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만능이 빚은 직불금 공직자들의 뻔뻔한 두 얼굴 
 
 ‘그 땅의 소산’의 가치 망각 … 사회 불안, 식량안보 위기 도려낼 수술 나서야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해괴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농민을 위한 쌀직불금 수령자 중 30%인 28만 여명이 자격이 의심되는 비농업인이었고, 이중 직업을 파악할 수 있는 17만 명을 확인해보니 4만6천명이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 및 가족이었다. 전체 부정수령자의 27%다.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의 취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공직자들이 국민의 혈세를 가로채고, 가뜩이나 궁지에 내몰려있는 농민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잠21:6)

현행 법은 8년 자경 증명이 있으면 투기용 목적으로 산 농지도 양도세를 최고 1억원까지 감면해주고 있다.

즉 직불금 부정수령의 더 깊은 이면엔 불법적 땅투기를 보장받고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더 큰 탐욕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에겐 용돈일 그 돈은 농민에겐 생계를 보장하고 스러져가는 자존심을 살려줄 유일한 근거였다.

국민을 이끌어야할 공직자들이 이런데 일반 시민들에게 양심과 법을 지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서초구에서만 올해 332명이 직불금을 신청했다. 신청자가 2005년에 비해 두배 이상 증가했다. 서초구에 농민이 늘어서가 아니라 투기 목적으로 논을 산 뒤 양도세를 면제받기 위해 직불금 신청이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더우기 공직자, 정치인, 전문직 종사자, 언론인 등 이 땅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는 판국이니 이같은 일들이 한국땅에서 끊이질 않는다. 공직자의 비위 감찰이 주 업무인 감사원마저 이 문제를 이미 1년전에 파악하고도 덮어버렸다. 이 사회를 지탱하는 제도와 체제에 대한 믿음마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가뜩이나 양극화 심화로 사회통합이 힘들어지는데, 사회 지탱의 줄인 신뢰의 끈마저 떨어지면 사회는 중심을 잃고 조금의 외부적 충격과 변화에도 쉽게 요동치는 극도의 불안정한 부유하는 사회가 되게 된다. 이는 한국사회를 근저로부터 붕괴시키는 뇌관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북한에서 급변사태라도 일어나면 우리사회가 온전할까. 통일의 꿈은 커녕 금융 자본의 붕괴로부터 산업, 경제, 사회 등 전분야에서 공황과 불만의 폭발 등 전체의 동반 몰락이 우려된다.

‘농자는 천하의 근본’이라던 우리의 전통적 가치는 한낱 구시대의 유물일까. 아니다. 일찌기 제네바관세협정(GATT)이 농업을 ‘비 교역적 사항’으로 규정하고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환경적 ‘다면적 기능’을 가진 실체로서 간주한 이유이다. 국가 존립의 필수인 식량은 지켜야 할 ‘안보’로서의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다. 자국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업과 농민이 그 사회의 생존을 맡는 근간이 됨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정반대다. 이미 우리사회는 전 농지의 약 절반이 부재지주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모두가 투기에 매달려 있는 사이 농지가격이 치솟아 정작 농지가 필요한 농민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는 쌀을 비롯한 농산물 생산비 상승을 부르고 농업 여건을 급격히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현재 쌀 생산비의 약 절반이 농지 임차료 등 토지용역비로 허비되는 비효율구조를 낳았다. 농지가 투기수단이 되다보니 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찾아 산업지나 관광지, 유흥지, 주택지 등의 용도로 전용되 농지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우리의 농지는 지난 10년간 너무 빠르게 22만ha가 사라졌고 농업인구는 18% 이하로 급감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식량자급율을 급속히 낮추고 식량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을 만들었다. 우리의 식량 자급율(27%)은 OECD 29개 회원국 중 최하위권(26위)으로 급락했다. 오늘날 식량자원 민족주의가 강화될수록 자급율이 낮은 우리나라의 생존의 위협은 커진다. 일본을 뺀 모든 선진국은 식량 자급 국가이며 오늘날 세계 곡물무역은 소수의 수출국과 다수의 수입국으로 양극화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식량을 무기로 하는 새로운 식량제국주의의 형태가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응을 못하면 우리는 식량을 통한 고통과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2015년 자급률 목표치가 25%에 불과하다. 게다가 각종 불법을 통해 농지를 땅투기 대상화하고 농민의 생계를 위한 직불금마저 빼가는 마당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식량안보를 지키고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단 말인가.

이대로 가면 안된다. 난국적 위기의식을 갖고 수술에 나서야 한다. 어떻게 해야 지금과 같은 위기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이 될까.

첫째, 정부와 정치 지도자, 공직자들이 먼저 회개하고 공의와 정의로 다시 서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 보좌의 기초인(시 97:2)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예배보다 낫다(잠 21:3)고 말한다. 공직자들은 백성의 고통을 가장 먼저 신원해야 할 청지기 사명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의를 잃으면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없고 오히려 사회갈등과 분열의 근원이 된다.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아직도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으로 폭력을 달아주는도다”(시 58:1-2)

둘째, 농민과 농지를 보호하고 농업을 존중하는 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에 순종하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그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의 광야생활에서 순종을 배운후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때 첫 축복이 ‘그 땅의 소산’(수 5:11)을 먹게 하신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소산을 낼 농지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은 양심을 저버리고 탐욕의 정점에 선 까닭이다. 땅이 내는 소산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결과를 누리는 일이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사 1:19) 그 땅의 국민의 생존을 지킬 농지는 투기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될 신성한 땅이다. 농지를 지키기 위한 법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세째, 교회가 오늘날 양심이 훼파된 나라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가 국가의 미래나 건강한 사회를 위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미스런 사건이 터질때마다 가장 세속화된 일의 선봉에 교인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이봉화차관도 교인이었다. 그동안 교회가 외형에 치우쳐 본질을 잃은 탓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8)

공회에서 유창한 말로 회개는 하지만 실천이 따르지 않아 점차 양심이 화인을 맞고(딤전 4:2) 무디어졌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마 23:23)

그래서 예수님은 교인이라고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님을 분명이 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은 멀고도 험난한 길이다. 오직 정의와 공의에 굳게 서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만이 우리사회에 새 희망을 알리는 길이다.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잠 21:21)


편집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