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이 가까운 세월에도 얼굴에
잡티 하나 없이 고운 선배님,
그 '고움' 의 비결이 늘 궁금했습니다.

저는 선배님이 단 한 번의
모진 경험도 없이 살아오신 줄 알았습니다.

얼마 전 선배님을 댁까지 모셔다 드릴 일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끓여 주실 수 있다는
가벼운 권유를 받고 선생님 댁에 잠시 들어섰습니다.

서른 해 넘게 살고 계신 그 집이 사실은
가세가 기울어서 세 들어온 집이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하시던 날의 풍경을 전해 들었습니다.
저 같으면 아마 마루에 주저앉아
갑자기 엄습한 절망감으로 몸을 가누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세상에 대한 원망을 깊이 지고
그 언덕을 무겁게 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선배님은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천천히 바라보고, 짐을 꾸리고,
언덕배기 집에 이삿짐을 내려놓은 뒤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고 합니다.

고요한 밤이 되자 부군과 함께
발아래 펼쳐진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어느 먼 휴양지에 온 기분이라는 소감을 나누기도 하셨다지요.

  "나의 힘은 무거운 것도 가볍게 지나가는 거라고 말하더군"
지나가는 말처럼 들려주신 그 말씀이
제 가슴에 화살처럼 와서 박혔습니다.

무거운 것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은
삶의 중심이 깊은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경지겠지요.
가벼운 것도 무겁게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 많은 시대에,
무거운 것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능력일까요. 
가벼운 종이도 오래 들고 있으면 무거워지는 것이 현실인데요.
여름이 되면 비행기도 짐을 조금 덜 싣는다고 합니다.

여름 비행기처럼 마음에 짐을 너무 많이 싣지 않기를.
제 아름다운 선배님처럼
무거운 것도 가볍게 여길 힘을 얻게 되기를,
당신이 삶을 너무 무겁게 다루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서신 가족이신 김인숙 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김미라 님의 “무거운 것도 가볍게”, 『샘터』 2010년 7월호에서>

*하루 한단 기쁨으로
       영성의 길 오르기*

  '살아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살아왔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에머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