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기독인의 윤리의식 이대로 좋은가

우리 기독교 신앙은 철저히 계시된 성경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구호를 외쳐왔고 어느 정도 그 뿌리가 내린 것도 사실이고 열매도 있다. 어느 사안이든 성경적이 아니면 정죄하고 또 성경에 부합하면 따르려고 힘썼던 것도 미덕이었음을 부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점차 경제적으로 살기 좋아지고 신앙마저도 경제원칙이 지배되면서부터 편리주의, 실리주의에 밀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발상이 하나 둘 생겨났고 그 결과 말씀의 원칙보다는 은혜라는 이름하에 무원칙과 윤리의식의 부재와 기본이 무너져가고 있다.

 

신앙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시되는 게 사실이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했듯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영혼과 축복을 갈구함은 좋은 일이다. 성경이 이를 적극적으로 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삶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구원받은 그 이후의 삶이 도를 벗어나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지기 위해 십자가의 희생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구속을 잊으면 결국 값싼 은혜로 전락하고 이는 복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은혜를 알기에, 그리스도의 숭고한 대속이 있기에 우리에게 생명이 있고 축복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거룩한 윤리의식으로 일어나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신앙이란 하나님 중심적인 경건에 무게중심이 있지만 이 땅위에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과 사명의 차원에서는 그 신앙에 걸맞는 윤리가 살아야 한다. 건강한 윤리의식, 민감한 도덕의식에 기초를 둔 관계중심적인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초 질서 회복운동이나 바른 예절 향상을 통해서도 기독인의 품위를 얼마든지 제고할 수 있다. 무책임한 자세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만을 외쳐서는 안 된다. 내가 한 말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자세가 건강한 기독인의 윤리이다.

 

좋은 예배당을 지은 후에 수평 이동하는 철새교인도 아쉽고 일언반구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지도자도 역시 아쉽게 느껴진다. 교인 몇 명에 건물 몇 평이라고 광고까지 하면서 교회를 거래하거나 흥정하는 일들이 만연되어가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하나님을 사랑하듯 이웃의 영혼을 사랑하자. 그 사랑을 바르게 감당하려면 냉철한 윤리의식이 필요하다. 한 영혼에 대한 인격적인 믿음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 십년을 하루같이 양육했던 교인이 일언반구 말도 없이 떠나 적을 바꾸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지도자가 있는 반면 내 교회만 부흥되면 된다는 목회대성의 야망 아래 목회윤리 부재의 영적 지도자들만 늘어간다면 한국교회와 조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기독교윤리는 구속의 윤리이기에 천국시민의 윤리이다. 구원 그 이후! 지속적인 말씀순종의 삶으로 성화된 언행심사를 통해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