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말씀 붙잡고 제사문제 해결해야
 하나님은 제사문제를 원치 아니하신다.

 성경말씀 고린도전서 10:20-22
 
 2011년 구정 설 잘 보내셨습니까? 명절은 반갑고도 슬픈 일입니다. 물론 설 명절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니 반갑고 즐거운 일입니다. 서울에서 부산, 광주까지 멀기는 제주도까지 무려 8~10시간이 걸려서도 부모 형제를 찾아 고생스럽지만 만나고 나면 즐겁고 기쁜 일입니다. 정성껏 빚은 떡과 과일 등 동리마다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갑니다. 하지만 문제는 고등동물인 우리 인간이 헛되고 헛된 우상숭배, 조상숭배에 제사장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있으니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프고 심각한 일입니다.

 가족들을 위하여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먹으면서 사랑하는 부모 형제 가족들이 그동안 못 다한 덕담을 나누면서 가족의 행복 된 시간을 갖는 것은 너무도 행복하고 좋습니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며 절을 해야만 명절분위기가 나는가요? 제사상을 차려놓고 거기에 절을 하고 묘를 찾아가 거기에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해야만 자손들이 할 도리를 다한 것으로 여기는가요? 이러한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제사상에 절을 하고, 성묘를 하면서 절을 하는 행위는 너무도 무서운 죄입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심판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심지어 주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도 이러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엄청난 죄를 짓는 어리석은 죄는 범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매년 설과 추석 때만 되면 저는 하나님 앞에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괴롭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신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건 우상과 교만입니다. 특히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은 가장 싫어하십니다. 모세에게 10계명을 주시면서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있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에게는 삼사 대에 이르는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시간을 드리고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어둠의 세력 사단의 세력에 이 백성들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명절 때만 되면 TV 3사는 방송프로 내용들이 온통 차례 상 차리는 이야기, 성묘 가는 이야기, 드라마도 온통 우상 숭배하는 이야기, 조상 숭배하는 이야기, 심지어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도 차례 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게 만들고, 구제역을 하는 공무원들이 차례 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등 야단법석을 떱니다. 너무도 어리석은 백성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각종 무속인들과 타 종교에서도 야단들입니다.

 천성을 향해 가는 진실한 신자들에게는 유익될 것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우상을 섬기지 못해 안달인가? 왜 민간방송 국영방송들이 우상의 도구 귀신의 도구가 되어 야단들인가? 또한 정부 또한 우상종교 정책을 시행하지 못해 안달인가? 이 모든 행위들은 어둠의 세력에 악력의 세력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이대로 두고만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 민족, 이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까? 이 나라가 수난을 당할 때마다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싸워왔음을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 명절인 설과 추석만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 제사상 앞에 엎드려서 절을 했던가? 참으로 안타깝고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가 안 무섭단 말인가? 하나님의 진노가 두렵지 않는가? 하나님의 심판이 무섭지 않기 때문에 그런 행위들을 겁 없이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설과 추석을 맞을 때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 밖에 우상도 큰 문제이지만 그리스도인들 가정에 그리스도인들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우상부터 몰아내야 합니다. 교회는 소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상을 싫어하신다는 사실을 경고해야 하며 소리쳐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참되게 살게 하기 위해서 교회는 우상을 버리고 멀리하라고 소리쳐야 한다. 교회가 소리치지 아니하면 소리칠 곳이 없기 때문에 교회는 소리쳐야 한다. 목사가 조용히 있으면 이런 말을 할 자들이 없기 때문에 금번 설 명절과 추석 때가 되면 여러분들이 소리쳐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믿고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형벌이 임하게 된다는 이 무서운 사실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아직도 내 안에 내 가정에 우상을 제거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직도 우리는 거듭나지 못한 자들입니다. 아직도 이러한 명절 때마다 제사문제로 마음의 갈등을 느끼고 있다면 아직도 예수의 뜨거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앞으로 설과 추석 때 제사 문제로 갈등을 여기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시한번 나의 신앙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시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이 우상의 문제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예수님과 만나지도 못할 것이며,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몸서리치도록 싫어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우리 집안에서 내 안에서 모든 우상과 거짓 신들을 몰아내는 기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 : 제사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절 =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

 고린도 교회도 우리들처럼 제사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제사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제사는 모두 귀신에게 드리는 제사입니다. 귀신과 교제하고 살기 원하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린다면 그것이 곧 귀신과 교제하는 행위이며, 귀신에게 경배하는 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왜 죽은 자들을 위해서 드린 제사가 우상이며, 귀신에게 드리는 것인가? 제사라는 용어가 주는 의미 때문입니다. "제사"란 용어는 "예배 한다" "신을 두려워 한다" 라는 뜻입니다. 인간에게 경배와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제사이기 때문에 그것은 곧 귀신에게 하는 행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죽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육체와 영혼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영과 육이 분리되는데 이것이 곧 죽음입니다. 영이 떠나면 육체는 부패되고 썩어져 흙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3:19) 육은 비록 흙으로 썩어져서 돌아가지만 영혼은 죽지 않고 가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은 두 길이 있습니다. 한 곳은 예수를 믿고 죽은 자가 가는 낙원이 있고, 한 곳은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자가 가는 음부가 있습니다. 절대로 사람 영혼이 구천을 떠돈다는 말은 믿지 마십시오, 음식을 차려놓으면 조상귀신이 와서 먹는 설도 믿지 마십시오, 이는 다 허무맹랑한 설에서 온 것입니다. 사단이 인간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사라는 것을 먼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고등 종교를 가진 민족에게는 없었습니다. 주로 하등 종교, 열등 종교, 미개한 민족들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중국에서는 공자 이전에 제사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황제에게만 제사를 드렸는데 나중에는 점차 일반 사람들도 자기 부모가 위대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제사제도가 생겨났는데, 이것이 송나라 시대에 유교학자 주희에 의해서 반드시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해서 철학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신라, 고구려시대에는 제사가 없었습니다. 고려 말과 이조 시대에 유교가 중국에서 들어오면서 제사가 우리나라에 미풍양속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제사가 민족적 형태로 확산되었고 이런 제사 때문에 우리 민족이 낙후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제사를 지내는 민족이 풍요롭게 사는 역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조상귀신을 잘 모셔 액땜을 하고 그 후손이 복을 받기 위한 것인데 제사를 드리는 민족들은 그 후손들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세계열강의 지배를 받았고 항상 가난했고 항상 야만족의 생활을 했던 것을 우리는 세계 역사 속에서 분명하게 보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년 동안 방에 죽은 자의 시신을 안치하고 있다가 다 썩은 다음에 장례를 지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효도라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짓들이요 행위이다. 귀신이 인간에게 무슨 복을 줄 수 있겠는가? 복은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조상귀신이 우리를 잘 살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조상 섬기는 문제는 살아생전에 잘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도 이 땅에 있을 때 너희 부모를 잘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5:16)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부모님이 살아 계셨을 때 잘하고 사후에는 그 어떤 형태로든지 존경이나 의식이 행해지면 안 됩니다. 사후에 행해지는 것은 곧 귀신에게 하는 것이고 그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경배와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제사는 곧 그 분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자에게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 그것은 곧 귀신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인데 그것은 내가 귀신을 섬기겠다는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사상 앞에서 절을 하고 묘 앞에서 절을 하고 하는 것은 귀신을 섬기겠다는 내 마음의 뜻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혹시 상 앞에 절은 했어도 그래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말뿐이지 이미 그 영혼은 귀신에게 굴복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절대로 제사상 앞에서 묘 앞에서 죽은 자에게 절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 여러분! 누구의 다스림을 받고 싶으십니까? 귀신의 다스림을 받고 살고 싶다면 절을 해도 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 받기를 원하는 자들입니다. 어떤 아픔이 있고 어떤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죽으면 죽으리라"의 신앙으로 신앙 정조를 지키기를 축원합니다. 믿는 자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서 "추도 예배"를 드리는 행위도 잘 못입니다. "추도 예배"라는 단어도 우리가 고쳐야 합니다. 죽은 자에 대해서 그 어떤 의미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샬롬

 그러므로 우리는 죽은 자가 있는 집안은 추도 예배가 아닌 가정 예배로 드려져야 합니다. 죽은 자를 생각하면서 모든 가족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죽은 자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이 땅에 남은 가족들이 더욱 믿음 안에서 바로 서고 죽은 자가 불신자였다면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될 것이고 믿음 있는 자였다면 남은 가족들도 더욱 믿음생활 열심히 하도록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상 앞에 절하는 자들에게 삼사대까지 저주가 임할 것에 대해서 십계명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조상들이 자기 후손들이 저주를 받으며 살기 원하겠습니까?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가 이 땅에서 아니 죽어서도 저주를 받으며 살기 원하겠습니까? 우리가 조상들 앞에 부모님들 앞에 제사할 때 그들이 얼마나 가슴 아파 하겠는가? 귀신 앞에 제사를 지내서는 절대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을 수 없다는 이 명확한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저주만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 이 민족이 문명이 발달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상에 젖어 사는 미개한 정신을 이제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우리의 민족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복을 마음껏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하루 빨리 이 땅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귀신문화를 뿌리 채 뽑아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귀신문화를 이 백성들이 붙들고 있는 한, 우리는 결코 한 걸음 더 전진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각 가정마다 도사리고 있는 제사문제들, 귀신 앞에 절하는 문제를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를 해결해야 합니다. 추호도 저들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왕상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

 두 번째 :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며 겸하여 참예치 말라고 했다.

 21절 = "너희가 주(主)의 잔과 귀신(鬼神)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 귀신에게 제사도 드리고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도 드리는 자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자들에게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양다리 걸친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불쌍하고 비겁한 자는 없습니다.

 주의 잔 = 그리스도께 속한 자만이 받아 마실 수 있는 잔입니다. 이것은 곧 피의 잔입니다. 주의 상 = 성만찬 상에서 주님의 몸인 떡을 대하는 것입니다. 귀신의 잔, 귀신의 상 = 귀신에게 속한 자이고 귀신과 교제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우리 또한 주님과 귀신을 겸하여 섬기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에 주님과 귀신을 겸하여 섬기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고린도 교회의 타락이 오늘날 이 땅에 교회들에게도 임하고 있습니다. 이번 설에도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자들이 제사상 앞에서 절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여길 것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 사람들 절대로 그리스도인들 아닙니다. 절대로 믿음 있는 자들이 아니다. 우상 앞에 절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우상 앞에 절하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면 신사 참배를 끝까지 거절하고 순교한 영혼들은 무엇입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의 피의 잔을 마셨다는 것 믿으신다면 그 예수의 십자기의 피의 잔을 너무 과소평가 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 피는 창조주의 피입니다. "너는 내 것이다" 는 언약의 피입니다. 그 피는 어떤 세력도 넘보지 못하는 능력의 피입니다. 마26:27-28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나올 때 예수의 피를 예표한 어린 양의 피가 문설주와 문지방에 발라졌을 때 죽음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 피의 잔을 마신 자라면 그 어떤 세력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왜 성도들이 제사 상 귀신의 세력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버립니까?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의 피가 그의 영혼 속에 흐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어쩌다가 무너졌다면 베드로 같은 회개가 있어야 하는데도 그런 회개가 없습니다.

 한 여자가 두 남편은 섬길 수 없듯이 우리 또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가 우리의 주인이 되던지 귀신이 우리의 주인이 되던지 누구든 한 쪽을 우리를 택해야 합니다. 예수의 피의 잔이 무엇이고...... 예수와 함께 먹고 마시는 상이 어떤 자리인지 안다면 우리는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잠간의 고통을 피해보고 예수의 피의 잔이 안 믿어지고 예수와 함께 앉은 그 상이 대수롭게 여겨진다면 그런 자는 귀신의 상을 택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여자 성도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제사상에 절은 안하지만 음식은 만듭니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해서 믿음의 사람들은 음식까지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절은 안했다 할지라도 귀신을 위한 상에 음식을 만들었다는 것은 은연중에 귀신의 상에 참예한 자가 된 것입니다. 불신자 집안에 믿는 며느리들에게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해야 합니다. 지혜롭게 집안에 소란이 없도록 잘해야 합니다. 만약 소란이 있다할지라도 그 고통을 참아 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리미리 기도해야 합니다. 닥쳐서 우왕좌왕 하지 말고, 미리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피할 길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전10:13)

 제사 음식 먹는 것도 우리에게는 가장 큰 충격이요, 갈등이 많습니다. 어떤 분의 설교를 들어보면 먹어도 좋다고 하고, 어떤 분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합니다. 먹어야 할지 먹지 말아야 할지......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고전 8장에 자세히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마음에 거리낌이 되면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 앞에 드린 제물을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안 먹는 것이 낳습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은 먹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많은 여자들이 불신자 집안에 시집가서 제사문제로 신앙이 무너져 내리고, 예수를 떠난 자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고후6:14)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을 미리 아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의 삶이 제사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면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신앙만 내가 확실하게 갖고 있다면 결단을 내리십시오.

 예수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나의 주인이 예수님이신 것을 진실로 고백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막9:23)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 "아멘

 세 번째 : 우리 믿는 자가 귀신의 세력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막16:17-18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5가지 권세를 주셨습니다. 1. 귀신을 쫓아내며 2. 새 방언을 말하며 3. 뱀을 집으며 4.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으며 5.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아멘 여기 5가지 권세 중에 맨 처음 권세가 바로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입니다. 3번째는 뱀을 집는 권세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귀신의 세력을 우리가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귀신, 사단이 부리는 사단의 졸개들입니다. 뱀을 집으며, 뱀은 곧 사단입니다. (계20:2)"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뱀을 잡을 수 있는 권세는 곧 사단의 세력을 물리치는 권세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권세를 받기 위해서는 3가지가 뒤따라야 합니다. 1.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 자들에게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2. 예수 이름을 위해야 합니다. 내 이름으로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3. 귀신과 대적해야 합니다. 쫓아내기 위해서는 싸워야 합니다. (약4:7)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주신 권세를 받았습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5가지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마귀와 귀신을 이길 수 있는 권세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인들이 귀신의 세력 앞에서 무기력합니까? 예수님을 분명히 믿고 있다면 이미 그리스도인들은 권세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왜 귀신의 세력에 무기력합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지 않고 있고 귀신과 싸우지 않고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권세가 힘을 못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칼을 사용한 시대에 무사들이 칼을 칼집에 그대로 꽂고 있으면 칼에 녹이 생기기 때문에 무사들은 매일 칼을 닦고 기름칠을 했습니다. 칼이 아무리 좋아도 잘 관리를 못하면 자기 생명을 칼이 지켜줄 수 없습니다. 총도 마찬가지입니다. 군대 가면 자기의 총을 검사할 때가 있는데, 만약 총구에 녹이 쓸었거나 관리를 잘못했다면 그 벌은 대단합니다. 총도 기름칠하고 잘 관리를 해두어야 내가 필요할 때 총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의 이름이라는 권세를 주었는데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귀신의 세력에게 당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담대히 외쳐야 합니다. "악한 귀신아! 더러운 귀신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 베드로가 어떻게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노숙자에게 무어라고 소리쳤습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행3:6)아멘! 성도 여러분! 왜 우리에게 주신 예수의 이름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 못합니까? 담대히 외치는 자들이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빌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어떤 귀신의 세력일지라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움 자체가 올 때 두려움을 주는 그 세력이 곧 귀신의 세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이 올 때 그 두려움부터 쫓아내야 합니다. 아멘!

성령의 능력은 담대함입니다.(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이 임하면 권능이 임하는데 이 권능은 (헬-두나미스) 강력한 힘을 나타내는 뜻입니다. 절대로 귀신의 세력을 두려워하거나 뒤로 물러가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뒤로 물러가는 신앙은 주님이 기뻐하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히10:38) 대적하면 귀신은 한길로 왔다 일곱 길로 도망가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데 싸우지 않는가? 우리가 귀신과 싸울만한 믿음이 없어서 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에게는 작은 믿음이던 큰 믿음이던 이미 믿음이 주어진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으십니까? 믿는 자들에게 권세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는 이미 권세를 받은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권세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용할 때 "두나미스" 같은 강한 성령의 권능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앞세우고 우리가 나아갈 때 그 어떤 세력도 우리들의 앞길을 막지 못합니다. 담대히 나아가서 귀신의 세력들을 무너뜨리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상 앞에서 그 어떤 타협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귀신의 세력 앞에서 떳떳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 앞에서 귀신의 세력은 맥없이 무너집니다.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귀신의 세력은 반드시 싸워서 물리쳐야 합니다. 가만히 놓아두면 절대로 나가지 않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완전히 쫓아내 보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으로 쫓아내야 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워서 쫓아내야 하고 귀신이 나아갈 동안까지 우리는 믿음으로 싸워야 합니다. 조금 싸우다가 중단해 버리면 안 됩니다. 귀신의 세력이 완전히 나갈 때까지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어떤 자들은 귀신은 가상적인 존재라고 하는데 사단과 귀신은 가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 눈에 안보일 뿐이지 그들에게도 인격을 가지고 있는 더러운 흑암의 세력들입니다.

성경을 보면 곳곳에서 사단의 세력과 귀신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접근해서 미혹했던 사단입니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진실로 필요한 우리의 싸움이 무엇인지 성경은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 세상문화는 한 마디로 귀신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문화 매체를 귀신이 잡고 흔들고 있습니다. 명절마다 닥쳐오는 제사문제로 개인적인 갈등을 겪고 있다면 아직도 그 신앙은 어린 아이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눈을 들어 세상문화를 잡고 있는 귀신의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안 싸우면 싸울 자들이 없습니다. 우리가 안 싸우면 온통 세상은 귀신들이 다 점령하고 말 것입니다.

(엡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싸워야 합니다. 기도의 전신 갑주, 말씀의 전신 갑주, 성령의 전신 갑주를 입고 싸우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미디안 군대와 싸울 용사를 뽑을 때 두려워 떠는 자들은 다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귀신의 세력 앞에서 두려워 떠는 자들은 십자가 군병들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에게 약 356번 이상을 "두려워 말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십니까? 귀신의 세력을 이 땅에서 물리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이스라엘이라는 복을 받았으며, 문제 해결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 집에 도사리고 있는 우상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만났지만 야곱의 신앙은 온전히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신앙인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날 때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창28:21-22)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야곱은 이 약속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부러졌는데도 이 약속을 잊어버리고 자기를 위해서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해서 집을 지었습니다. (창33:17)

그러한 야곱을 하나님은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가만히 보고만 계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외동 딸 티나가 이방 족속에게 강간을 당하고 속임과 살인으로 집안이 더러워져 버렸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내게 했던 약속을 지키라고 야곱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모든 우상 신들을 다 버리고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참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할 때 야곱은 다시 잊어 버렸던 "이스라엘" 이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도라는 직분 .............너는 내 자녀라는 이 칭호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우리의 집안에 사업장에 어떤 좋지 못한 우환은 없습니까? 우리의 집안에서.. 사업장에서... 내 마음 속에서.....모든 우상들을 꺼내어 버려야 합니다. 흑암의 더러운 세력들이 우리와 관계되고 있는 한 우리는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고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귀신은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는 집단입니다. 절대로 우리를 편하게 놓아두지 않는다는 사실, 2011년도에 우리는 이 더러운 세력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아멘!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