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Jean Calvin, 1509-1564) 탄생 500주년을 맞아

노 영 상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2009년은 칼뱅 탄생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5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와 프랑스에서 이를 기념하는 여러 행사들이 예정되어 있다. 장신대에도 500주년을 기념하며 프랑스 조각가에 의해 만들어진 그의 동상을 교정에 설치할 계획 중이다.

칼뱅은 처음에는 가톨릭 신자였으나, 20대 초반에 개신교로 회심하였다고 추정된다. 그의 최종 학위는 1531년 오를레앙 대학에서 받은 법학박사이다. 학위를 마친 후의 그의 생애는 네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1533년에서 1536년까지, 그는 프랑스의 앙굴렘과 스위스의 바젤에 전전하며 신학을 연구하는 기간을 갖게 된다. 이후 1536년에서 1538년까지 칼뱅은 당시 1만 여명의 인구를 가진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제1차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이즈음에 그는 제네바 시의회에 “제네바 교회의 조직과 예배에 관한 조항”을 제출하여 통과 받음으로, 제네바 시민의 종교교육과 교회조직을 관할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과감한 시도는 반대자들의 벽에 부딪혀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 바, 기욤 파렐(Guillaume Farel)과 함께 성찬방식에 대한 논쟁에 연루되어 1538년 제네바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그는 제네바에서 추방된 후, 1538년에서 1541년까지, 지금은 프랑스 영내에 있으나 당시는 독일 땅이었던 스트라쓰부르크에서 프랑스 피난민을 위한 목회생활을 하였다. 마지막 기간으로 1541년부터 1564년 5월 27일 그가 서거하기까지, 그는 제네바에서 두 번째 생활을 하게 된다. 제네바 시민들이 칼뱅을 다시 불렀기 때문이다. 제2차 제네바 생활 중, 1541년에 “제네바 교회의 법령”을 제정 공포하였으며, 1542년 방대한 양의 “제네바 요리문답”을 완성하였는바, 그것은 1552년의 “제네바 신조”의 기초가 되었다. 1559년 그에 의해 세워진 제네바 아카데미는 지금의 제네바 대학의 전신이다. 그는 이 기관을 세움으로써, 제네바를 개혁운동의 거점도시가 되게 하였다. 또한 그는 각 국의 종교개혁자 및 집권자들과 서신들을 교환하였으며, 프랑스 신앙고백과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등, 당시 유럽에서 일고 있는 개신교운동을 하나로 묶는 일에 노력하였다.

이러한 칼뱅을 포함한 종교개혁자 츠빙글리(Huldrych Zwingli), 불링거(Heinrich Bullinger) 등의 신학적 영향 하에서, 개혁교회(the Reformed Church)가 유럽에서 형성되게 된다. 이 개혁교회는 우리나라에선 일상적으로 장로교회라고도 불린다. 종교개혁 당시, 루터가 중심이 된 독일의 루터교회, 헨리 8세의 수장령에 의해 설립된 영국의 성공회 등과 함께, 개혁교회는 개신교회(the protestant church)의 주요 교단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과 같이 발전한 개혁교회의 형성에 일조하였던, 칼뱅의 사상은 그간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바 있다. 서구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두 이념이 모두 칼뱅의 사상에서 유래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유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그의 책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서구 자본주의가 칼뱅주의의 금욕주의 정신에서 유래하는 것임을 입증하려 하였다. 또한 서구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 그것의 사상적 기반인 로크와 루소 등의 자연권사상 및 근대의 시민혁명이 칼뱅의 신학과 연관된다는 견해들도 있다. 하지만 칼뱅의 사상을 이러한 이념들과 직접 연결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는 것으로, 그들 사이에 내용적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 정도로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칼뱅은 그의 새로운 사상 때문에 많은 역경을 치러야 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의 개혁적인 사상이 사회에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였었다. 그러나 칼뱅은 이 같은 개신교의 사상이 위험한 사상이 아니며, 인류의 복리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변호하였다. 1559년 7판으로 마무리 된 그의 필생의 역작『기독교강요』는 신론, 기독교, 성령론, 교회론의 4권으로 되어 있다. 깔뱅은 개신교 신도들이 그의 모국인 프랑스에서 박해를 받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기독교강요』를 집필하였음을 초판의 서문은 보여준다.

새로운 사상이 사회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사상을 개진하였으며 인류 역사에 남는 새로운 생각으로 정립시켰다. 오늘의 시대에도 난관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 있는 생각들을 발전시켜 나가는 신학계와 사상계의 첨병들을 발견할 수 있는바, 우리는 그들의 새로운 노력에 주의를 기울이며 나름의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전의 생각을 반복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새로운 생각을 창출하는 것엔 많은 노력이 든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