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가정예배를(소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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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 말씀 : 사도행전 31-4절 찬송가 521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갈 때 성전 미문에서 걷지 못하는 걸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했습니다. 몇 푼의 돈을 원했습니다.(3) 살다보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구걸하는 이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주목했습니다. 그에게 주목했을 때 위대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대의 눈빛을 가지고 우리를 바라보는 이들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주목하며 바라볼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2.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
말씀: 사도행전 35-8절 찬송가 191

베드로와 요한은 금과 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비록 재물을 많이 가진 부자는 아니었지만 영적으로는 부자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은 그 어떤 재물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최고의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예수님임을 기억하는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 증거를 가진 교회
말씀: 사도행전 39-10절 찬송가 351

걷지 못하던 사람이 걷게 된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놀랐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드나들 때마다 그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제는 더 이상 앉아 있지도 않고 구걸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을 것입니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증거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증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람이라는 증거, 우리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라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4.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1)
말씀: 사도행전 311절 찬송 283

백성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된 것은 베드로와 요한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베드로와 요한만 보였으므로 그들이 낫게 한 것으로 여긴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역사하신 주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모든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5.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2)
말씀: 사도행전 312절 찬송 252

베드로와 요한은 걷지 못하는 사람이 뛰게 된 것인 자신들의 개인적인 권능과 경건으로 된 일이 아님을 분명히 밝혔습니다.(12) 이것은 위대한 자기 부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가 아닙니다라고 부인함으로써 그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우리를 통해 무엇인가 이뤄질 때, 그 모든 것이 주님이 하신 일임을 분명히 알고 예수님의 이름만 높이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6. 오해
말씀: 사도행전 313-16절 찬송 86

백성의 오해는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십자가에 죽게 한 데서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심각한 오해였습니다. 오히려 살인한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인자를 옹호하고 생명의 주님을 죽였습니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오해였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7. 알지 못하는 죄
말씀: 사도행전 317절 찬송 274

베드로는 백성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원인을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무지 때문이라고 말합니다.(17) 때로 우리는 몰라서 그랬다라고 변명하곤 합니다. 그러나 무지만큼 무서운 죄는 없습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도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6:3) 영적 무지에서 벗어나십시오.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이 날마다 여러분의 가정 가운데 충만하시길 소망합니다.


8. 알게 하시는 하나님
말씀: 사도행전 318-19절 찬송 449

하나님은 그리스도에 관해 이미 알려주셨습니다. 구약시대는 선지자들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미리 말씀하셨습니다.(18) 선지자들은 메시아가 오셔서 백성을 구원할 것을 수도 없이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오심과 십자가와 부활은 모두 예언대로 이뤄졌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로 하여금 그것들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 은혜를 바라며 살아가는 가정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9. 이제라도 알아야 할 것
말씀: 사도행전 320-26절 찬송 286

하나님이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돌이켜 악함을 버리게 하므로 백성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26) 하나님은 일찍이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백성이 이제부터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며, 늦었지만 회개하고 돌아와 죄 씻음을 받아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주위에 그리스도를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 있습니까? 그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10. 가둘 수 없는 것(1)
말씀: 사도행전 41-5절 찬송 411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들 및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을 가두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만 십자가에 죽이면 모든 것이 끈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오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에 가둘 수 없는 분입니다. 사도들은 가둘수 있을지 몰라도 복음을 가둘 수는 없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핍박자들은 주님의 종들을 가두거나 죽이며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와 중국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흥이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11. 가둘 수 없는 것(2)
말씀: 사도행전 46절 찬송 350

다음 날 제사장들의 문중이 모두 모였습니다.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했습니다.(6) 이것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사도들을 통한 복음의 확산에 긴장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위협해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자신들의 위세에 굴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의 용기와 믿음은 사람의 위협으로 가둘 수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전할 때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없습니까?


12. 유일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
말씀: 사도행전 47-12절 찬송 91

제사장들은 성전 미문의 걷지 못하던 사람이 어떻게 낫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유다 백성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가 나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살리셨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 백성에 의해 버림받은 돌 같은 존재였지만, 이제는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되심은 어떤 인간적인 힘이나 물리적 방법으로 가둘 수 없는 위대한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