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으로부터 교회를 지켜야 한다.

천헌옥 목사.jpg 궤변은 생각 없이 들으면 옳은 말 같지만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억지로 둘러대며 합리화하려는 허위적인 변론을 일컫는 말이다. 궤변의 SophistryBC 5세기에 일어난 그리스 궤변학파에서 나왔다. 이는 원래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오늘날 쓰이고 있는 궤변과는 달랐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상대주의나 회의론의 경향을 취하게 되었고 지식을 판매하여 소득을 보려고 흑을 백이라고 속이는 궤변가로 전락하면서 궤변철학의 몰락을 가져왔고 사람들은 이상한 논리로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이 자주 발생하게 되었다.

지난 8일 저녁 SBS‘그것이 알고 싶다의 방송에서 우리는 황당한 논리를 경험했다. 세상 사람들은 창기와 같이 더러운 죄인이다.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관계를 하므로써 그 창기의 더러운 죄악을 담당하게 되고 그들을 구원한다. 이것이 창기십자가라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글을 보니 방송에서 인터뷰를 했던 한 사람이라고 밝히면서더 이상 ㅇㅇ복구회(구 엘리야 복음선교회)에 의한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올린다.”면서 박ㅇㅇ이 예수이며 구원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예수를 낳는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는 창기십자가를 이렇게 설명했다.“창기십자가 교리는 이렇습니다. 스스로 난자이며 창조자인 하나님 박ㅇㅇ가 스스로가 하나의 비유가 되어 세상에 물든 더러운 창녀를 흠 없이 사랑하고 취함으로 자신의 원자씨를 퍼트려 죄 없는 아기예수들을 낳아 세상을 그런 사람들로만 채우고 이로써 세상의 성적 타락에서 구원 될 수 없는 죄인들을 구원한다는 논리가 한농복구회의 창기십자가 교리입니다.”

그는 6개월간 그 집단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그런가 하며 살아왔다고 하면서아내를 바치라는 설교에 사람들이 아멘. 아멘 하고 젊은 여자들과 교주가 성교를 했다고 교주 입으로 시인을 하는 장면에서는 여기저기서 우는 신자들이 보이고 심지어 "짝믿음" (ㅇㅇ복구회 안에서 종교차이로 이혼하여 혼자 박ㅇㅇ를 믿는 사람을 거기서 표현하는 말) 하는 여자들이 강단에서 흥분하며 박ㅇㅇ가 같이 자자고 하면 자기는 언제라도 신랑을 맞이할 준비가 됐다고 하는 정신 나간 간증을 들으면서 6개월을 지내야 했습니다.”고 증언하고 있다.

방송에서도 하나님과 동침하여 아기 예수를 낳겠다고 하는 말까지 필자의 귀에도 분명하게 들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대한민국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창기십자가 논리는 궤변 중에 궤변이다.

기독교 안에서의 이런 궤변이 그가 처음일까? 아니다. ㅇㅇ은 어떤가? 2천 년 전의 예수 십자가는 영혼만 구원하여 인간의 육신을 구원하는 일에는 실패했다. 그래서 재림주가 오셨는데 그와 함께 피갈음에 동참하는 자들은 깨끗한 재림예수의 피를 받아 깨끗해지고 깨끗해진다는 궤변으로 많은 사람을 미혹의 길로 끌어갔다. 그리고 이런 궤변은 아직도 죽지 않고 계속해서 이런 짓들이 일어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한 때 어린 소년 소녀들에게 구걸이나 도적질을 시켰던 이단이 있었다. 그들의 궤변은 충분히 어린 아이들을 속이고도 남았는데하나님은 세상을 선하게 지으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악하게 사용한다. 이것이 죄다. 이 물건이 여기 있으면 선하게 사용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만 저기 있으면 악하게 사용된다. ! 이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 물건을 저기서 여기로 옮겨오는 일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하고 그러면 모두가 행복해 진다.”는 논리이다.

예를 들어 아빠가 술을 먹지 않으면 천사인데 술만 먹으면 폭군이 된다. 아내와 자녀들을 두들겨 패고 쫓아낸다. 지옥과 같은 이런 일을 그만 두게 하는 일은 아빠의 호주머니에 돈이 없어야 한다. 그러면 술을 먹지 않을 테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 아빠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하나님의 성전에 바치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가정도 행복해 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게도 이런 논리를 적용하여 부잣집에 도적질까지 하는 일이 일어나게도 했다.

20년 전이던가? ㅇㅇ선교회가 있었다. 그들은 19921028일 자정 휴거(携擧)가 온다고 주장했었다. 전국 173교회 8천여 명의 신도들은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그 날이 되자 그들은 흰옷을 입고 속속 교회로 모여들었다. 각 방송사들은 앞다퉈 그 날의 속보를 중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의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다.

휴거 될 것이라고 전 재산을 팔아 바친 사람도 있었고 직장을 그만 두고 학교를 중퇴하는 일도 일어났는데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시한부 종말을 강조하면서 재산을 갈취하는 일종의 궤변이었던 것이다. 휴거할 것이라면서 정작 교주는 왜 돈을 저축했는지를 그들은 몰랐을까? 그러나 아직도 이런 시한부 종말론을 퍼뜨리는 종파가 50여개가 있다고 한다.

한 번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았다면 그 이후에는 범죄 함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일어났다. 영혼이 구원 받았음으로 육체가 짓는 죄는 육이 즉음으로서 소멸되는 것이라 하여 범죄하고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집단이 생겨 집단 자실까지 발생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이단들의 주장은 궤변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제 궤변은 우리 사회 전체로 번져나가 있다. 이제는 정설이라는 것이 없다. 얼마나 논리정연하게 흑을 백으로 바꾸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이 말 들으면 이 말이 옳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이 옳다. 정치의 여야가 다르지 않다.

신학으로 자리를 옮겨보면 어떤가? 역시 말장난의 궤변은 없는가? 진리는 오직 하나일 텐데 그것을 둘이 되게도 하고 셋이 되게도 한다. 소위 학문이라는 그늘 뒤에서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다. 왜 이런 궤변이 판을 치고 있는 시대가 되었을까?

궤변의 원조는 에덴동산의 마귀이다. 그는 마치 하나님을 위하는 척 사람을 위하는 척 하면서 교묘히 하와를 속이고 범죄하게 만든다. 예수님이 초림하셨을 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는 고르반 사건이다. 고르반은 사람들의 꾀로 만들어 낸 궤변이다. 주님은 그 간사함을 꿰뚫고 책망하셨다.

이런 궤변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관계되어 있다. 1계명에서 10계명까지 모두 걸려 있고 거슬리고 있다. 궤변이라는 도구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너뜨리는 것이 사탄의 전략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에 왜 속을까? 궤변의 뒤에는 언제나 사탄이 도사리고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속는 것이다. 그럴싸한 사람들의 말에도 순진한 사람들은 속는데 사탄이 속이는데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진리의 아들들은 속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오직 진리의 말씀만 붙들어야 한다. 목사는 성령으로 충만한 신앙양심으로 진리의 말씀만을 가르쳐야 한다. 성경 본문만 읽고는 어쭙잖은 세상 지식으로 자기 철학을 첨가하게 되면 설교는 풍성해 지고 듣는 귀는 즐거워지며 신선하다는 평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런 일이 반복되면 결과적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데로 흘러가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궤변은 처음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수렁에 빠져들어 사탄이 주는 꾀에 함몰되면 궤변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참된 그리스도의 대변자가 아니라 철학자(궤변자)일 뿐이다.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를 다시 회복하고 개혁주의의 아들들은 이제 더 높은 옥타브로 소리를 질러야 한다. 성도들로 하여금 궤변을 이기도록 바른 진리로 무장 시켜야 할 것이다. 흑암이 깊을수록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