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한 저울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신명기 25:13~15 백용현 목사

신명기의 법은 ' 종류의 저울추를 가지지 말라' 말합니다. 저울추는 모든 거래의 기준이 됩니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저울추를 사용하면 무게가 나갈 것이고 작은 저울추를 사용하면 무게가 많이 나갈 것입니다.

 

상거래를 각기 다른 저울추로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성도은 어떤 사람들을 대하든지 하나의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에게 행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항상 하나님께서 지켜보신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하듯 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15절의 말씀처럼 공정한 저울추를 가져야 하나님이 인생을 복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합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0년이 지난 85세까지 아들이 없자, 조급한 마음에 하나님의 약속을 멀리하고 애굽 사람인 여종 하갈을 첩으로 들여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던 해에 사라를 통해 약속의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린 이삭과 이스마엘이 성장하면서 갈등을 빚자, 급기야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쫓습니다. 아침 일찍 떡과 가죽부대를 어깨에 아들과 함께 막막한 광야로 내몰린 하갈은 방성대곡하며 울부짖습니다. 그것은 절규였고, 탄식이었습니다. 애굽 사람 하갈은 종의 신분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아브라함에게서 버림받은 여인이었고,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아들을 낳았으며, 나아가 아들 얻은 것을 빙자해 주인을 학대하고 교만하였기에 하나님 앞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울부짖을 때에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광야에 버려졌을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고 누구의 도움도 받을 없었습니다. 희망의 빛이라고는 도무지 찾을 없는 광야에서 하갈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원한 맺힌 통곡을 토해 때에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기다리셨다는 듯이 달려와 하갈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나 하갈에게나 같은 저울추로 사랑하셨습니다. 나를 향한 저울추나 타인을 향한 저울추는 같아야 합니다. 한국교회와 기독교단체, 주의 종들의 저울추는 같아야 합니다. 갈라지고 쪼개지고 짓밟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는 사탄의 도구일 뿐입니다. 이익과 감정에 따라 달라지면 됩니다. 이젠 '사랑' 기준이 되는 공정한 저울추를 사용해야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믿음의 저울추가 어떤 문제 앞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하도룩 인도하옵소서 사랑의저울추가 모든 사람 앞에서 동일하게 움직이게 하옵소서. 또한 기도의 저울추가 어떤 고난앞에서도 멈추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