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 정치권이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미국 의회는 부시 정부가 요청한 7000억 달러 구제금융법안을 불과 2주 만에 통과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원과 하원은 관련 상임위를 풀가동해 26차례 청문회를 열었고, 의원들은 선거기간 중이었음에도 유세를 중단하고 의회에 머물렀습니다.

일본은 차기 정권의 향배를 놓고 여야가 극심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인데도 야당인 민주당은 정부가 요청한 경기진작책을 의회에서 군말 없이 통과시켜줬습니다. 민주당은 상원 격인 참의원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정부를 애먹을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당인 자민당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부에 협조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의 야당들도 사안에 따라 초당적으로 정부에 협조하거나, 적어도 정부의 발목을 잡는 일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권은 어떻습니까. 정부가 추석용 민생 선물세트로 마련한 4조2677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은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고, 1000억 달러 규모의 ‘은행 외화표시 채무에 대한 국가 지급보증’ 동의안도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은 수시로 새로운 조건을 내걸며 처리를 회피했습니다.

내년 예산안 처리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원래 헌법에 정해진 처리기한은 12월 2일까지인데 13일에야 처리됐고, 민주당이 협조하지 않아 사실상 한나라당 단독으로 통과시켜야 했습니다. 불과 5개 의석밖에 갖지 않은 민주노동당은 온갖 횡포와 생떼로 예산안 관련 법안을 다루는 법사위 회의 진행을 8, 9일 이틀간 불발시키기도 했습니다.

284조5000억 원의 내년 예산은 경기를 진작시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민생을 보듬기 위한 피 같은 돈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풀려야 그만큼 효과도 더 클 텐데 야당들은 이것마저 정쟁의 제물로 삼았습니다.

국회에서는 지금 ‘예산 전쟁’에 이어 ‘법안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경제 살리기에 필요한 법안 등을 연내에 통과시키려 하지만, 민주당은 결사 저지하겠다는 태세입니다. 민주당은 아예 모든 상임위 참석을 보이콧함으로써 국회 운영 자체를 파행시키고 있습니다.

대화와 타협을 기본으로 삼아야 할 국회에서 전쟁이라는 용어가 공공연히 나도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입니다. 우리는 왜 선진국과 같은 국회가 되지 못하는 걸까요. 여야가 평소에 티격태격하다가도 국가에 위기가 닥치면 서로 합심해 대처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우리는 오히려 위기 앞에서 더 극렬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 같아서는 선진국 국회를 수입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상 3분 논평이었습니다.

 

이진녕 동아일보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