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3장 강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입은 네 가지 옷의 계시

7-1 장한국 목사.jpg 불에 던져졌으나 불타지 않고 불속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서 거닐고 있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바람도 주님 손안에서 주장되어짐, 일원론적인 신앙을 깨닫지 못하여 시련을 격는 것이다. 바람을 주장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악한 영을 이길 수가 있다.

1717절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일치시켜 그들의 왕국을 그 짐승에게 주도록 하셨음이니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가지니이다.

하나님이 주어다. 환란 날에 이 세상 전체를 적그리스도에게 주셨다. 성도를 짓밟고 죽이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힘이 강해서 자기 주도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의 뜻을 이루시려고 적그리스도와 그 군대들을 품꾼으로 부리시는 것이다.

성도들을 적그리스도에게 붙여서 순교케 하여 첫째 부활의 영광을 입혀 그리스도의 신부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재림하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과 함께 천년왕국에서 왕과 제사장으로 천년동안 지복천년을 누리며 열매 맺게 하시는 것이다. 최고의 복된 구원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원론 신관을 믿는 성도는 환란을 창조하신 목적을 깨닫고 이 환란에서 우리 목숨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나에게는 생명을 내어 놓을 권세도 있고, 또 그것을 다시 얻을 권세도 있노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도 동일한 고백을 하며,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하여 고문과 잔혹한 조롱과 채찍질과 돌에 맞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에 상하여 죽는 것을(11),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당당히 풀무 불에 들어간 것처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다. 풀무불이 평소보다 칠 배나 뜨거우므로 멀리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붙들어 던진 용사들은 불에 타 죽었다. 그 하나님인가 하여 느브갓네살은 풀무 입구까지 가서 보았지만 불타지 않는다. 불이라는 것은 사르게 할 자는 사르고, 사르지 못하게 하는 자는 사르지 않는다. 느브갓네살은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조물주의 뜻대로만 쓰여 지는 것이 된다. 오늘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믿으면 무서워하지 않고 불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18절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되지 아니하실지라도는불살라 죽게 될지라도이다. 왜 하나님이 불살라 태워 죽이라고 허락하실까요? 피조물 불은 불사르게 허락하니까 우상숭배하지 않는 것으로 죽임당하는 죽음, 이것은 순교의 죽음이다. 순교의 죽음에는 순교자의 영광이 따른다. 주의 재림 때 있는 첫째부활의 영광이다. 그 영광을 주시기 위하여 불사르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좋은 것이다. 오늘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지극히 높이는 것으로만 살다 보면 똑같이 순교자의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이다.

우리 죽을 몸이 성령에 의해서 영생의 열매 맺는 몸으로 살리심을 받음

(중간 제목)

 

(3)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입은 네 가지 옷의 계시(21)

성경에서의 옷은 일반적인 의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계시록 317절에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시며 너희가 벌거벗었으니 흰 옷을 사서 입으라고 하신 것처럼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믿음의 상태를 볼 때 벌거벗었다는 것이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 다니고 있다.

그들이 누구냐?’할 때 그들의 신앙적인 영적인 정체성의 표현을 옷 입은 것으로 표현했다. 이들이 옷을 많이 입었다는 것은 일반적인 옷을 많이 입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영적인 상태, 믿음의 내용을 말한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고의위에속옷을 입고속옷위에겉옷을 입었고겉옷위에별다른 옷을 입었다. 네 가지 옷을 입어서 승리하듯이 우리도 이 네 가지 옷을 입어야 된다는 것을 계시한다. 또한 그것의 영적의미를 알아야 된다.

고의(拷衣), 고의는 출2842절에 허리에서부터 넓적다리까지의 부분 곧 하체를 가리는 것이다. 모자(hats, KJV)로 번역된 다니엘서 원문을 바르게 번역하면 고의. 고의는 정욕이나, 음란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을 가리 우는 것이다. 그것들이 나오지 않게 한다. 우리는 처음에 예수를 믿을 때에 예수로 인하여 믿음으로 몸과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처형하는 것이 중요하다.

2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죽어지고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내가 되었다면 그리스도로 인하여 거룩해 진 것이다. 그러면 고의를 입은 것이다. 음란과 정욕이 하체가 가리워진 것으로 인하여 나오지 않게 된다.

우리의 육체의 소욕으로나 진리가 아닌 다른 어떤 말씀이 들어가서 자기를 주장해서 나오는 죄의 열매, 불법의 결과들은 다 하체에서 나온다. 고의는 그런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 없애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고의를 입은 것이다. 고의는 제일 먼저 입는 옷이다.

속옷, 속옷은 속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입는다. 이것은 온 몸이 하나도 썩어질 것이 없이 영생에 이르는 열매 맺는 몸이 되어 지면 곧 속옷을 입은 것이다. 8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는 말씀과 같이 죽을 몸을 성령이 살려서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하는 몸으로 살아가게 한다. 살리심을 받는 것이다.

이 몸으로 섞어지는 것으로 하여 사망의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영생을 위하여 의의 열매 맺는 몸이 되게 한다. 이것은 성령에 의하여 내 몸을 통해서 사랑도 하게하고 희락, 화평, 온유, 자비, 양선, 충성, 절제 같은 열매를 맺게 한다. 이것은 속옷을 입은 것이다. 우리 죽을 몸이 성령에 의해서 영생의 열매 맺는 몸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이다.

겉옷, 겉옷은 신분을 나타낸다. 엘리야의 겉옷이 털옷이다. 엘리야가 입었던 옷을 엘리사가 받아 입었다. 엘리사가 입었던 선지자의 옷이 선지자의 마지막인 세례요한이 그 털옷을 입었다. 그 옷이 겉옷이다. 이 겉옷을 세 친구들도 입었다. 그 겉옷은 약대 털옷이다. 약대는 뜨거운 사막 가운데서도 약대가 운송하는 도구로 쓰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약대에게 생수 통이 있어서 그렇다. 사막의 뜨거움 같이 고난과 환란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오히려 하늘의 속한 기쁨을 가진 생수 같은 시원함으로 인하여 승리하는 것이다. 이것이 약대 털옷이다. 오늘 우리도 약대 털옷을 입으면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있는 것처럼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

엘리야가 3년 반 동안 비오지 않게 기도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있는 엘리야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기근 이고 가뭄이다. 영적으로 황폐화 되어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우상숭배하고 있는 그들을 비를 오지 않게 함으로 인하여 그들이 실제로 영적으로 가뭄과 같이 피폐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서 참된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섬기고, 바알우상과 아세라 목상을 전부 다 버리는 것으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을 알고 36개월 동안 비 오지 않게 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선지자다. 이것은 선지자가 겉옷을 입은 증표다. 기근, 즉 환란이라는 것이 영적으로 깨우쳐 복되게 하는 역사다. 그러니까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받게 된다. 이것이 겉옷을 입은 표다.

                                강해 장한국 목사 (주사랑교회 담임/ 대한노회 노회장, 본지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