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춘희 할머니, 미주에서도 추모

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추모 행사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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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 옆에 설치된 배춘희(91) 할머니 추모 분향소에 모인 사람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8 타계한 배춘희(91) 할머니 추모 분향소가 12 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 앞에 마련됐다가주한미포럼(대표 윤석원) 12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글렌데일 중앙도서관 공원(222 E Harvard St., Glendale)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배춘희 할머니 추모 분향소를 설치하고, 가주한미포럼 간사가 배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찾아온 조문객을 맞았다.

 

이날 분향소에는 3·1여성동지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KOWIN) 임원들과, LA 흥사단의 보이스카웃 단장, 박상원 목사(미주한인재단 전국 총회장) 등이 찾아와 분향하고 기도드렸다.

 

자리에서 대표 기도를 맞은 박상원 목사는 배춘희 할머니를 비롯한 선조들의 고생과 수고가 헛되지 않고 자손만대 이어지는 귀감이 되기를, 제국주의로 인한 전쟁과 식민지와 수탈과 억압 등의 아픔을 어느 나라도 다시는 겪지 않기를 기원했다.

 

간사에 따르면 배춘희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음악과 그림 예술과 언어감각이 뛰어나 중국어 일본 나라 언어를 유창하게 했으며, 해방 후에는 일본에서 가수 생활을 하기도 , 별명이 예술가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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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 옆에 배춘희(91) 할머니 추모 분향소가 마련됐다. 앞에 할머니의 영정 사진이 놓여있다.

 

배춘희 할머니는 1942 당시 19세의 어린 나이에 끌려가 중국 만주에서 해방이 때까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다가 해방 귀국하였으나 국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일본으로 건너가셨지만 거기서도 힘든 생활을 하셨다.

 

배춘희 할머니는 1980 다시 귀국, 1993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지원 대상자로 등록이 되어 정부로부터 지원받았으며, 1997 위안부 할머니들이 머무는 나눔의 집에 들어온 매주 수요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하는 활동을 했으며, 3 전부터 병상에서 고생하다가 별세했다. 배춘희 할머니의 타계로 현재 생존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54(국내49, 국외5)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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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한미포럼의 간사가 배춘희(91) 할머니의 약력을 소개하고 있다.

 

조영숙 기자 mijutim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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