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희 목사.jpg성경말씀: 야고보 2장 22-26               최장희 목사[갈산장로교회 담임목사]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신 것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 아닙니다. 창조 때에도 인간을 사랑하셨고, 죄로 인한 고통을 당할 때에도 사랑하셨고 마지막 때에도 사랑을 하십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기에 바른 믿음을 알게된 것입니다. 바른 믿음이란 신앙인의 증거가 구체화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 자신의 경건, 자신의 사랑이 구체적일 때, 그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이냐, 이렇게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한마디로 온전한 신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을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라고 시작됩니다. 여호와를 믿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하란에 우거할 때,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실제 가족의 곁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 명령에 순종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순종의 결과는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후사에 대한 약속을 받는 축복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에 행위를 따른 신앙심인 것입니다. 본문의 야고보는 믿음과 행위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야고보는 믿음과 행위에 대하여 17절에서 한 말을 26절에서 최종적인 결단을 내립니다.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라고요. 여기서 믿음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인격으로 수용하는 피동적 사랑이고, 행위는 그 믿음을 가진자가 하나님과 인간에 봉사하는 능동적인 사랑입니다.

둘 다 사랑을 지닌 것은 마태복음 22장 37-40절을 보면 둘 다 사랑을 근본으로 하고 있는 하나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진노의 하나님이십니다. 양면을 지니고 계시지만, 사랑을 더 많이 주십니다. 현대사회에서 위험수위가 넘어선 것이 두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메머니즘[물신숭배]과 에고이즘[이기주의]입니다.

물질만능의 시대는 이미 깊을 대로 깊어져 있고, 이제는 이기주의가 사회성을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이기주의는 큰 위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멸망, 사회의 멸망, 나아가서는 국가의 멸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이에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이 영적으로 깨여 있지 못하면 불신자들에게서 조롱을 받게 됩니다. 어쩌면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짓을 하고도 회개치 않는 영적 불감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가 참 신앙인으로 모범이 되지 못하여 표면적 탈종교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른바 틈새 종교성의 이합집산들입니다. 그들은 보란 듯이 실험과 과정을 다소 선정적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그들을 사이비 이단이라고 합니다.

또한 젊은 층과 교만한 지식인들을 겨냥한 음악, 영상, 컴퓨터 등, 첨단 기술적 환각도 한 무리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독교 신앙인들은 영적 신앙심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정적주의와 느림의 미학을 영적으로 흡수해야 합니다. 야고보가 강조하는 믿음으로 인한 행함은 요즘 시대에 정확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은 육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봐야 합니다.

야고보는 행위 없는 믿음을 귀신에게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왜냐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한 영혼을 지니지 못하면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닫 지 못합니다. 그저 흉내만 내다가 인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종교는 있지만, 믿음은 없는 불쌍한 자가 됩니다. 우리 모두 야고보 선지자의 귀한 말씀, 믿음으로 인한 행위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세상에서 다시 존경을 받는 참 신앙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