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교훈

 노르웨이는 관용과 개방과 평화를 좋아하는 나라이다. 국왕과 총리도 경호원 없이 다니는 사회가 노르웨이이다. 노벨 평화상도 스웨덴에서 수여하지 않고 노르웨이에서 수여한다. 그런데 지난 722() 노르웨이 역사상 전무후무할 만한 큰 테러사건이 발생했다.“기독교 극우주의자라고 자칭한 32세밖에 되지 않은 브레이비크(Anders Behring Breivik)1997년부터 준비한 테러를 결행한 것이다.

오슬로 정부청사를 폭탄으로 테러하여 8명을 살해하고 오슬로에서 약 30 킬로미터 떨어진 우퇴우아(Utoeya) 섬에서 노동당 청년집회를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경찰로 위장하여 덤덤탄(총탄이 몸 안에서 터지는 탄)을 난사함으로 69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 테러 사건으로 77명의 귀한 생명을 잃게 된 것이다. 그는 이 테러가 이슬람(Islam)으로부터 유럽을 구하기 위한 성전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약 1500페이지에 달하는“2083년 유럽의 독립선언이란 제하의 문건을 통해 테러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자신의 테러가 왜 정당한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십자군에 비유하여 유럽을 잠식하고 있는 이슬람(Islam)으로부터 유럽의 기독교를 구하기 위해 이런 잔악한 행동을 결행했다고 말한다. 그가 자신의 문건의 제목을“2083년 유럽의 독립선언이라고 부친 것은 1683년에 비엔나 전투에서 기독교군이 오스만튀르크 이슬람 군대를 무찔렀는데 이로부터 400주년이 되는 2083년까지 유럽에서 무슬림을 몰아내겠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브레이비크가기독교 극우주의자라고 자신을 칭하는데 관심을 갖는다. 브레이비크의 테러 행위가기독교 극우주의혹은기독교 극좌주의라는 명칭으로 용납될 수 있는가? 브레이비크의 테러사건이 터지자 신문매체들이기독교 근본주의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기독교 근본주의가 테러사건의 배면에 깔려있는 사상이나 된 것처럼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한 마디로 이런 종류의 테러사건과 기독교 근본주의는 전혀 관련이 없다.

브레이비크는 자신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주장했을 런지 모르나 그는 진정한 기독교 복음을 알지 못한 사람이요,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20세기 초에 보수적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대항해서 주창한 신학사상이다. 자유주의 신학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초자연적 사건들을 모두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성경에서 초자연성을 배제하는 이론을 펴자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성경의 무오성,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처녀 탄생, 대속적 구원, 예수의 육체부활, 예수의 재림 등 다섯 가지 핵심 교리를 제창하게 된 이후 기독교 근본주의라는 명칭이 사용되게 되었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사회의 변혁에 대한 관심이 약하고 일반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부정적인 태도로 보는 것은 사실이나 테러나 범행을 조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독교 근본주의는 테러 행위를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그러므로 브레이비크의 테러 행위는 천인공노할 악행으로 기독교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놀랍게 여겨야할 사실은 브레이비크가 테러 준비를 시작했던 1997년은 그의 나이 겨우 18세 정도라는 사실이다. 18세 어린 청년의 머리에 어떻게 이런 과격한 생각이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을까? 성경은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가르치는 객관적 계시로 성도들의 신앙과 삶의 규범이다.

그리고 무슬림을 포함해서 아직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기독교 복음을 믿는 사람이 아무리 극우 쪽으로 기울어도 테러 행위를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나라이고 개인주의가 팽배한 나라이다. 오늘날 온 세계 기독교가 합리주의, 이성우위주의, 포스트모던 사고에 매여 허우적거리고 있다.

노르웨이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한국교회도 많은 잠식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브레이비크와 같은 사람을 만들어 내는데 무관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성경의 객관적 계시를 바르게 믿는 사람이면 절대로 테러분자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브레이비크는 십자군을 자신의 행동 모델이라고 말한다. 그는 십자군이 무슬림에게 빼앗긴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하기위해 싸운 것처럼 자신도 유럽의 기독교를 무슬림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테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십자군 운동은 하나님이 원하는 운동도 아니요 성경의 교훈에 부합하는 운동도 아니었다. 오히려 십자군 운동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운동이었다. 마치 하나님이 무능해서 성지를 무슬림들에게 빼앗겼는데 십자군이 이를 찾아서 하나님에게 돌려드려야 하겠다는 뜻이 암시되어 있다. 십자군 운동은 하나님을 무능한 하나님으로 만들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산타야나(G. Santayana)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는 사람은 잘못을 재연하게 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우리는 브레이비크의 테러사건을 통해 한국교회가 성경의 바른 교훈을 우리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지 우리의 신앙행태가 후세의 젊은이들에게 잘못된 모델이 될 가능성은 없는지 반성하면서 성경말씀을 바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박형용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