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믿음은 행함 있는 믿음인가? -16-

(2:26)                                                    이지볼 대표 손용재 목사(칼럼리스트)


칼럼리스트 손용재 목사.jpg

1. 위 물음에 세상에 누가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나는 행함이 있다. 나는 노력하며 산다. 독자는 어느 편인가? 이 말은 현재 내가 산 믿음인가? 죽은 믿음인가 기준이 되는 말씀이다. 만약 이 내용이 명쾌하게 복음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확신 없는 죽은 믿음으로 가지 않겠는가? 죽은 믿음으로는 천국에 못 가지 않은가?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을 얻고자 한다면 말씀 속에서 진리를 바르게 해석해야 될 것이다.

 

2. 성경에 아브라함도(4:2) 행함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도 마음은 원이로되 선함이 없다고 말하며 (7:18). 야고보사도 또한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 한자가 된다고(2:10) 야고보 자신도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한 말이다. 야고보자신도 지킬 수 없는 법을 우리에게 지켜서 천국 가라고 한다면 맞는 말인가? 야고보가 말한 행함은 분명히 율법적인 행함이 아니고 복음적 행함을 말하고 있다.

 

욥 또한 공평한 저울에 달려 나의 정직함을 알게 되길 원했다(31:6). 그는 고아 과부 의복이 없어 빈궁한 자를 위하여 의로운 삶을 살았다고 항변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에게 스스로 의롭다하여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의로운 네가 심판을 받는다면 내가(하나님) 불의한자냐? 하나님은 욥에게 분명히 죄인임을 말하고 있다(40:8), 불의한자 의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3. 부자 관원이 예수님에게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느냐고 질문할 때 계명을 말하였고 관원이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 하셨다(18:22) 선한 방법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해서 구원 얻는 것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가 더 쉽다고 하신 말씀은 내가 노력해서 선하게 의롭게 살아 천국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이 아닌가? 이렇게 내가 무엇을 해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즉 하늘 생명을 얻는 길은 전무한대 야고보 사도가 말한 행함이 있는 믿음이 산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행함은 과연 어떤 행함인가? 아브라함은 아들이삭을 제물로 드릴 때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아가게 할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두 구절이 행함 있는 믿음이 무엇인가 야고보사도가 말 하고자 하는 답이다.

 

4. 아브라함은 늙어 아들을 낳을 수 없는 때에 하늘에 별과 같이 후손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약속을 믿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15:5-6). 그러나 내게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 무자하오니 상속자 엘리에셀이나 하나님 앞에 잘 살기 원한다고 하나님께 아뢰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기다리지 않고 여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하나님은 사라에게 아들을 낳게 해주겠다고 말씀할 때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잘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아브라함은 창12:5 애굽 왕에게 아내 사라를 누이라 속였다. 이유는 아브라함이 죽을까 해서다. 약속을 못 믿는다.

 

5. 하나님은 왜 이삭을 죽이라 명하시는가?(22:2) 여기에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하면 죽이라고 하는 것은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 된다. 왜 이삭이 죽으면 안 되는가? 아브라함 나이 75세부터 115세 생애를 보면 처음 약속한 하늘의 별 수와같이 후손들이 많아 질 것이라는 약속을 믿었다가 헷갈리고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자기 노력으로 여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았고 죽을까 하여 사라를 누이라 속이고 비웃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지 못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시험을 통하여 죽고 사는 생명에 관한 문제를 시험하신 것이다. 이삭을 바치라 즉 죽이라 살인하라. 하나님은 살인하면 안 되는 법아래서 아들을 죽이라고 명하신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드리는 것은 아들이삭이 절대 죽지 않는다는 법에 순응한 것이다. 의미 없이 하나님이 죽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

 

살인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죽지 않는다는 약속의 법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요구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아브라함은 약속의 법을 쫓았다. 이것이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다. 이삭을 죽임으로 역설적 해석으로 아들이 살았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죽이라 한 것은 시험이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 아브라함은 자녀가 별 수와 같이 후손들이 많아지려면 이삭이 죽지 않아야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대로 죽이라고 요구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준비하신다고 말 한다. 하나님이 준비하시지 않으면 이삭이 죽는다. 이삭이 죽으면 하나님과 약속이 잘못되며 하나님께서 문제가 된다. 아브라함이 이 약속을 믿는 행함이다. 아브라함이 시험받을 때 이삭을 믿음으로 드렸다. 이삭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다(11:17),

 

6.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고 다른 길로 나아가게 하였다. 왜 이것이 행함 있는 믿음인가? 라합의 행함은 아비 형제 사촌 이웃 형제를 생명을 얻을 수 있게 죽음과 멸망의 여리고성에서 성 밖으로 목숨을 걸고 옮기는 행함 생명을 살리는 행함을 두고 야고보가 말한 것이다. 요일 2:25절에 우리에게 약속한 것은 영원한생명이다. 이 말씀을 믿고 이웃 형제에게 증거하고 하늘 생명을 얻게 하는 행함을 말하고 있다.

 

자유의 율법을 가진 자들처럼 말하기도하고 행하기도 하라(2:12). 야고보 기자는 율법적인 행함을 말하지 않고 아브라함처럼 라합처럼 죽을 생명을 살리는 행함을 말 한 것이다. 아브라함과 라합에게 죽지 않는다는 약속이 주어졌다. 오늘도 이 약속의 행함을 요구하신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