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난 한해 863명의 고아를 수출한 대한민국

 지난 131일 미국 국무성이 지난 한 해 동안 세계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아이들의 통계를 국가별로 정리해서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 입양된 아이들은 15천명이 넘었다. 그 중에 1위는 중국(3401), 2위 이디오피아(2513), 3위 러시아(1082), 4(863)으로 나타났다.

다행인 것은 그동안의 발표에 비해서 한국 어린이의 입양이 줄었다는 것이다. 한 때 불명예스럽게 1~2위를 차지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4위로 내려앉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4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럽고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이나 국가의 위상을 고려할 때 과연 이 통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인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후진국인 인도나 필리핀의 경우도 불과 200여명 남짓한 아이들이 입양되었다. 물론 이것은 단지 수자로 단순하게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입양의 이유나 조건, 상황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말하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선진국, 혹은 OECDG20의 회원국임을 자처하고 있는 우리의 두 얼굴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부심을 느끼고, 그러한 우리를 알아달라고 대내외에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들에도 문제가 없는 것 아니다. 또한 그들 사회가 완전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선진국이라는 것이 단지 경제적 능력만이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력에 비례한 사회적 공동의 책임에 대한 분명한 의식과 그것을 감당하기 위한 희생과 노력이 인정되어야 한다.

한데, 우리의 현실은 선진국으로 분류되기를 원하면서도 사회적 공적인 책임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거나 아직 그만한 여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무감각하다는 것은 의식이 만들어져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여력이 없다는 것은 자신 외에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정신적인 준비가 되지 못하다는 것이 아닐지. 그만큼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과 사회 전체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각각의 책임에 대한 의식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정치권은 자신들의 신분을 유지하기에 급급해서 사실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무상급식이라는 명분으로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무상급식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상이라는 말은 합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국민의 세금에 의해서 사회적 책임을 공동으로 진다는 의미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공적 책임이 전제되지 않는 무상의 의미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마치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내서 나눠줄 듯이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국민을 호도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

지난해 미국으로 입양된 아이들만 863명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러면 그 밖의 나라로 입양된 아이들까지 생각한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수가 지금도 수출(?)되고 있다는 말인데 이에 대해서 정치권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사회적 책임을 국민이 함께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이 아이들에 대한 책임 역시 우리들에게 있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도 사회적 책임의식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오직 자신들의 목적에만 눈이 어두웠는가? 기억으로는 1990년대 중반기에 고아수출문제를 정치권에서 여론화 시켰던 것 같다. 하지만 그 후로 어떤 대책을 내놓았는지 묻고 싶다.

상대적 약자들을 위한 무상급식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또한 명실공이 의무교육을 한다면 의무교육 대상자들을 위한 복지를 완벽하게 마련해야 하는 것을 반대할 사람도 없다. 다만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하고, 실제적으로 그만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정서와 의식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제도와 시스템으로도 공적인 책임을 함께 할 수 있고, 사후관리까지 완전하게 마련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정치권은 자신들에게 위탁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굳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래야만 국민들도 보람과 소망을 함께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 또한 이에 대해서 모른다 할 수 없는 일이다. 교회가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서 충분하게 준비해서 그 역할을 감당해주어야 한다. 후진국에서 활동하는 많은 한국인 선교사, 자원봉사자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기쁠 때가 많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수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교회적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비록 먼데 있는 사람들이 아닌 바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고아를 수출하는 나라로서의 불명예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가뜩이나 저출산으로 인해서 국가적으로 인구감소로 인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터인데 정작 나은 아이들마저 다른 나라에 보내는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는지.

 

이종전 목사?뉴스미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