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CK 안락사 관련 공청회 발제 박일준 교수, ‘적극적 안락사까지 허용해야’ 견해 피력

존엄사 문제에 대한 기독교계의 구체적 입장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는 ‘반대’의 입장이 강하다. 이런 가운데 ‘자발적인 소극적 안락사’, 곧 ‘존엄사’는 물론 ‘자발적인 적극적 안락사’까지도 허용돼야 한다는 기독교계의 목소리가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27일 ‘NCCK 안락사 관련 공청회’에서 박일준 교수(가운데)가 발제를 하고 있다. ?뉴스미션

“‘죽음 지연 행위’를 ‘생명 연장 기술’로 미화하고 포장하고 있어”

지금까지 기독교계에서 존엄사 및 안락사에 대한 기본 입장은 대체로 ‘반대’의 입장이었다. 소극적 안락사 또는 존엄사는 △환자가 식물인간인 상태이지만 아직 살아있기에 치료 여하에 따라 회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처사이며, △환자의 의사가 명시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치료기를 제거한다는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27일 기독교회관 2층에서 진행된 ‘NCCK 안락사 관련 공청회’에서 발제를 맡은 박일준 교수(감신대)는 이러한 기존의 입장은 물론, ‘자발적인 소극적 안락사’를 넘어 ‘자발적인 적극적 안락사’까지도 허용돼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박 교수는 먼저 작금의 상황은 이제 죽음이 더 이상 ‘자연스러운 사건’이 아닌 ‘의학적 결정의 산물’이 돼버려, 전통적 윤리 원리인 ‘생명의 존엄성 원리’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상황임을 지적했다.

그는 “안락사 반대 논거의 핵심은 ‘생명의 존엄성 원리를 근거로 볼 때, 어떤 형식의 안락사도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만, 지금은 ‘우리 시대가 당면한 물음은 의사들이 죽음을 돕도록 허락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언제 그리고 왜 그리고 어떤 상황 하에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라는 쿠시의 말이 더 실감 있게 와 닿는다”고 밝혔다.

그는 또 “죽음을 지연시키는 것은 생명을 연장하는 것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지연시키는 행위를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로 미화하고 포장하고 있고,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생명의 시작과 마지막을 정의하는 게 오늘날 너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장치 제거 시 생명 유지 못할 수준의 삶은 더 이상 삶 아니다”

존엄사를 반대하는 논거인‘환자가 식물인간인 상태이지만 아직 살아있기에 치료 여하에 따라 회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처사’라는 주장에 대해 박 교수는 ‘환자가 삶을 의식할 수 없는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삶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의 피력을 통해 반박했다.

그는 “의학 기술이 발달되면서 개발된 ‘죽음을 지연시키는 의학 기술’들은 우리의 삶을 지켜주는 기술들임에 틀림없다”면서도 “10년을 식물인간 상태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의학 기술이 정말 의미가 있는 기술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또 “그렇게 ‘동물적인 몸’만을 기계적으로 살아남게 만드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삶이 진정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삶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에 그는 “식물인간으로 있는 상태에서 반응하지 못한다고 해서, 정말로 사람들을 느끼고 경험할 수 없는지는 아직 정확히 모른다”면서 “다만 인공보조장치를 제거할 겨우 생명을 유지하지 못할 수준의 삶이라면, 그 삶은 더 이상 삶이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 환자 입장에서는 별 차 없어”

안락사의 허용과 관련, 박 교수는 ‘자발적인 적극적 안락사’와 ‘자발적인 소극적 안락사’ 곧 ‘존엄사’를 구분하는 것은 본질에 있어서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를 구분하는 것은 의사나 가족의 윤리적 죄책감을 덜어주는 데에는 큰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환자 자신의 입장으로 보면 결과는 이미 결심하였으므로,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그다지 의미 있는 차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적어도 안락사를 본인의 의지로 요청하는 경우, 본인이 자신에게 닥칠 죽음을 예감하기 때문”이라며 “죽음의 고통이 엄습해오는 순간, 그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모두 ‘사망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비윤리적으로 비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정작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 간의 차이를 느끼는 것은 환자 자신이 아니라 그 환자의 가족과 그를 담당한 의사, 즉 그가 속한 사회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자신들의 윤리적 죄책감 때문에 이렇게 구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라 칭하면서 수용하는 것은 ‘치료를 중단했기 때문에 자연적인 질병으로 사망한 것이지, 죽음을 의도적으로 초래한 것은 아니다’라는 심리적 효과’ 때문이지만, 실은 급식 튜브를 제거하거나 호흡기를 제거하면 환자들은 탈수나 영양부족으로 사망하는 것이지 자연적 질병 과정으로 인해 사망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의료진 동의 따르는 안락사, 살인행위 아니다”

존엄사 반대의 또 다른 논거인‘환자의 의사가 명시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치료기를 제거한다는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박 교수는 ‘의사에 대한 신뢰’를 반박논리로 제시했다.

그는 “본인의 요청이 없는 경우 혹은 본인이 의지표명을 할 상태나 상황이 아니어서, 환자 가족이나 친지가 안락사를 요청할 경우, 이미 죽음의 과정에 진입했다는 ‘의료진의 동의’가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안락사는 살인행위와는 전혀 다른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발적인 안락사의 경우 환자 본인의 의사만으로는 되지 않고 ‘소생가능성이 없다’는 의료진의 판단이 있어야만 가능하듯, 환자의 명시적 의사 표시가 없는 경우에도 의료진의 판단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설명이다.

한편 안락사나 존엄사에 대한 논의와 관련, 박 교수는 존엄사의 법적인 기준을 만들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1975년 미국 뉴저지주에서의 퀸란 양 사건을 예로 들며 그렇게 쉬운 사안이 아니므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함을 조언했다.

그는 “발제자를 고민하게 만든 것은 인공호흡장치 제거 후 퀸란 양이 9년을 더 살다가, 1985년 6월 폐렴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는 사실”이라며 “이는 안락사나 존엄사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확고부동한 기준으로 처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려주는 예가 된다”고 밝혔다.

어쨌든 이번 공청회에서 기존의 입장과 다른 목소리가 나온 만큼 존엄사에 대한 기독교계의 논의가 활발히 이뤄져 이에 대한 기독교계의 입장이 잘 정리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