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강해(장한국 목사)
       일곱 머리 열 뿔 짐승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제국들

6-1 장한국 목사.jpg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신 대로 앞으로 환란이 시작되면 666은 일곱 머리 열 뿔 짐승 즉 적그리스도가 자기의 소속이 된 사람들에게 찍는 표가 됩니다. 짐승표는 실제 경제생활에서 이 표를 받는 자 외에는 매매할 수 없도록 하는 실제 사건이다. 그런데 환란 이전에는 출애굽기 14장의 특별 병거 육백 승 곧 명예와 세상 영광을 좋아하는 자들이나, 60규빗의 우상을 섬기는 자나, 6 가지의 육체의 소욕이 있는 자에게 666의 역사가 있고, 이런 배도할 수 있는 신앙의 중심이 그대로 그 날에 이어지니 곧 환란이 되면 반드시 짐승표 666을 받게 될 것이다.

환란 날에 일곱 머리 열 뿔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온다(13:1). 일곱 머리 열 뿔 짐승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제국들인데, 첫째로 애굽부터 시작해서 다음은 앗수르, 바벨론, 메데?파사, 헬라, 로마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제국인 적그리스도의 제국이다.

요한계시록178~13절까지 세상 제국들과 마지막 날, 환란 때에 세워지는 적그리스도의 제국을 사도 요한을 통해 계시한다. 10절에 일곱 왕이 있는데 다섯은 패망하였으나 하나는 아직 오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오면 잠시 동안 머물러야만 되리라 했다. 요한 당시의 제국은 로마이다. 로마제국 앞에 존재했던 다섯 제국이 이미 패망했다. ,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대?파사, 헬라(그리스)등 다섯이다.

이어 로마제국이 사도요한 당시 여섯 번째이고, 마지막 하나는 요한 당시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오면 잠시 동안 머물 것이라고 했는데 마지막 일곱 번째 제국이 세워져 통치하는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마지막 등장할 제국은 열 뿔 즉 열 왕이 연합하여 세워지는 나라다. 열 나라의 통치자들이 한 생각을 가지고 자기들의 권세를 한 왕에게 넘겨준다. 그가 통치하는 나라가 적그리스도의 제국이다. 적그리스도의 제국이 서는 것은 마지막 그 당시에 열나라가 하나로 통합이 돼서 일곱 번째 적그리스도 제국으로 잠시 동안 통치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났을 때, 적그리스도는 자기를 신격화 한다. 실제로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한다. 자기 자신을 경배하게 한다. 경배하게 하려면 자기의 신상과 형상을 만들어 먼저 절하게 하고 일하게 한다. 예를 들면 적그리스도의 형상이나 사진을 걸어 놓고 먼저 절을 하고 예배드리고, 학교에서 공부도하고, 일도하게 한다. 이렇게 경배를 강요하게 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온다.

그리고 계13:15에 경배하지 않는 자는 다 죽인다고 했다. 이것이 다니엘 3장에 느브갓네살이 시행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풀무 불에 던져 넣는 것이고 마지막 때는 칼로 죽이는 것만 다르다. 메시지의 강렬한 요지는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을 바로 믿으라는 것이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유일하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하는 것이다.

예수가 나의 구세주고 예수 외에는 필요 없다고 하면 적그리스도에게 순교당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것을 미리 알려 주면서 순교 신앙으로 세우려는 것이 다니엘서 3장의 메시지이다.

                  (2)일원론 신관과 일원론 신앙(17,18)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이 세운 신상에 경배하지 않으므로 풀무 불에 던져지게 되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금 신상에 경배하라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담대히 말한다.‘우리를 다스리는 왕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하는 말씀대로, 우리는 산다. 느부갓네살 왕도 하나님이 왕으로 세운 것이고, 우리를 통치하는 분도 하나님이시니 느부갓네살 뜻대로 우상에 경배하는 것은 따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 느부갓네살이나 실제로 통치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모두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느부갓네살이 우리가 신상에 경배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자기 맘대로 풀무 불에 던져 넣어도 그 풀무불이 우리를 사를 수 없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내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세 친구들의 신앙이다. 17절이 중요하다. 이 믿음이 중요한데무조건 믿습니다라는 식의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에 따른 것으로 생기는 믿음이다.

풀무 불, 불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불을 만드신 하나님이 이 불을 주관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피조물로 만든 불은 태우는 것으로 만든 것이다. 불사르면 물건들이 태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태울 필요가 없는 것은 태우지 말하고 하면 불은 꼼짝없이 태울 수 없는 것이다. 불은 조물주 하나님이 주관하는 대로만 쓰여 지는 것이다.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원론적인 신관이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자기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우상을 거부하는 것으로 풀무불에 던져짐을 당했는데어찌 불을 주관하는 하나님이 불사르라고 하겠는가?’‘불아! 사르지 말라.’하시겠지. 이것을 믿는 것이다. 불에 던져 질 지라도 불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물주의 뜻대로 쓰여 지는 불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일원론 신관이 있는 사드락, 메삭, 아벳고의 일원론 신앙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불은 불사르라고 풀무에 이글거리고 있지만 자기들은 믿음의 정절을 지키는 것 때문에 풀무 불에 던져 졌는데, 하나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당연지사 아니겠는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불이 활활 타면 불을 하나님으로 보기 쉽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용광로에 불이 활활 타는 것을 보면, 불 속에 들어가면 불이 분명히 나를 태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 불이 피조물이라는 것, 피조물은 하나님의 뜻대로 쓰여 진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원론 신관이 부재(不在)한 것이고, 일원론 신앙이 없는 것이다. 만약 이런 연약함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가 고쳐져서 일원론 신앙에 서야 된다.

피조물은 사자건 불이건 물이건 바람이건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명하시는 대로 순종한다. 강물이 흐르는데물은 흐르지 마라.’‘길을 내라하면 길이 열리는 것이다. 물이 맴돌며 물 벽을 이루고 땅을 드러내 길을 내는 것이다. 믿음의 선진들이 홍해 바다를 건넌 경험이 있다.‘태양아 머물러라하면 태양이 거기에 멈춘다. 그렇게 되는 것이다.

823~27절에서 예수께서 바다를 건너가자고 말씀하셔서 제자들이 따랐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데 큰 폭풍우가 일어났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몹시 놀라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웁니다. 폭풍우를 주관하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왜 풍랑을 일으키셨을까요? 현재 제자들의 부족한 믿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주께서 바다를 건너가자고 하시는 말씀이 제자들을 사로잡아, 제자들은 그 말씀의 도구가 되어져서 노를 저어 목적지까지 당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주께서 바다를 건너가자고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을 주무시게 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열심히 노를 저어 목적지까지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이루시는 주님의 역사를 제자들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는 폭풍우를 일으키기도 잔잔하게도 하시며 제자들을 깨우치시는데, 제자들은 폭풍우를 일으키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폭풍우를 잔잔케 하시는 주님만을 보고 놀랄 뿐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환란도 만드시며(45:7) 그것을 통해 우리의 찌꺼기를 깨우쳐주신다.

1427~33절에는 주님의오라.”는 음성을 듣고 물위를 걸어가다가, 풍랑을 일으키는 바람을 보고는 두려워하여 물에 빠지고 마는 시몬 베드로가 등장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몬 베드로는 바람을 일으키는 원인자인 악한 영에 속아 풍랑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바람은 주님의 주권 하에 있다고 굳게 믿고오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 아무리 거대한 풍랑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나, 시몬 베드로는 말씀을 받고도 바로 망각하여 풍랑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에 낀 찌꺼기, 포도주에 섞인 물입니다. 주님이 왜 풍랑을 일으키십니까? 시몬 베드로가 말씀을 잊고 풍랑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깨우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