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안 맞으면 선을 긋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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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19혁명 국가조찬기도회 설교를 몇 번 하러 갔습니다. 그때마다 농림부장관을 지내고 국회의원 5선을 하신 김영진 장로님이 “4.19혁명의 기록은 역사 속의 고서로 감춰져 있으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4.19혁명을 유엔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서 정말 애를 많이 썼습니다. 우리 교회도 약간의 도움은 드렸지만 그분은 온몸을 다 바쳐서 그 일을 했습니다.

 

4.19혁명이야 말로 대한민국을 새로 거듭나게 한 고통의 산실이었습니다. 부정과 불의를 추방하고 정의와 인권을 회복시킨 위대한 혁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불길을 활화산처럼 타오르게 한 불씨 혁명이고 점화 혁명이었습니다. 당시 독재 정부는 자유와 민주의 팔을 묶고 목을 죄었지만 4.19 혁명은 검은 군홧발에도 굴하지 않는 민주와 자유를 향한 인권 운동의 함성이었으며 고독한 새벽별의 피눈물과 처절한 절규로 독재의 성벽을 무너뜨렸던 타오르는 민주의 혼이었습니다.

 

그 민주화의 횃불은 민족의 가슴마다 들불로 번지고 조국 근대화와 자유 민주주의의 향기로운 꽃이 필 때까지 자유와 인권, 민주화의 정신적 보고요, 폭풍의 진원지가 되었습니다. 급기야 4.19의 정신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불쏘시개가 되고 그 불멸의 꽃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만발하게 하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4.19정신을 기억하고 계승시켜야 합니다. 4.19의 대가없는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지금 자유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모든 국민이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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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김영진 장로님께서 몇 년을 고생한 끝에 드디어 4.19혁명이 유엔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4.19묘역에서 유엔 유네스코 등재 헌정식을 하고 기념식을 하려고 하는데 4.19에 속한 어느 단체에서 그걸 문제 삼은 것입니다. “왜 우리하고 의논을 안 하고 당신들끼리 추진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묘역 앞에서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장소를 옮겨서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탄식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4.19혁명이 유엔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그런 일을 자기들과 의논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기분 나쁘게 생각할 일인가.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극단적 왜곡 편향 사회가 되었는가. 혹시 소통이 조금 부족했어도 그렇게 노력해서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었으면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며 감사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너무 다행스럽게도 누군가의 중재로 조정을 하고 화해를 하게 해서 4.19에 속한 여러 단체가 함께 4.19묘역에서 헌정식과 기념식을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참 얼마나 다행입니까? 저는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회라고 예외이겠습니까? 지난번에 제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님들을 모아놓고 세미나를 하고 난 후 몇 분이 저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 지난날 유튜브의 헛소문을 듣고 목사님을 한동안 오해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목사님의 강의를 듣고 보니 그것이 전혀 아닌 걸 알았습니다. 한국교회를 위해서 그토록 애를 쓰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또한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홍보 활동이야말로 아름다운 공공외교의 일환입니다. 그런데 이걸 또 다른 방식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제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무조건 자기하고 안 맞으면 선을 긋고, 아무리 아름다운 가치와 정신, 숭고함을 계승해도 자기와 의논 없이 하면 이렇게 반대를 해 버리는가. 또는 자기 확증편향성과 맞지 않으면 이렇게 해 버리는가?” 요즘 주변을 보면 진짜 뜻하지 않는 오해와 확증 편향적 사고에 갇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키려고 해도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남들을 판단하고 왜곡된 시각으로 보려고 합니다. 교회는 결코 싸움과 다툼, 분열의 종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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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화해, 용서의 종교입니다. 전쟁을 막고 자유와 평화를 선도하며 국민 모두가 행복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종교의 사회적 책임과 환원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새에덴교회가 목회적 대형교회로서 사회적 순기능과 선순환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섬겨나갈 것입니다. 아니 저부터 분열과 다툼이 있는 곳에 사랑과 평화, 연합과 일치의 중재적 역할을 해 나가는데 앞장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