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프롤로그() 
              믿음 있는 자를 세우려는 게 하나님의 뜻

지난 호에 이어  (강해 장한국 목사 "주 사랑교회 담임, 본지 상임이사)

 
6-1 장한국 목사.jpg다니엘과 같은 신앙인
, 다니엘에 의해서 세워지고 있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신앙인, 즉 그들의 신앙대로 영광을 입혀주기 위하여 하나님이 느브갓네살에게 붙인다는 것이다. 다니엘과 같은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같은 높은 순교 신앙수준에 이른 자들을, 그들의 신앙대로 그들에게 영광을 입혀 주시려고 환란에 붙인바 된다.

오늘 우리도 환란 날에 적그리스도에게 왜 붙이느냐? 합당한 자에게 영광 주시려고 더 큰 영광을 주시려고 하신 것이다. 환란은네 생물의 역사다. 환란은 두려움과 공포로 인하여 넘어지게 하고 배도하여 멸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믿음 있는 자를 세우려는 게 하나님의 뜻이다.

믿음이 연약한 자들도 환란에 붙여서 세상미련이 빠지게 하여 온전히 세워서 재림 주를 맞이할 수 있게 하는 방도가 환란 때에 적그리스도에게 붙이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아니하면 배도하는 것이 환란이지만 예수를 참되게 믿기만 하면 연약한 믿음이라도 환란 날에 가서 그들을 바로 연단하고 세우는 것이 환란이다.

그러니까 네 생물의 역사, 즉 살리는 역사가 환란이다. 그것을 다니엘서 11~2절에서 알 수 있는 내용이다. 1,2절을 깨달았으면 우리가 앞으로 있을 환란에 대해서 확실한 영적인 안목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이 환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이는 요한 계시록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계6: 1~8절을 잘못알고 있기 때문이다.

61절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뭔가? 생물이 먼저 등장한다. 이 생물 역사를 깨닫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달달 외우고 알아도 네 생물 역사를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아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 신앙이나 세친구의 신앙과 같은 자들에게 최고의 영광을 입혀주시려고 환란에 붙인다. 그리고 하늘소망을 가진 자들을 연단하시려고 환란에 붙인다. 유다를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게 붙이는 것은 그림자와 같은 것이고, 영적유다인 교회들을 종말의 큰 환란에 적그리스도에게 붙이는 것이 바로 실체, 실상으로 이루는 것이다.

다니엘 11~2절은 다니엘서의 결론인 12장에 개국이래로 없던 큰 환란이 나오는데, 7년 환란으로 연결된다. 7년 환란을 주느냐? 성도들을 정결케 하고 희게 하고 연단시키기 위함이다. 한 때, 두 때, 반 때에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 강 이편에서 저편까지 옮기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순교하게 해주시는 신랑 예수님을 다니엘서 12장에서 결론으로 보여 준다. 다니엘서를 깨닫는 자가 복 있는 자이다.

(2) 유다자손

6절 유다자손이 나온다. 유다 자손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유다자손이 일반적인 의미로 유다 모든 백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 6절에 유다자손 다니엘이라고 했다. 다른 왕의 씨는 유다자손이라고 하지 않았다. 유다 왕손과 고관 자손도 베벨론에 많은데 유다자손은 네 명뿐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뿐이다. 오늘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유다 자손이 되자. 유다자손은, 유다의 씨는 다윗의 기업이 있는 자다. 유다 자손은 유다의 씨를 말한다. 유다 자손은 유다의 씨, 왕의 자손은 왕의 씨요, 왕통 신앙이며, 아브라함의 자손 아브라함의 씨를 말한다. 자손은 씨를 말한다.

다윗의 씨가 뭐냐? 다윗과 같은 신앙에 선 자들이다. 유다의 씨가 다윗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다. 24:16에 유대에 있는 자는 산으로 도망하라. 유대에 있는 자는 유다자손을 말한다. 다윗의 기업이 있는 자가 다윗의 씨이고, 그들은 첫째부활의 영광이 있는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이다. 다윗의 기업이 있는 자는 주님 재림 때 천년왕국에서 왕이 될 자들이다.

(3) 채소와 물(12)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신앙이다. 그래서 8절에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에 결심한다. 이유인즉, 왕의 음식은 그들의 신에게 제사하고 내어진 것들이었고, 레위기 11장에 나오는 부정한 음식 이였기 때문에 다니엘은 먹지 않겠노라고 결심하고 내시장관에게 요청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니엘의 요청이 허락되어진다.

다니엘은 열흘 후에 시험해서 왕의 진미를 먹은 자들과 물과 채소를 먹은 다니엘과 세친구들을 비교해서 당신이 원하는 데로 처분하도록 요청했다. 노예로 잡혀온 자들이 왕의 진미를 거부한 것만으로도 죽을 수 있는 것이다. 다니엘이 도박을 한 것인가? 믿음으로 한 것인가? 믿음으로 한 것이다.

채소는 히브리어로 제로임이다. 제로임은 씨가진 채소를 말한다. 다니엘서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기록한 것이다. 상징을 기록한 것 아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채식을 먹은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채소와 물은 어떤 의미인가? 오늘 우리도 다니엘처럼 채식과 물을 먹어야 되는가? 그것은 아니다. 주님 안에서 율법이 다 완성되었으니까 레위기 11장도 완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레위기 11장에 부정한 음식도 다 감사하므로 먹으면 다 취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도 말씀하고 있는데, 영적유익과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다. 그러나 채식과 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양식은 영적인 양식으로써 채식과 물이 되어야 한다. 신앙의 영적유익을 위해서 물과 채소의 영적의미를 상고하면, 129~30절 씨가진 채소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음식이고 씨가 없는 풀은 짐승의 먹이가 된다. 씨가 없는 풀은 없다. 모든 풀이나 채소는 씨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나라 에서의 풀을 말하는 것이다. 세상나라의 풀은 씨가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서의 풀이 있는데 씨 없는 풀, 그것은 짐승에게 양식이 된다. 즉 하나님의 자녀라고는 볼 수 없는 짐승 같은 자들에게는 씨가 없는 풀이 그들의 양식이 되는 것이다. 풀만 먹는 것이다.“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편49:20) 짐승은 씨 없는 풀을 먹는다. 씨가 있느냐 없느냐는 엄청난 차이의 구별 점이 된다.

가 뭐냐?는 생명을 말하는데 이 생명이 잠시 살다 죽는 생명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영원히 누리는 생명이.‘영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씨는 영생을 의미한다. 성도가 영생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되면 그것은 씨가 있는 채소다. 즉 자기 자신이 씨가 있는 채소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채식을 먹은 것은 영생의 열매를 맺는 성도의 삶을 계시한다. 성도가 이 세상에 보냄 받아 한 톨이라도 영생의 열매를 맺는 다면 이 세상에서 하루를 살아도 영생이다.

평생 강도짓하며 살던 행악 자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그 옆에 달린 그 행악 자가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 하소서 하니”(23:41~42) 라고 고백했다.

그의 한 톨의 입술의 열매가 영생이 된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23:43) 다른 사람을 영생에 이르는 삶을 살게 하고, 영생의 복을 받게 다른 사람을 세우면 씨가 있는 과목이 된다. 자기 자신이 씨가 있는 과목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