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랴서 강해】(4)
1:1~6스카랴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 1:5/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 그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지금 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습니까? 없지요, 그리고 그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습니까?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6/그러나 내가 내 종 선지자들에게 명했던 내 말과 내 규례들이 너희 조상들을 붙들어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그들이 돌이켜 말하기를 만군의 주께서 우리의 행실과 우리의 행위에 따라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생각하셨던 대로 우리에게 그같이 행하셨도다.’고 하였느니라.”하시니라.
 
  하나님의 진노는 세가지가 있다. 너희 조상들이 어디있느냐? 그리고 그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내가 내 종 선지자들에게 명했던 내 말과 내 규례들이 너희 조상들을 붙들어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그들이 돌이켜 말하기를 여기서 돌이켰다는 말은? 무엇을 잘 못하였는데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회상을 말한다. 과거를 돌이켰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7절에서부터는 여덟 번째 환상가운데 첫째 환상이 나온다. 7절에서 /다리오의 치리 제 이년 스밧 월인 십일월 이십사일에, 주의 말씀이 선지자 잇도의 손자, 베레키야의 아들 스카랴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니라. 여기서 다리오의 치리 제 이년 BC 520년도가 된다. 또한 스밧 월은 갈대아인의 달력이다. 우리나라 달력으로는 스밧 월인 십일월 이십사일은 1월 말에서 2월 초가 된다.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잇도의 손자 베레키야의 아들 스카랴에게 임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8/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아래 도금양나무들 사이에 섰는데, 그 뒤에는 붉은 말들과 얼룩 말들과 흰 말들이 있더라. 고 했다. 여기서 내가 밤에 보니, 보았다는 말은 밤에 환상을 보았다는 것을 말한다. 16:25에서도 한 밤에 부르는 노래가 나온다바울과 실라가 어두운 밤에 캄캄한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미할 때에 옥문이 열려져서 감옥살이를 청산하였다.

  25:6에도신랑을 맞으러 나오라는 음성이 들려온 것입니다.“한 밤중에 소리가 나기를보라, 신랑이오니 나가서 맞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한밤중에 이슬과 함께 만나가 내렸습니다. 한밤중에는 낮에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나타난다. 밤에는 하늘의 별들이 반짝거린다. 그리고 밤에는 풀벌레 소리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여기 본문에내가 밤에 보니그랬다. 우리가 행 16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아세아로 가서 복음을 전할려고 할 때에 하나님은 그 일을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제는 무시아로 가기 위해서 애를 써봅니다.

  그러나 역시 하나님은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트로와로 내려왔다. 이렇게 애를써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트로와로 내려오니 그날 밤에 바울이 환상을 보게 됩니다. 이 길도 저 길도 막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어떤 뜻이 내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환상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때론 어떤 일이 잘 되지를 않고 막히는 일이 있다. 만일 내게 그러한 일이 있다면 하나님을 더 찾으십시오, 주님을 더욱 가까이 찾으십시오, 낙심하지 말고, 실망과 좌절을 딛고 일어서서 아!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뜻이 계셔서 나의 가는 이 길을 막으시는구나? 하고 깨달아서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무엇인가 길이 앞 길이 막힐 때에 그날 밤에 환상이 보이는데, 어떤 마게도니아 사람이 서서 간청하기를마케노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는 것이다. 그때에 바울은 아하! 내가 갈곳이 여기였구나. 내가 가야할 선교지가 여기 였구나! 하고 곧바로 마케도니아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하고 빌립보까지 건너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럽에서 복음이 뻗어나가고, 결국은 세계가 복음화가 되어집니다. 만일 그때에 아시아로 먼저 복음이 들어왔다면 이렇게 세계복음화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아시아에는 복음이 먼저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셨고, 맨 마지막에 아시아 일곱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시 영원한 복음을 이 아시아에서부터 전하게 하시려고 맨 나중에 들어 쓰시기 위하여 감추어 놓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불교, 유교, 이슬람 등, 모든 종교는 서양 종교는 없고, 모든 동양에서 만든 것이다. 종교는 동양에서 만들었다. 그래서 이 길도 막히고, 저 길도 막혔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절망적인 밤에 환상을 본 것입니다.

  1:8/내가 밤에 보니, 그랬다. 밤에 환상을 보는데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아래 도금양나무들 사이에 섰는데, 라고 했습니다. 여기 한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 주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리고 붉은 말을 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속죄의 주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장에서 주님은 흰 말을 타고 나타나셨는데, 흰 말을 타고 오신 주님은 바로 승리의 주님을 가리킵니다. 여기 8절에서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아래 도금양나무들 사이에 서신 분은 바로 초림의 매시야 이시며, 속죄의 주님을 가리킨다. 그리고 도금양나무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는 녹색의 상록수과이며, 꽃은 백색이며, 열매는 남색이며, 아름다운 향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카랴가 계시를 본 시기는 밤이요, 장소는 골짜기 아래 도금양나무들 사이이다. 내용은 붉은 말을 탄 한 사람을 보았다고 했다. 여기서 밤은 역사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시대를 가리키고 영적으로는 암흑속에 있는 성도들의 환난 시대요, 즉 수난 시대를 가리킨다. 그리고 골짜기는 어두운 곳, 그늘진 곳을 가리킨다. 실지로 예루살렘 동쪽에는 기드론 시내 골짜기가 있고, 남쪽에는 흰놈의 골짜기가 있는데, 봄이 되면 도금양나무들의 꽃이 아주 아름답게 핀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도금양나무는 당시 포로인 이스라엘을, 중보자 예수님을 가리킨다. 이 예수님이 붉은 말을 타셨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운동을, 십자가의 보혈 운동을 가리킨다.

  63:13보스라에서 물들인 옷을 입고, 에돔에서 오는 이가 누구인가? 그의 의복이 화려하고, 그의 능력의 위엄으로 거니는 이가 누구인가? 의로 말하는 나니, 구원하기에 능력이 있도다.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은가? 나는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고, 백성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아무도 없었도다. 나의 분함으로 그들을 밟고, 나의 진노함 속에서 그들을 짓밟으리니, 그러면 그들의 피가 내 옷에 튀어서, 내가 내 의복을 모두 얼룩지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원하시기에 능력이 있으신 분이 그 의복에 피가 튀어서 얼룩지게 했다고 말씀합니다.

  19:13피에 적신 옷을 입었는데,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더라고 했습니다.
17:11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으며라고 했습니다. 9:22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붉은 말 운동을 해야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성경에서 엘리야를 생각하면 무슨 나무가 생각납니까? 로뎀나무를 생각할 수 있다. 엘리야는 도금양나무들 사이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다.

  로뎀나무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상수리나무 아래서 제단을 쌓았다. 아브라함은 상수리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으며, 그리고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신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리고 아담. 하면 에덴동산 안에 있는 선악나무를 생각합니다. 또한 아가서에 나타난 예수님은 사과나무에서 나타나셨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각 장과 각 절마다 특징이 있다. 15장에서 우리 예수님을 참 포도나무로 비유하셨습니다.

 또한 계 11장에서 두 증인은 감람나무로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야곱은 살구나무 버드나무, 신풍나무를 생각할 수 있다. 야곱은 버드나무, 신풍나무, 살구나무에 대한 신학을 공부하고, 양들을 개량시켰다. 개량된 양들은 점박이 아롱진 것, 이렇게 인쳐서 엄청난 거부가 되었다. 야곱은 살구나무, 버드나무, 신풍나무의 환상을 본 다음에 양들을 다 얼룩진 것과 점박이 등을 개량하였다. 본문에 도금양나무는 사랑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그런데 사랑을 상징하는 도금양나무가 아주 깊은 골짜기에 있다. 그리고 그 골짜기는 슬픔의 골짜기 사망의 골짜기인데, 이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도금양나무들 사이는? 이 골짜기와 저 골짜기의 사인데 사이라는 말은 중보자의 길을 말씀하고 있다. 이어서 붉은 말들이 등장하는데, 이 붉은 말은 전쟁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얼룩 말은 좋치않은 말이다. 재앙을 말한다.

  여기 얼룩 말은 현대인의 성경에는밤색말이라고 했다. 공동번역 성서에는 잿빛 말로 번역이 되어 있다. 이렇게 한 단어가 여러 가지로 번역이 되어 있다. 특히 현대인의 성경에서의 얼룩 말은 계시록에서 청황색 말을 가리키고 있다. 사실 여기 얼룩 말은 좋지 않은 징조이다. 그 다음에 흰 말들이 등장합니다. 여기 흰 말들은 예수께서 부리는 3대 병거이다. 거듭 말해서 붉은 말들은 전쟁을 말하고, 얼룩말들은 사망을 가리킨다.

  그리고 흰 말들은 승리를 상징한다. 1:9/그때 내가 말하기를 오 내 주여, 이들은 무엇이니이까?” 하였더니, 나와 말하던 천사가 말하기를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여 주리라하더라. 10/또 도금양나무들 사이에 선 그 사람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이들은 땅에 두루다니라고 주께서 보내신 자들이니라.”하니, 했다. 여기서 도금양나무들 사이에 서 계신 주님에 대해서 일곱가지를 찾아볼 수 있다. 여기 도금양나무들 사이에 서신 주님은 바로 계시의 절대 주권자이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붉은 말을 타고 계시는데 이것은 속죄의 주님을 가리킨다.

  한 사람은 바로 인자 예수님이다. 그리고 골짜기 아래 도금양나무들 사이에 서신 분은 소망의 주님을 가리킨다.성경에 아골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으신다고 했다. 아골골짜기에 아간이가 벌을 받아서 그 돌무더기 속에 뭍혀서 죽었던 장소이다. 돌은 예수님을 상징하는데, 그러한 아골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골골짜기의 사이에 계시는 것은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다음으로 여기붉은 말들얼룩 말들, 흰 말들을 거느렸다고 했는데, 이것은 우리 성도들을 보호하시는 주님이심을 말씀해 준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는 계시의 주님, 말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도금양나무들 사이에 서신 예수님을 우리 모두가 환상 가운데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놀라운 위로와 소망이요, 사랑을 나타 내시는 인자 예수님으로 붉은 말을 타신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느뇨?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아래 도금양나무들 사이에 서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의 키드론 골짜기로 보고 있다. 그런데 우리 인생들의 가는 길에는 골짜기가 왜 그렇게 많습니까? 사망의 골짜기, 아골 골짜기, 음침한 골짜기, 이렇게 골짜기가 많습니다. 거기에 피는 바로 도금양나무로 보여준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무화과나무로도 상징합니다. 그러나 도금양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그곳에 우리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은 중보자의 위치로 나타나신 것이다. 이것이 환상중에 첫째 환상이다. 8대 이상 가운데 첫 번째는 도금양나무들 사이에 서 계신 주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씀이다.

 여기 첫 번째 환상을 스카랴선지가 보고오 내 주여, 이들은 무엇이니이까?”하고 묻습니다. 그때 천사가 말하기를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여 주리라고 했다. 그래서 10절에서? /또 도금양나무들 사이에 산 그 사람(우리 예수님)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이들은 땅에 두루 다니라고 주께서 보내신 자들이니라.”고 했다.

  도금양나무들 사이에 서 계신 주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11? /그들이 도금양나무들 사이에 선 주의 천사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땅을 두루 다녀 보니, 보소서, 온 땅이 조용하며 평안하더이다.”하더라. 그랬습니다. 12/그때 주의 천사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오 만군의 주여, 그들에 대하여 진노를 가지신 지 칠십 년이 되었는데, 언제까지 주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에 자비를 베풀지 아니하시려나이까? ”하니. 그랬습니다. 특히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에게 노하신 지 칩십 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BC 606년에 포로가 되어 끌려간 지 70년이 되었으니, BC 536년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바빌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간 것이 70년 기한이 다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진노를 가지신 지 칠십 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포로가 된지 70년의 기한이 차서 이제 진노를 거두시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한다는 선한 말씀, 위로의 말씀으로 대답하신 것입니다. 선한 위로의 말씀은 바빌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간 지 칠십 년의 형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고 하는 엄청난 위로의 말씀입니다.

  14? /그러므로 나와 이야기하는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너는 부르짖어 말하기를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또 시온을 위하여 큰 질투로 질투하노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너무도 예루살렘과 시온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바빌론에게 빼앗긴 것을 하나님은 원치않습니다. 우상에게 영감을 빼앗기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크게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5/또 내가 평안히 있는 이방을 심히 불쾌히 여겼더니, 그들이 고난을 가중시켰음이라. 고 했다. 여기서 평안히 있는 이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히 고통을 주었던 그 사대 강국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그들을 진노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난을 가중시켰다고 했다. 힘을 내어 고난을 더 가중하였다는 것이다.

  사람이 잘못을 행한 다음, 이제부터 다시는 그러한 짓을 하지 말자고 결심을 하고 회개하고 돌아 서서는 또다시 죄를 저지르고 우상 앞에 가서 그 우상을 섬긴다면, 이것은 매맞을 일을 스스로 가중시킨 것이다. 회개하고 돌아와야 되겠느데, 그러나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조금 노하셨는데, 사람들은 매맞을 짓을 더하고, 고난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16/그러므로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자비와 더불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내 집이 그 안에 건축될 것이요, 예루살렘 위에 한 줄이 그어지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성전이 건축이 되는데 한 줄이 예루살렘 위에 그어진다고 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하여 먹줄이 그어지고 기초 공사가 시작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로 인하여 솔로몬 성전이 몽땅 불타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다시 돌아와서 스룹바빌 성전을 짓기 위해서 측량줄이 그어진 것은 소망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는 매를 맞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그 은혜를 감사하여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그런 말씀이다. 그러면서 17/너는 더 부르짖어 말하기를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니, 내 성읍들이 번영하여 널리 퍼져 나갈 것이며, 주께서 다시 시온을 위로하시고,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라.’하라, 고 하더라. 여기서 너는 더 부르짖으란 말은 계 10장에서 작은 책을 받아먹고 다시 나가서 예언하라는 것이다. 은혜복음으로 예언하셨던 사도 요한은 작은 책을 받아먹고 다시 나가서 예언한 것이다. 사자가 포효하는 것처럼 큰 음성으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 일곱 천둥이 소리를 발하더라, 고 했습니다.

  둘째는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번영하여 널리 퍼져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전에는 솔로몬의 성전을 짓고 하나님의 많은 복을 받았다. 그러나 후에 우상을 숭배함으로 말미암아 바빌론으로 포로가 되고, 끌려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칠십 년 만에 돌아와서 성전을 다시 건축함으로 번영이 온다는 것입니다. 풍부하여 진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으로 오십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면 더 좋은 것으로 언제나 풍성하게 번영을 누리게 하십니다. 매를 들어 때리면 그 자식이 더 가까워지는 것처럼 하나님께 매를 맞는 백성들은 하나님을 더 가까히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번영케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외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온을 다시 위로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지난번 하나님이 위로하는 정도가 아니다. 이번에는 매 맞은 다음에 돌아왔을 때, 다시 위로해 주십니다.

  예언의 말씀을 듣고 다시 은혜를 받고, 다시 그 말씀을 통해서 더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선택한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번 선택한 것, 그 선택이 취소된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과의 맺은 언약은 영원히 불변하시지만, 그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바빌론으로 끌려갔을 때는 그 일로 하나님은 버리신 것이 아니십니다. 그 백성들이 죄를 지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다시 돌아오면, 예루살렘을 선택한다는 말은 예루살렘을 선택했다가 버리기도 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이 말씀은 계 14장을 보면 144000 명이 나오는데, 이들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뽑아낸 하나님의 종들이다. 그들이 다시 인치는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예루살렘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의 어머니라고 했는데, 이 예루살렘이 오늘로 말하면 교회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하늘에 있는 영적교회,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부르짓으라, 내 성읍들이 번영하여 널리 퍼져 나갈 것이다. 주께서 다시 시온을 위로하실 것이다.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낡은 습관과도 같은 신앙생활을 버리고 다시 신앙생활을 바로 해야합니다.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일곱절기를 모르고 신앙생활 하는 분들도 이것을 배워서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강해를 하고 있는 정 목사도 이와 같은 사실을 늦게 깨닫게 되었다. 이와 같은 비결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많은 일을 했지 않았겠는가? 하고 생각을 해봅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정 목사에게도 기회를 주신다면 하나님의 선지생도를 배출하는 선지학교를 세워서 운영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돈 없고, 약한 사람들 중에서 사명감은 있는데, 선지학교를 다녀서 주의 일을 하고 싶은데, 그러나 여건상 선지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사명자를 찾아서 공부를 시켜서 이 시대에 큰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큰 나팔을 불어야 한다. 적은 소리는 귀가 가리워져서 듣지 못하기 때문에 큰 소리로 나팔을 불어야 한다. 할렐루야!

                                                             다음에 계속됩니다. 편집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