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치관의 변화

성현교회 박형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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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은 가치관의 변화이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주님과 3년동안 한 솥밥을 먹으며 생활했다. 그리고 주님과 가장 가까이에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개인 교습을 받았다. 그리고 기적도 수없이 경험했다. 그러나 제자들의 가치관은 언제나 세상에 고정되어 있었다. 예수께서 하나님나라에 관하여 말씀 하실 때도 그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스승)를 통하여 "야망과 소원"을 성취할까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려할 때에도 그들은 기득권과 정치적 손익 계산에 혈안이 될 만큼 세속적인 것에 깊은 관심을 궁구하였었다.

 

이런 한심한 일들이 오늘날 교회와 총회 안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곤 한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영광을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돌입하면 세속적인 성공기준과 부의 기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노예의 모습으로 인생을 살려한다. 우리의 불행의 원인과 절망의 이유와 열등감의 뿌리가 어디 있는가?

 

가치관의 세속화라고 생각한다.

바울의 삶의 뿌리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나라였다. 따라서 감옥에 갇혀 있어도 감옥 밖에 있어도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유명할 때나 무명할 때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아니했다. 바울이 주장하는 삶의 원동력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가치관으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왜 우린 자족하지 못하고 개운치 못한 신앙을 혹은 목양을 쳇바퀴 돌리듯하는가? 가치관의 오해와 왜곡 때문이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고 악착같이 붙들려하는 것들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목적일까? 꼭 눈에 보이는 실적을 올리고 유명세를 타고 통장에 잔고가 늘어나고, 집평수가 넓어지고,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외모와 소유를 가진 것이 성공일까? 또한 진정한 축복일까? 그렇다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지금도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지만 일년이 가도 한 영혼 구원하기가 어려워 발을 동동 구르며 목양하는 오지의 무명의 목회자와 선교사님들은 다 실패한 사람이며 무능한 사역자일까?

 

저 두메산골 혹은 외딴섬에서노인 몇 명을 놓고도 한번뿐인 인생을 걸고 목회 현장을 지키는 사역자들은 다 실패하고 별 볼일 없는 목회자일까? 나는 나보다 더 유식하고 더 능력있는 분들이 하나님의 소명을 안고 그것이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한 것으로 아는 목회자들을 보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나는 한이 없이 작아 보이고, 어디에 숨고 생각이든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는 누가 더 신실한 사람이라고 할까?

 

어떤 교인은 말하기를 내가 죽더라도 돈 벼락이나 한번 맞아 보았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한다기에 그 소리를 듣는 나의 귀를 의심했다. 또 복권이나 사서 지갑에 녛고 다니며 점집을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 소스라치게 놀란적이 있다. 과정이야 어떻든지 성도수가 많고 세속적인 성공을 하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자신을 과신해도 되는 것일까? 성도가 자신의 자녀가 매주일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봉사하는데 옆집 아이는 교회 열심히 안나가며 돈을 많이 벌어 온다고 그것이 축복일까?

 

아니다. 그러면 안 된다. 그것은 세속적인 잣대이다. 물론, 성공도 물질도, 형통도, 건강도, 필요 없다는 의미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우선순위를 말하는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신 진정한 성공이 무엇일까? 그것은 단 한번뿐인 삶을 복음을 위해 거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과 같은 수많은 종들은 좁은 길을 걸으면서도 밤낮 기뻐한 것이 다 결국 주님이 생각하시는 영광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