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 신앙을 회복하자
작성일[2008/08/08 08:13:41]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 뛰어들었던 신앙,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 참수를 당하고 화형을 당하며 기름 가마에 던져질지언정 예수 이름을 부인하지 않는 신앙이 바로 이 마지막 때 우리가 가져야할 순교 신앙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상 숭배의 나라인 일본이 잘되는 이유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우상 숭배 국가들은 찌들리고 가난하며 국가 전체가 힘든 상태에서 허우적대는 반면 일본만큼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에 얼마나 많은 순교자의 피가 뿌려졌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 일본에서 예수를 믿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끔찍하고 잔혹하게 죽어갔는가를 알게 된다면, 일본열도에 뿌려진 그 순교자의 피로 인해 지금도 하나님께서 일본을 기억하시고 그들에게 계속 생명의 말씀을 보내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일본의 순교자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처참한 방법으로 순교를 당하며 그 척박한 땅에 순교자의 피를 뿌렸습니다.

나는 순교자의 피가 뿌려진 국가에 폭발적인 부흥과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휘몰아치게 될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필자는 양가 부모님(아버지는 다산 정약용, 어머니는 고산 윤선도)쪽으로 각각 순교자를 배출한 배경에서 태어났습니다. 특별히 어머님은 윤선도의 종손 ‘故 윤영선’(국회의원역임)씨의 맏딸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는 바로 ‘윤지충’입니다. 윤지충은 고산 윤선도의 6대손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선비였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움으로 엄격한 유교 국가의 질서를 무너뜨린 범죄자가 되어 1791년 참수를 당하게 됩니다. 정조 임금은 9일이 지난 후에야 시체를 거두어 가도록 했으며, 윤지충의 목은 한겨울 혹한 속에서 9일 동안이나 전주 풍납문에 걸렸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형제인 정약종은 조선 후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며 순교의 피를 흘린 순교자입니다. 정약종은 전도에 힘쓰며 ‘성교전서’를 집필하는 중에 1801년 42세의 젊은 나이에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당하여 순교했습니다. 그의 아들들과 딸인 정철상, 정하상, 정정혜도 모두다 하나님 앞에 생명을 드리며 순교함으로 믿음을 지켰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다산 정약용의 외가가 고산 윤선도 집안이었는데, 필자 역시 다산 정약용의 친가에 고산 윤선도 집안이 외가입니다. 그리고 두 집안을 통하여 계속해서 순교자의 피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순교자의 신앙을 사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불을 지핍니다. 우리가 가져야할 신앙은 바로 세상의 누룩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신앙입니다.

이번 성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순교자의 피를 기억하시며 한국교회를 정결케 하는 ‘회개’와 ‘성결’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하는 필요 이전에 하나님이 한국 교회에 간절히 원하시는 바 이기도 합니다.

 

정바울목사(모아실 목사 초청 아시아복음화대성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