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은 물론 명예로운 자리죠. 그런데 길어야 1년이에요. 국회의원도 좋죠. 그런데 부하가 없어요. 군수는 크게 돈 욕심만 안 부린다면 보통 8년, 12년 해먹어요. 그리고 수하에 적어도 500명쯤 되는 공무원들이 있어요. 장관이 부럽지 않은 자리죠.”군수와 부지사를 지낸 중앙부처 1급 공무원 L씨의 말이다. 서울에서 대학교수를 하다 군수가 된 황주홍 전남 강진군수는 ‘강진군에서도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는 책에 이렇게 썼다.

“고향에서의 군수 일은 영예롭고 보람찬 것임에 틀림없다. 조부님과 할머니와 아버지가 누워 계시고,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고향 땅을 위해 내 땀과 눈물과 열정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은 은혜롭고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힘도 있고 보람도 있는 자리, 주민들이 친근감과 존경심을 담아 ‘영감’이라고 불러주는 자리, 지방행정의 꽃이라는 자리, 군수는 그런 자리다.

국회의원과 노동부 장관을 지낸 유용태(71)씨는 6·2 지방선거에서 경기도 여주군수 후보로 나온다. 김흥래(68) 전 행정자치부(행정안전부) 차관은 전남 진도군수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고, 서울 강남구청장을 세 차례 연임한 권문용(68)씨는 충남 연기군수 후보로 나섰다. 중량급 인사들의 잇단 출마 선언은 군수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직이라는 걸 짐작케 한다.

4년 전 5·31 지방선거로 선출된 민선 4기 군수들의 비리 행렬은 또 다른 차원에서 군수의 힘을 보여준다. 2006년 전남 신안군수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군수 20여명이 임기를 못 채우고 중도 하차했다. 전국의 군수 4명 중 1명꼴이다. 경북 청도군, 경남 창녕군, 충남 연기군 등 3곳은 재선출한 군수마저 불법을 저질러 세 번째 군수가 임기를 수행하는 중이다. 대부분 선거법 위반이나 뇌물수수 혐의로 걸렸다.

수사를 받고 있는 군수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경기도 여주군수가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2억원의 뇌물을 건네려다 현행범으로 붙잡혔고, 충남 당진군수와 경북 영양군수는 감사원 감사 결과 비리가 드러났으며, 충북 옥천군수와 전남 해남군수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이는 군수 자리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리고 얼마나 힘이 센지 알게 한다.

전국에 230개 기초자치단체(시·군·구)가 있고, 그 중 86개가 군이다.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군(郡)이라고 하면 군민 숫자가 5만5000명쯤 된다. 시(市)나 구(區)에 비해 인구는 적지만 면적은 넓다. 군 공무원 숫자는 대략 500∼800명, 연간 예산은 국비·도비 보조를 포함해 2000억∼3000억원 된다.

군수가 되면 관사와 관용차를 제공받고, 운전기사와 비서가 따라온다. 연봉은 약 7000만∼8000만원으로 1억원을 넘지 않는다. 대신 업무추진비로 쓸 수 있는 돈이 1년에 3억원가량 된다. 이런 자원을 대수롭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규모로만 보자면 그런 평가도 가능하다. 그러나 군수의 권한을 고려한다면 평가는 달라진다. 군수는 각종 사업 인·허가, 예산편성과 집행, 인사 등에서 전권을 행사한다. ‘지역 영주’니 ‘소통령’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군 홍보팀장을 맡고 있는 과장급 공무원 S씨는 “권한 다 있지, 사람 다 있지, 어딜 가나 상석이지, 군수는 정말 해볼만한 자리”라고 말했다. 공직 생활 대부분을 지방행정 분야에서 일해 온 L씨는 “군수의 힘은 땅에서 나온다”고 분석했다.

“권력은 영토와 사람에게서 나와요. 군은 사람은 적지만 테리토리(territory), 즉 영토가 넓어요. 공유지 공유림 등 땅이 많으니까 여러 가지 사업이 가능한 거죠. 사업에는 각종 허가권이 붙어 있잖아요. 골재채취 허가, 공원묘원 이용 허가, 온천개발 허가 등등. 인·허가권을 다 군수가 가지고 있어요.”

그의 얘기는“예를 들자면, 청원군수가 청주시장 못잖다”로 이어졌다.“청주시는 땅이 없어요. 청주시에 골프장이 있습니까? 공장 지을 터나 쓰레기처리장 만들 공간이 있습니까? 시장이 뭘 할 수 있겠어요.”

아파트 단지 조성, 그린벨트 해제, 골재채취장 등 군수가 허가하는 사업이 1년에 수십 개 된다. 지역에서 사업하려면 군청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된다. 골프장도 덩치가 크다. 골프장 하나 짓는데 500억∼1000억원이 들어간다.

지방 공무원 경력 20년째인 S씨는 “군수 재임기간에 100억원 이상 되는 사업이 서너 건씩 생겨요. 100억원 사업이라면 20%만 쳐도 (리베이트가) 20억원인 거죠. 마음만 먹는다면 군수가 1년에 몇 십 억원은 챙길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군수는 한해 2000억∼3000억원 예산을 주무른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국비를 따오더라도 집행은 시장이나 군수가 한다. 예산을 편성하고,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도 군수다. 이 과정에서 비리가 끼어들 여지가 생긴다. S씨는 “돈의 유혹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자리가 군수”라며 “좋은 사람이라도 당선되고 나면 그 유혹을 뿌리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예를 들어 수해대책사업을 추진한다면, 시급하다는 명분으로 수의계약을 할 수 있어요. 그런 특례조항이 있거든요. 수해사업에 엄청난 국비가 내려와요. 당연히 업자들이 달라붙죠. 군수실에서 단독 면담하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밖에서 만나고.”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 대변인 윤진원씨는 “지역에서 관급공사를 발주할 때 공개입찰 관련 정보를 사전에 빼주는 경우가 있고, 때론 수의계약도 이뤄진다”며 “입찰을 받으면 거의 예외 없이 군수나 시장에게 리베이트를 준다”고 말했다.

인사권은 군수 권력의 핵심을 이룬다. 실·과·소장 자리만 해도 20여개나 되고, 부군수도 직접 임명한다. 인사권을 군수가 쥐고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군수의 말을 거부하거나 비판하기 어렵다. 더구나 군 공무원들은 인사 교류가 거의 없다. 군수 영향력을 피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선거에서 줄을 잘못 서기라도 한다면 군수 임기가 끝나는 최대 12년까지 찬밥 신세가 된다.

군수가 동원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은 공무원만이 아니다. 외곽 세력도 만만찮다. 면 단위까지 퍼져있는 각종 관변단체와 직능단체, 여성단체가 그들이다. 이런 이유로 군수 선거에서는 ‘현직 프리미엄’이 강하게 작용한다. 군수의 힘을 얘기할 때, 흔히 ‘무소불위’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군정에 관한 한 군수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군수에게도 전전긍긍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공천이다. 민선 1·2기 경기도 강화군수를 지낸 김선흥(73)씨는 “군수의 최대 고민은 공천”이라고 했다.

“군수가 가장 신경 쓰는 사람이 지역구 국회의원이에요. 공천 받아야 또 군수를 하니까. 공천 받기 위해 공천헌금도 주지만, 국회의원이 공천권을 미끼로 인·허가권에 개입하기도 해요. 대부분 안 되는 걸 되게 해달라는 거죠. 의원 말을 들어야지 어쩌겠어요.”

경북 의성군수를 세 차례 연임하고 국회에 입성한 한나라당 정해걸 의원도“공천헌금 내고 선거비용 마련하느라고 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며“나는 국회의원을 하고 있지만 기초자치단체장의 정당공천은 폐지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김선흥씨는 8년간의 군수 경험을“생애 가장 보람된 시간”으로 기억한다.

“사람들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주민들에게 직접 얘기 듣고 상황 판단해서 예산을 조치할 수 있으니까. 가려운 데를 직접 긁어준다는 느낌, 그게 참 좋았어요. 국회의원은 그런 거 잘 못하잖아요.”

군수라는 자리는 지방자치를 실현하는 핵심에 위치한다. 유재일 대전대 지역발전연구소장(정치언론학과 교수)은 “군수의 위기는 지방자치의 위기”라며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지방의회, 시민단체, 언론, 사정기관 등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