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4장 강해()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같이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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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들이 있다.
노회장 장한국 목사.jpg
느브갓네살이 이렇게 말한 것은
3장에서 이미 체험한 것에 기인한다. 느부갓네살의 신관은 신들이 많이 있는 중에서 가장 강한 신이 다니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 신관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만이 조물주고 하나님만이 영원한 생명이 되는 분이다.

땅의 한가운데 한 나무(10,20)22절에서 해석해 준다. 그 나무는 느부갓네살 왕 자신이다. 높이가 하늘에 닿았다는 것은 권세가 하늘을 찌르듯이 커지고 모양이 땅 끝가지 이르렀다는 것은 바벨론 제국을 통치하는 느부갓네살의 통치력이 온 세상에 꽉 찼다는 것이다.

잎사귀, 열매, 들짐승, 공중의 새(12,21~22)
잎사귀가 아름답다는 것은 세상의 영광, 왕의 부귀영광 세상의 명예가 가득한 것을 말한다. 눈에 보이는 잎사귀가 아름답다는 것은 세상영광 부귀 명예로 단장 되었다는 것이다.

열매는 모든 만민의 양식이 된다. 육신의 먹을 것, 육에 속한 하나님이 주신 일반 은총적인 것, 물질문화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으로 살아간다.

들짐승이 그 그늘 아래 있다. 공중의 새가 깃들인다. 가축은 집의 주인이 길러 길들여 진 것이다. 가축 중에 생축이 있다. 생축은 재물이 된다. 그러나 들짐승은 재물이 된지 못하고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 들짐승이다. 창세기에서 에서는 들사람이라고 했다. 하나님도 없다. 아버지도 없다.

이삭의 뜻은 아무 관계없다. 자기 멋대로 아무나 결혼도 하고 들에서 사냥도 한다. 야곱은 장막 안에서 어머니, 아버지 뜻대로 순종하고,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의 장자의 복을 사모하면서 장막 안에서 살고 있다. 들짐승 같은 바벨론의 많은 지도자들이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기 임의대로 육적인 것으로만 사는 자들이 거기 많이 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느부갓네살 자신의 권세가 하늘 찌르듯이 높아졌고, 물질문명이 가득하여 모든 사람이 잘 먹고 산다. 부귀 영광이 그들의 모든 것이 되고, 들짐승과 같이 사는 자들이 공중의 새 같은 자들이 많이 깃들인다. 이것은 느부갓네살과 바벨론 제국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실제 역사다.

느부갓네살이 짐승의 마음을 품었고 소처럼 기어 다니면서 소처럼 풀을 먹고 7년간 살았다. 이것을 종말까지 주신 것은 종말에 해당하는 것으로 요한계시록17,18장 큰 바벨론이 나온다. 큰 도성 바벨론이고 음녀이며, 그 음녀는 일곱 머리 열 뿔 짐승을 탄다. 음녀가 일곱 머리 열 뿔 짐승, 즉 적그리스도를 도와서 그가 정권을 가지고 정권 정사로 다스리는 데에 돕는 일을 한다. 영적인 것과 정신적인 면, 모든 것을 통합해서 적그리스도의 정권창출이나 유지에 돕는 역할을 한다. 올라탄다는 것은 같이 밀월여행을 한다는 것이다. 서로 돕는 관계 협력하는 관계가 된다는 말이다.

큰 바벨론이 뭐냐?‘온 세상의 모든 종교조직을 하나 되게 한다.’종교가 전부하나로 통합되게 한다는 것이다. 영적이며 정신적인 것과 종교들이 바벨론이 되는 것이다.‘하나의 조직화’,‘하나의 세력화되어서 전 세계가 적그리스도 소속이 되게 한다.

여기에 기독교 지도자들이 우상 숭배하는 다른 종교와 섞여 버린다.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변질되어 예수 팔아먹는 것이 된다. 그것이 배도하는 것이고 음녀가 되는 것이다. 음녀가 큰 바벨론이라는 것은 전체 전 세계의 종교조직이 하나로 된 큰 바벨론인데 여기에 많은 교회가 배도하여 붙어버린다.

이들에게 하나님이 관심이 있으며내 백성아 그 음녀에게서 나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환란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사역하신다. 10절에 느부갓네살 왕이 나무가 되어 땅 가운데 높이 있는 것 같이 당시에는 바벨론이지만 종말에는 큰 바벨론인 음녀가 전 세계 종교 조직이 되어 세력이 커지고 편만하게 된다.

그 세력이 커지고 온 세상에 편만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편만하게 되어 가느냐? 교회들은 하나님의 주시는 지혜로, 성령이 주시는 말씀으로 깨닫고 그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지혜로 성경을 풀어간다. 그렇게 풀어가니까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타종교와 같이 사랑하고 포용해서 화목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바꿔 놓는 것이다. 사람의 지혜는 마귀적인 것이다.

하나님과 우상과 화합하라는 것이고 빛과 어둠이 함께 하자는 것이다. 성경에서 뭐라 말씀하는가?‘빛과 어둠이 함께 할 수 없고, 성전과 우상이 같이 할 수 없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같이 할 수 없다.’고 선포한다. 그런데 신앙의 기준을 사람의 지혜로 만들고, 인본주의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적그리스도도 적그리스도로 보지 않고 그들과 같이 손을 잡고 협조,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주는 표도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현대의 물질문명 생활 속에서 편리하고 안전하고 좋은 것이니까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공중의 새는 궁창의 새와 다르다. 궁창의 새는 말씀으로 창조한다(1:20~21).

공중의 새는 땅의 흙으로 만들어진다(2:19). 궁창의 새는 두 날개로 나는 새로서 감사와 찬송으로 열매 맺게 하는 역사를 계시한다. 공중권세 잡은 자가 마귀하고 했다. 공중의 새는 섬김을 받으려하고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으로 들짐승 마귀에 속한 자의 역사를 계시한다. 혼자 독처하는 것이다. 큰 바벨론 즉 음녀교회 안에는 섬김을 받고 이름이 유명해지고 자기이름 내기 좋아하는 자들이 깃들여 있다.

예수님은 섬기러 왔다 섬김 받으러 온 것이 아리라 자기 백성을 위해 죽으러 왔다.‘너희는 나를 따르라 했다.’종들과 성도들은 섬겨야 한다. 우리 이름이 자꾸 공중으로 새가 올라가듯 높아지면 되지 않고 주님의 이름이 자꾸자꾸 높아져야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니까 주인인 주님의 이름만 높아져야 한다. 내 속에 있는 주님이 대접받고 높아져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 말씀이다. 그런 사람들은 음녀 바벨론에 속할 수 가없다. 거기서 떨어져 나온다. 큰 바벨론 즉 배도한 교회들이 해당되는 음녀에게서 나온 자들을 이단자로 처형하고 목 베임을 받게 된다. 앞으로 환란 날에 순교하게 되어있다.

하늘에 닿고 온 땅에 이른 나무에 붙은 잎사귀, 열매와 거기에 모이는 들짐승과 깃들은 공중의 새들은 교회가 배도한 그 속에서의 현상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성경지식도 인본 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의 지혜대로 하고 있고, 생활도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바라보는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영생할 것에 대한 것이 목적이고 신앙의 푯대가 아니라 금생에서, 이 세상에서 복되거나 세상의 부귀 영광을 취하리라는 것은 잎사귀가 아름다운 음녀 교회에 속한 자들이다.

만약 하늘나라의 영생을 관심을 가지고 소망하며 산다면, 하루를 살아도 믿음으로 산다. 믿음으로 열매 맺는 것이 영생이 되기 때문이다. 꿈의 내용이 먼저 바벨론과 느부갓네살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지만 이차적으로 큰바벨론과 적그리도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2)징벌은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다(13~16, 23~33)
한 파수꾼은거룩한 이곧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시다(13). 느부갓네살 왕을 징벌로써 바로 세우시는 분이다.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그 잎사귀를 털고 열매를 흩어 짐승들로 떠나게 하고 새들도 그 가지에서 떠나게 하라고 명한다.

나무를 베라(14) 나무가 베어지는 것은 왕이 사람들로부터 왕의 자리에서 쫓껴 나는 것이다. 25절에서 해석해 준다. 왕의 거처가 들의 짐승들과 함께 있게 된다. 다니엘서 11장에서를 말한다.‘일곱 때일곱 해를 말한다. 7년을 말한다. 7년 동안 왕이 짐승의 마음을 받아 들에 거하고 소처럼 풀을 먹게 된다.

하늘의 이슬로 왕을 젖게 한다는 것은 왕에서 쫓겨났어도 짐승의 마음을 가지고 7년 동안 하나님의 은총을 계속 받고 살게 한다는 것이다. 교만하여 하나님 자리에 자기가 들어가서 기고만장한 것을 베어서 끝내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베지만 그루터기는 철과 놋으로 싸매고 하늘의 이슬로 젖게 하라는 것은 일곱 해 동안의 징벌이 하나님의 은총가운데서 있다는 것이다. 짐승같이 되어가는 큰 고통, 환란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의 이슬로 일곱 해 동안 젖게 한다는 영적의미이다.

일곱 때’(16) 느부갓네살이 징벌로 경험한일곱 때는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앞으로 있을 개국이래로 없는 환란, 7년 환란이 일곱 때와 같은 것이다. 7년 환란이 깨닫는 우리에게는 복된 것인가? 화이고 저주인가? 복된 것이 된다는 것으로 깨닫는 자는 정말 지혜로운 자이다. 환란을 통해서 우리가 순교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환란 전에는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세상적인 미련이 좀 있다. 육적인 찌꺼기가 완전히 빠지지 못한다. 그러나 환란의 불구덩이에 집어넣어서 들들 갈리면서 찌꺼기가 완전히 빠져 버리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9장에 5개월황충이의 화에 의하여 전갈의 쏘는 고통을 겪으면 세상에 살고 싶은 미련이 온전히 빠져 버리는 것이다.

어서 순교했으면 좋겠다고 사모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환란이 내 안에 있는 세상미련도 찌꺼기도 빼내서 온전케 하여 순교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사랑이다. 할렐루야! 이것이 하늘의 이슬이 일곱 때를 왕에게 젖게 하면서 보전시키면서 일곱 때가 지나면서 총명이 돌아온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