 살을 찌운 것이다. 은혜로 윤택과 아름다움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다. 이성을 초원하고 이치를 초월하는 게 하나님이시다.

반이성은 아니다. 이치에 반하지는 않습니다. 과학에 반하지도 않고 윤리 도덕에 반하지는 않지만 과학에 매이지 않고 과학을 초월하고 윤리도덕에 매이지 않고 윤리도덕을 초월하고 초 이치로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다. 앞으로 환란 날에는 1260일 동안 비 한 방울 안 내린다고 하셨다(11:3). 그러니 기근이 극심할 것이요 더욱더 어려운 것은 적그리스도에게 절하지 않으면 짐승 표 666을 받지 못하고 그러면 무엇 하나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없게 된다. 영력으로 살고 육체의 체력에 의해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게 환란 날에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환란 날에는 주님에 의해서 승리하게하고 순교도 하게하고 먹지 않아도 견딜 수 있게 한다.

다니엘 2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의 치리 제 2년에 꿈을 꾸었다. 그의 꿈은 사사로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장차 이루실 일을 알게 하는 꿈이다. 그러나 그 꿈을 잊어버렸다. 하나님께서 잊어먹게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장차 이루실 하나님의 일을 담은 꿈이기에 오직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만 드러내시려는 주의 뜻에 기인한 것이다.

1장에서 다니엘이 채식과 물로써 신앙 정절을 지키면서 2년이 지나고 다 끝날 때 쯤 되어서, 117절에 다니엘이 모든 환상과 꿈들을 깨닫더라 했다. 그 때를 맞추어서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는 어떤 꿈이라도 어떤 환상이라도 다 깨닫게 하셨다. 즉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 왕은 꿈을 꾸었으나 잊어버리게 하셨고, 다니엘로 꿈들을 깨닫게 하셨다. 다 때도 하나님이 조율하시는 것이다.

(1) 다니엘이 꿈의 해석을 알려 주겠다고 함(16)
왕이 꿈을 꾸었으나 잊었으므로 번민하게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한다. 꿈의 내용과 해석을 알려하여 바벨론 술사들과 현자들을 불렀으나 허사였다. 그들은 그 꿈 내용도 해석도 알 수도 풀 수도 없었다. 느브갓네살 왕은 심히 노하여 바벨론의 모든 현자들을 죽이라고 명했으므로 아리옥이 다니엘과 세친구도 죽이려고 찾았다.

다니엘이 왕의 경호 대장 아리옥에게 지혜롭게 말하여 왕의 면전에 서게 되었고 그 꿈의 해석을 왕에게 알려주겠다고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