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21;7-9 롬6;3-5

총무 김병수 목사.jpg 부활의 은총은 새롭게 살아나는 은총입니다 부활이란 말은 헬라어로 “일어남을 뜻하는 말이다. 성경적 의미의 부활은 죽은 사람의 몸과 영을 되살아나게 하는 하나님의 기적을 뜻 합니다. 부활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확인 되었으면 예수그리스도는 다시 죽지 않는 삶이 부활인 것을 확증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살리신 세 사람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나사로를 통하여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음을 주님은 보이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통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살 것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통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살 것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가 영원히 살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부활이란 날말의 용법을 분류하여 보면 보통은 “죽은 자의 부활이란 표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죽은 자가 다시 살 것임을 분명히 하신 말씀입니다. 부활은 신약적 용어입니다. 구약에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지만 신약에는 수십 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구약 욥기서 14;14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다시 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도 부활은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분명히 있고 예수님은 부활 하셨습니다.

부활은 영원히 사는 약속을 성취 하신 것입니다.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6;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58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이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사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도 예수님의 살과 피를 통하여 영원히 살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약속을 성취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는 용서 받았고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만 가지고는 영원히 살수 없습니다.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다시 사심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사심으로 영원히 사는 약속을 성취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을 보이시기 위하여 에녹을 죽이지 않고 데리고 가셨습니다.

엘리야는 불 병거를 탄체로 데려 가섰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또 앞으로 살아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앉습니다. 사실 사람이라면 한번쯤 죽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시 살 자시만 있다면 죽는 것이 왜 두렵겠습니까? 죽게 된 사람이 다시 생명을 얻어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황홀한 일입니다. 죽지 않아 본 사람이 영원이 보다 한번 죽어본 사람에게 영원히 사는 것은 더 큰 감격을 줄 것입니다. 우리는 다 죽습니다. 죽어도 괜찮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삽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으로 영원히 사는 감격이 한층 더 클 것입니다.

요11;25-26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정말 믿습니까?

2.부활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사심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허구나 전설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이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헬라 철학은 영혼 불멸을 애기 하지만 부활의 의미는 거부합니다. 당시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이 완전히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기사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난 해 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제자들이 환각에 의하여 잘못 보았다고도 하고 부활한 것도 아닌데 거짓으로 기만 했다고도 했습니다. 현대 학자들 가운데는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하고 상징으로 만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부활의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설들에 대해 반증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드웨테는 시저가 암살 당한 것이 하나의 역사적 사실인 것저럼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도 의심 할 바가 아니다 주장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우리의 죽음은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실 수 없는 죽음을 죽으셨고 우리는 죽을 수 있는 죽음을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죽음을 죽으셨고 우리는 죄의 대가인 죽음으로 죽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사신 죽음을 죽으셨고 우리는 예수님이 살리셔야만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죽을 수 없는 죽음이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의 대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다스리시는 분이기 때문에 죽음을 일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살리신 사람들을 통하여 예수님은 죽음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보이십니다. 모든 사람이 다시 살 것을 예고하십니다. 예수님은 죽음도 지배하시는 분이신 것을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산 것이나 죽은 것이나 차이 없음을 알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다시 사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요2:19절,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이 말씀은 성전이신 예수님 자신을 죽여도 다시 살 것을 헐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만에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살리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셨습니다.

프랑스의 어떤 회의주의자는 “기독교인들은 빈 무덤의 냄새를 맡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습니다. “예화” 기독교인들은 빈 무덤의 냄새를 맡습니다. 결코 무덤속의 죽음의 냄새, 시체의 썩은 냄새가 없습니다. 빈 무덤의 냄새를 맡는 사람들은 다시 사신 주님의 냄새를 맡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냄새가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진동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3. 우리가 다시 살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심을 우리가 다시 살 것을 증명하여 보이신 사건입니다. 단 하나의 다른 점은 예수님은 스스로 사신분이고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사는 사람이라 것입니다 우리는 이생에서 생명을 공급받아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 후 부활 때에 다시 생명을 공급 받아 살게 될것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아 광야생활을 합니다.

그들은 구원 받아 백성이었지만 그 입술에서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불뱀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들에게 불 뱀을 보내어 물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불 뱀에게 물렸지만. 장대에 높이 있는 불 뱀을 보면 다시 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죄와 죄에 대한댓가 그리고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를 모형적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높이 달린 불 뱀을 보는 자는 물렸지만 삽니다. 죽을 자가 사는 것입니다. 보지 않는 자는이미 죽은 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다시 사는 것에 대하여 명확하게 조금도 의심한 할 바 없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롬6;4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전15;22“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또한 우리를 위해 사셨습니다.

예수의 부활로 인하여 내세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할 때마다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고백을 합니다. 우리 모두의 몸이 다시 살뿐만 아리라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죄 사함이 없으면 몸이 다시 사는 것이 없습니다. 몸의 부활이 없으면 영원히 사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의 십자가와 부활과는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집니다. 십자가 때문에 부활이 있습니다. 부활 때문에 영생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부활은 분명히 있고 모든 사람이 다같이 부활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부활이 아니라 생명의 부활을 소유하고 삽니다. 모리스라는 분은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킨 능력이 또한 예수그리스도 속에서 활동 한다.

부활은 계속 되는 작없이다. 토마스 왓슨 “우리는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보다 부활때에 무덤에서 일어나는 것을 더 분명하게 확신해야 한다. 부활의 확실성은 우리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 나는 것보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웨스콧 감독은 ‘부활절 선물은 부활의 능력에 대한 해답이요 오순절 선물은 승천의 능력에 대한 해답이 된다’ 다시 말하면 부활절의 선물은 살려 주시는 은혜이며 오순절의 선물은 부여의 은혜입니다. 사순절 동안 경건의 삶을 사신 여러분! 이제 부활의 영광도 함께 누립시다.

롬 6:5에서 바울은 “만일 우리가 그의 죽음 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자가 되리라”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연합된 기쁨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웨신총회 총무 김병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