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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서 벌어진 언짢은 일을 밖에서 떠들어 대며

집안일을 집 밖에까지 알려 동조를 구하고 위로받고자 하지만

제 얼굴에 침을 뱉기로 끝나고 심지는 조소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집안 망신이고 내 창피함이다.

 

종교적이거나 신앙적 분쟁이 생겨 고소 고발로 세상 법정에 가게 되면

판사는 “교회 내에서 해결하시죠”하는 것이 첫 번째 조언이다.

가정의 문제일 때는 “서로 시간을 가지고 의논해 보시죠”로

판결보다는 조정의 시간을 준다.

 

노골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창피하게 밖으로 들고나오지 말고 너희들끼리 해결해”라는 말이다.

 

집안일을 장외 투쟁으로 번지면 감정의 골만 깊어 갈 뿐이다

외부인들이 관심을 보인들 그들이 해결할 수 없으며

수군거리며 비난하고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해결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시간이 걸려도 집안 사정을 잘 아는 식구들이

조율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집안일이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이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것 인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모두가 식구를 위한 일임을 알게 된다.

 

내 집안일이 싫다고 혹은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의논하지 않고 해태하는 방법은 식구로서의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다.

 

부모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혹은 형제를 위해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따라 노골적으로 가족의 행동을 비난하며

떠들어대는 의로운(?) 사람들을 본다.

 

자신의 손해는 희생이 될 수 없다고 이혼까지 불사하는 처사가

결혼의 의미까지 퇴색하게 한다.

 

가족이라는 구성원이 되었다가 하루아침에 남남이 되는 부부들과

식구로서의 의절을 선택하는 구성원을 보며

가룟유다나 아버지 곁을 떠나는 탕자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별 다를 바 없음을 깨닫는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집을 떠나거나

가정을 버리거나 등을 돌릴 수 없다.

왜? 내 일이고, 내 식구 일이고, 내 집안일이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사명이기 때문이다.

 

법정 안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참지 못해 담을 넘는그들에게서 나는 오래 참는 방법을 배운다.

태풍이 불 때 피하는 방법은 땅에 바짝 엎드리는 것이 최선인 것처럼

잠잠히 기다리며 순리에 맡길 수밖에

 

그래서 내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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