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골방이 필요한 이유

 성경: 마6:5-15 
           
          기도없는 삶은 물을 떠난 고기와 같아서 생명이 없다

 우리 모두는 천국 시민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마 6장을 통해서 천국시민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생활 규범을 3가지 구체적인 교훈의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이 3가지는 유대인의 경건생활 3가지와 관련이 깊습니다. 유대인들의 경건 생활은 대개 3가지로 봅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입니다. 구제는 사람과의 관계이고,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금식은 자기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6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교훈은 1-4절까지는 구제생활을 통해 이웃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시고, 오늘 우리가 상고하고자 하는 5-15절 말씀은 기도의 생활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후, 16-18절 말씀을 통해 금식 생활을 말씀해 주심으로 자신을 극복하고 인내하며, 결단하는 삶을 살기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공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교훈은 외적인 형식보다는 내적인 신실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생활 태도가 (구제하는 것과, 기도하는 생활과, 금식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형식적이며, 외적인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오늘은 이 세가지중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은 기도에 대해서만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하는 모습-5절)

기도의 모습은 본문에서 한가지로 말씀합니다. 외식하는 자 같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는 어떻게 기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①사람을 의식합니다. 자랑합니다. 인간적인 냄새가 납니다. 보이기를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식적인 기도가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②그러한 사람은 이미 자기 상을 받았습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칭찬을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상은 없습니다. 제대로 기도가 될 리가 만무합니다. 간절히 기도하기가 만무합니다. 진정한 기도가 될 수가 없습니다.

  2. 어디서 기도해야 합니까?(장소의 문제-골방에서;6절)

유대인들은 하루 3번씩 정한 시간에 성전에 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행3:1, 시55:17) 그러나 성전에 가지 못할 특이한 경우는 있는 그 자리에서 서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는 일부러 성전에 가지 않고 큰 거리 어귀에서 기도한다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기도하는 모습은 지금도 대단합니다. 무언가 중얼중얼 하면서 열심히 외우는 것 같이 기도합니다. 간단히 끝나는 기도 같지 않습니다.

이렇게 큰 거리에서 기도하며는 당연히 사람들 눈에 띄게 되는데, 예수님은 이러한 모습을 별로 기뻐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기도한다고 해도 진실 되게 기도한다면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모습의 중요한 목적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데에 잇다는 것입니다. 기도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거룩하게 보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 그것도 문을 닫고 은밀히.

사람에게 자랑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기도는 자랑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장소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골방을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골방의 특성---혼자 조용히, 은밀히 기도할 수 있다. 사람의 웅성거리는 음성보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집념할 수 있다. 골방을 찾자. 우리의 골방은 어디인가?

  3. 누구에게 기도해야 합니까? (대상의 문제--네 아버지께; 6절)

6절 말씀에 보니,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합니다. 우리의 아버지보다도 더 가까이 느끼는 “네 아버지”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들으실 분은, 나의 아버지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자식이 아버지께 구하는데, 길거리의 사람이 무슨 소용입니까? 그들에게 보일 이유가 뭡니까? 자랑하께 뭐 있습니까? 그럴싸한 단어가 중요합니까? 아름답게 치장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 분(아버지)가 내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응답을 받는게 중요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심정은 우리가 다 아시기에 생략하겠습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그 분이 누구인가? 왜 그 분에게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신문과 인터넷방송을 통해서 외쳐야 합니다.

**우상앞에 절하지 말 것을, 미신을 찾지 말 것을, 점쟁이를 찾지 말 것을, 관상을 좋아하지 말라고, 오직 생명의 주인이신 찾고 하나님만을 믿으면서 왜 사탄 마귀의 사탕에 침을 흘리게 해서는 안된다고....강력히 경고하고 외쳐야 합니다.

  4. 어떤 것을 기도해야 합니까?

①꼭 필요한 내용만 하도록 하십시오.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써가면서, 어려운 문장을 만들어 가면서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만들려고 애쓰는 것 자체 부터가 사람을 의식하고 기도형식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주님은 중언부언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②시간에 구애받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실 때에 시간에 구애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30분만, 1시간만, 이렇게 미리 정해놓으면, 그 시간이 자꾸 그리워지고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이렇게 기도하다 보면 억지로 기도하게 됩니다.

  ③시간과, 장소와, 분위기에 맡는 기도를 합시다.

꼭 이렇게 하라는 법칙은 없는 것이지만,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식사시간에 하는 기도, 예배시간에 하는 기도, 모임에 하는 기도, 기도원에 가서 하는 기도, 골방에서 하는 기도 등등 그 때의 상황을 잘 파악하여 기도하는 요령도 있어야지요.

어떤 이는 식사시간에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짚어가면서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다급한데 계속 붙잡고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시간에 회중기도를 하면서 개인의 기도만 늘여놓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히려 형식적인 기도가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④먼저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5. 모범적인 기도는 무엇입니까? (주기도;9-13절)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가장 모범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이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언젠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다시 상고할 시간이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이 기도를 본받고 또 이러한 기도를 드리도록 합니다. 그리고 주기도를 하실때에 주문 외우듯이, 습관적일 때가 많다. 그렇게 하지 말고 내용 하나하나를 상고하면서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하십시다.

  6. 기도의 상급

모인 무리들에게 경건 생활을 가르치면서 형시적이고 외식적인 기도생활자들을 향해 "저희는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경고를 하셨습니다. 따지고 보면 어떤 상(賞)을 바라고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상이 없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에게는 상급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은 그것으로 그 상을 받았지만, 주님은 하나님께 받을 상이 귀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울 사도도 한 생을 마치면서 면류관을 바라보았습니다.(딤후 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4:7-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