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7:24~25절 “서경석 목사 5월 24일 서울조선족교회 설교”

  사실은 이번에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 국민에게는 참으로 문제가 많은 대통령이었습니다. 우선 우리사회가 심각하게 편가르기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완전히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것은 노무현 정권 때입니다. 과거 김영삼 정권이나 김대중 정권 때에만 해도 이렇게까지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경제도 잘 되지 못했습니다. 평준화를 강조했지만 빈부의 양극화는 더 심화되었습니다. 경제성장율도 국제평균 성장율을 밑돌았습니다. 대북 관계도 심각했습니다. 한미연합사를 해체한 것은 결정적인 실수였고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제대로 비판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김정일에게 끌려 다니며 무조건 퍼주기를 했습니다. 우리사회에 보수가 힘이 커진 것도, 이명박 정부가 탄생한 것도 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족 동포에게는 잊을 수 없는 대통령이었습니다. 오늘의 조선족 동포들의 편안한 삶은 노무현 대통령이 그만큼 조선족 동포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십년 전만 해도 동포들의 현실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동포들의 삶이 개선된 것은 크게 두 가지의 조치 때문입니다. 첫 번째 조치는 동포들이 4년반 동안 합법적으로 체류하도록 한 조치입니다. 당시 저는 정부를 향해 최소한 5년은 한국에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한국에 입국하는데 돈을 천만원씩 써야 하는데 이 빚을 갚는 데에만 2년이 걸린다. 그리고 빚 갚은 후에도 2천만원은 손에 쥐고 돌아가야 할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3년은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주장이었습니다.

저는 이 주장을 하면서 단식을 23일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정부가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여 4년 반을 합법적으로 체류하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제는 됐다고 생각하고 동포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겠다는 동포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돌아가면 못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우리 교회는 “동포들에게 고향에 돌아와 살 천부적인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2천 8백명의 동포들이 8개 교회에 분산해서 단식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서울조선족교회, 새문안, 명성, 지구촌, 소망(기도원), 강남, 강변, 순복음인천 교회가 그 교회들입니다.

단식 16일째 되던 날, 청와대 정무수석인 유인태 수석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유 수석은 노무현 대통령께서 조선족 동포를 찾아가겠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관들은 법무장관도, 행자부장관도 다 반대라는 것입니다. 불법체류자들이 농성을 하는데 대통령이 찾아간다면 법질서가 서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대통령은 생각이 확고하시다는 것입니다. 저는 너무 감격했습니다. 저는 새문안교회로 가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새문안교회는 청와대로서는 부담스러운 곳이었습니다. 당시 이수영 목사님의 정부비판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서울조선족교회로 오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유인태 수석이 내게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다른 동포교회인 김해성목사 교회와 임광빈목사 교회 교인들도 서울조선족교회로 합류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청와대가 그분들에게 직접 부탁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김해성 목사나 임광빈 목사가 다 서울조선족교회로 가지 않겠다고 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고 내게 물었습니다.

나는 그렇다면 서울조선족교회로 오지 말고 김해성 목사 교회나 임광빈 목사 교회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디든 결정되면 우리교인들은 그리로 합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조선족동포를 찾아갔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어느 교회로 갔는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나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기왕 간다면 김해성목사 교회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유인태수석은 내게 “양보해 주어서 고맙다. 그 대신 자기가 서목사가 요구하는 사항은 다 열심히 들어주겠다”고 제게 약속했습니다.

솔직히 섭섭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투쟁한 교회는 우리 교회인데 대통령이 다른 교회로 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섭섭합니까? 나는 내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진행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아내가 나를 칭찬했습니다. 아내에게서 칭찬받기도 오랜만입니다. 아내가 나에 대한 칭찬에 인색하거든요. 나는 아내의 칭찬받은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11시쯤 유 수석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내일 아침 9시에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울조선족교회로 갈 예정이니 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김해성목사와 임광빈목사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서울조선족교회로 가기로 정한 것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울조선족교회 방문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노 대통령께서 우리 교회에 오셔서 동포 숙소로 찾아가니 동포들은 대통령의 바지를 잡고 전부 쓰러져서 오열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십년은 족히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동포들을 사랑한다는 말씀을 뜨겁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의 방문에 대한 보답으로 단식 17일째에 전격적으로 단식을 풀었습니다.

그 후 정부에서 나온 조치가 중국으로 돌아가면 1년 후 재입국시켜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동포들이 이 조치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동포교회도 이 조치를 절대로 믿을 수 없다며 서울조선족교회를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교회 교인 5백명만 내말을 믿고 중국으로 돌아갔고, 중국으로 돌아간 5백명은 1년 후에 전원 귀국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재입국이라는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방문취업제 제도도 생겨 동포의 체류기간이 5년으로 늘어났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울조선족교회 방문이 큰 전환점이 된 것이었습니다. 조선족 동포들의 삶의 개선은 우리교회의 투쟁이 계기가 되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동포 사랑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습니다.

저 개인은 노무현 대통령과 맞서 싸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너무도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노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서울역에서 봉화마을로 떠날 때 우리교인들과 함께 서울역에 가서 대통령을 환송했습니다. 교인들은 노무현대통령에게 “우리는 결코 노무현 대통령을 잊을 수 없습니다”하고 울면서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조선족 정책에 관한 한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발끝에도 못 따라갑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교회 교인들은 예배가 끝나는 즉시로 봉화마을에 조문을 가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90명이 동포가 가기로 해서 대형버스 두 대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나는 노 대통령의 자살은 참으로 옳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노대통령께서 지금 정도의 곤욕은 참아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만 견디면 얼마든지 지나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마 노무현대통령으로서는 박연차회장이 자기와의 돈거래를 다 공개할 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다 드러날 줄 알았더라면 틀림없이 합법적인 방식으로 돈을 받는 길을 택했을 것입니다. 박연차 회장이 아들기업에 투자할 수도 있었고 봉화재단에 공개적으로 헌금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곤욕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이명박 정부의 정치보복적 행동을 비난했습니다. 특별히 <우리들병원>에 대한 가혹한 세무조사는 정치보복이라는 말 이외에 다른 말로 설명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박연차 회장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저는 이러한 검찰 수사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前정권의 비리를 다음정권에서 정치보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철저하게 파헤쳐야 합니다. 그래야 이명박 정부도 비리를 저지를 생각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음 정권하에서 말할 수 없는 곤욕을 치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음 정권 검찰이 이명박 정부가 한 일들을 정치보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철저하게 조사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검찰이 과잉수사, 보복수사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검찰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前대통령으로서는 고통이 매우 컸겠지만 바로 이러한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했던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진득하게 견디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런대로 명예도 상당히 회복될 것입니다.

그런데“바보 노무현”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생명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온 국민을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노무현대통령의 자살은 잘못이었다고 생각하고 우리 국민이 조금이라도 대통령의 죽음을 미화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대통령이라면 이 정도의 어려움은 견뎌낼 수 있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자살했다고 하는 것은 국민을 크게 망신스럽게 만드는 일입니다. 더욱더 안타까운 점은 노대통령께서 그렇게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대통령에게 이 정도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자고 말한 분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명예를 잃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닙니다. 명예를 잃는 것이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인간의 삶에서 명예나 권력이나 재산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침 이슬과 같이 햇볕이 나면 스러지는 것입니다. 왜 노무현씨는 이점을 깨닫지 못했는지 안타깝습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은 자살하지 않습니다. 자살이 죄이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목숨을 끊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신앙이 절망을 극복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독교인도 죽고싶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에 부닥칠 수 있지요. 사도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나를 사망의 골짜기에서 건져낼 꼬”하고 탄식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다음 구절에서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절망을 극복하게 해 주십니다.

노무현대통령께서는 세상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계시다가 저 세상으로 간 것 같습니다. 아웅다웅 싸움만 크게 하다가 결국은 파멸로 끝났습니다. 참된 행복은 명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웅다웅하는 것이 행복이 아닙니다. 참된 행복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인생을 다 마친 후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을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입니다.

불행하게도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이 점을 몰랐습니다. 사람들로부터의 칭송과 열광이 한낱 아침이슬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신앙의 관점이 없었기 때문에 명예가 박살이 난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신앙의 관점이 있었더라면 얼마든지 어렵지 않게 이정도의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죽음 이후에 자기 영혼이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 채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정말로 처절하게 외로운 죽음이었습니다. 이점에서 노무현은 정말로 바보였습니다. 인간 노무현의 영혼이 하나님 품안에서 안식할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인간 노무현의 죽음 앞에서 무엇이 진실로 참된 행복인지를 되돌아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일요일 서울조선족교회 교인 90명은 예배가 끝난 즉시로 봉화마을에 가서 조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은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목 놓아 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