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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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하시는 하나님

성경: 창세기 397-18 찬송가 452

사람은 어떤 상태에서든지 시험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것은 요셉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처의 유혹에 넘어갔을 경우 죄에 대해 쏟으실 진노가 어떠한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시험에 빠질 하나님을 바로 알고 기억한다면 우리는 범죄하지 않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들은 항상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시다는 것과 우리의 모든 행동 일수족 일투족을 감찰하시는 것을 명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가정들이 소망합니다.

 

고난 중의 침묵

성경: 창세기 3919-23 찬송가 364

본문을 보면 요셉의 보다발 아내의 모함으로 인해 감옥에 갇히는 것을 있습니다. 요셉은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을 것입니다. 끝까지 항변하고 싶고 누군가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고 자기를 그렇게 만든 사람을 원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변명도 원망도 없이 끝까지 고요히 참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행실을 보시고 아시고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들 또한 요셉의 모습처럼 고요히 나의 모든 행실을 아시는 주님만을 기억하고 위로받는 가정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난과 역경은 축복입니다.

성경: 창세기 391-6 찬송가 242

본문을 보면 요셉은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려가지만 노예생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을 살았습니다. 비록 그의 신분도 그의 지위는 가장 낮은 노예였지만 생활 중에서도 요셉은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성도에게 고난과 역경을 허락하시지만 그러한 고난과 역경에 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중에서 하나님께 훈련을 받게 하시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형통케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들 또한 고난과 역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기 위한 축복으로 믿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가정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남의 티끌만을 나무라기 보다는

성경: 창세기 3812-30 찬송가 96

본문을 보면 다말이 유다가 술해 취해 있을 관계를 맺는 것을 있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그것을 모른채 다말이 행음하여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진노하여 그를 가장 극악한 자에게 내리는 벌을 주려고 하는 것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죄는 잊고 남의 죄에 대해서는 크게 진노하는 것을 있습니다. 그러나 한걸음 물러나 자신을 보면 자신 또한 같은 사람임을 쉽게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들 또한 앞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만을 나무라기 보다는 삶을 먼저 돌아보는 가정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바로 앞에 요셉

성경: 창세기 4114-24 찬송가 321

본문을 보면 바로 왕이 요셉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을 있습니다. 외국인 노예 죄수에게 자문을 구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요셉으로서는 바랄 수도 없는 놀라운 일을 당한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의 간섭이 아니면 불가능한 이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들 또한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면 같은 일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가정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노할지라도

성경: 창세기 426-25 찬송가 322

본문을 보면 요셉이 자기의 형들을 만났을 일부러 모른 하고 엄한 모습을 취하는 것을 있습니다. 그것은 형들에 대한 보복 심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형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자기의 정체를 밝히면 신분 때문에 용서를 구할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항상 공과 사를 가려서 처신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들은 사적인 일로 하나님의 일을 가리는 가정들이 없기를 소망합니다.

 

소망을 잃지 않는 믿음

성경: 창세기 421-5 찬송가 459

본문을 보면 야곱은 대가뭄으로 인해 계속되는 기근 속에서 먹을 양식이 없어 죽기에 이르렀으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야곱은 너희는 가서 곡식을 사오라 하는 것을 있습니다. 이는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자세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 신앙과 내게 능력 주시는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있다 하는 자세로서 끝까지 소망 중에 전진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들은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담대한 믿음의 적극성을 잃지 않고 승리하는 가정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주신 가정

성경: 창세기 4146-57 찬송가 97

소년 시절 이국 땅으로 팔려와 나이 30 되도록 혼자였던 요셉은 고독하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게 것은 기쁨이요 축복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때다 되면 가정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연합하여 하나를 이루는 것이 이상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 가정들은 하나님이 주신 가정에 감사하며 가정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꾸며가는 가정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성경: 창세기 411-13 찬송가 457

사람은 때로 없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며 어려운 현실에 대해 지겨워 하기도 합니다. 요셉 또한 감옥에서 기대했던 술맡은 관원장의 도움이 없이 2년을 그렇게 지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정하신 때와 세우신 뜻을 정밀하게 이루시는 것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치밀하게 다스리십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들은 반드시 다음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면 행복을 디자인하는 가정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훈련

성경: 창세기 4125-45 찬송가 382

본문을 보면 요셉은 바로왕의 꿈을 풀이해 주고 애굽의 총리대신에 오르는 것을 있습니다. 요셉은 소년 시절부터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고 이별 팔림을 당하고 또한 객지생활은 투옥을 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만사를 주관하시고 뜻대로 섭리하시는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훈련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들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귀하게 쓰임받는 가정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GIVE AND TAKE

성경: 창세기 401-23 찬송가 183

본문을 보면 감옥에 갇혀 있는 바로의 신하의 꿈을 해석해 주는 것을 있습니다. 술맡은 관원장은 감옥에서 소망없이 지내다가 요셉의 해석을 받고 그대로 되어 전직에 복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 버렸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는 마땅히 요셉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건만 그러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들 또한 이웃에게 받은 은혜에 감사할 알고 또한 받은 은혜를 되돌려 있는 사랑이 넘치는 가정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믿음의 고도를 높여라

성경: 에스겔 3917-20 찬송가 312

본문은 하나님이 없이 평생 하나님을 대적하며 수없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악인들의 비참한 최후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말씀은 악한 세력들의 최후를 보게 하시며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승리를 보게 하신 말씀입니다 최후에 악인들은 처참한 그날이지만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에게는 승리의 잔치가 것을 보여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들은 지금 당장 앞의 현실을 보지 말고 믿음의 고도를 높여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가정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진정과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

성경: 에스겔 421-14 찬송가 328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방은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먹고 거룩한 의복으로 갈아입고 거룩한 의복을 보관하는 거룩한 방입니다 제사장들은 예배를 위해 구별되지 않은 사람들과 접촉하기 전에 구별된 장소에서 제물을 먹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와 교제를 위해서는 거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 가정들도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예배를 그저 준비없이 소흘이 여기지 말고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는 가정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충성된 일꾼

말씀: 빌립보서 2 19 - 22 찬송가 502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자신의 아들과도 같은 동역자였음에는 틀림없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장기간의 옥중생활 속에서도 성도들을 향한 열정이 있었으며 자기를 대신해서 성도들을 돌아봐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요청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요청이 왔을 흔쾌히 감사하며 순종할 있겠습니까? 충성된 일꾼은 자기의 일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자가 충성된 일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