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듣고 있어?

11.jpg  가난한 게 싫었습니다. 거기다 홀어머니와 동생 둘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이 싫었습니다. 부당하게 여겨진 그 책임감을 견디지 못하고 방황의 사춘기를 보내야 했던 나는 도망치듯이 직업전문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기술을 배우고 그 기술로 적은 돈이라도 만질 수 있다는 게 나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토요일이면 집으로 왔다가 월요일 아침에는 기숙사로 가기 위해 짐을 챙겨야 했던 나. 그때마다 어머니는 때에 절은 손으로 차비 몇 푼을 쥐어 주시곤 했습니다. 난 그런 어머니가 싫어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집을 뛰쳐나오곤 했습니다.

"엄마 실습기간이라 앞으로 얼마동안 집에 못 들어와요" 핑계였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아주 멀리 가버리고 싶었습니다. 밥을 굶어도 혼자 굶고 외로워도 혼자 외로워하다가 인생을 끝내고도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어머니가 기숙사로 찾아오신 게 아닙니까. 세상에 그 먼 길을.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야 올 수 있는 거리를 어머니는 혼자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채. 나는 너무 뜻밖이라 왜 오셨냐고 말도 못하고 서있는데 어머니는 몇 번을 접었는지 모르게 꼬깃해진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미안하구나,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서…." 그 때 나는 어머니를 누가 볼까 봐 얼른 어머니를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어머니의 후줄그레한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밥은 잘 먹어야 한다." 몇 번이나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돌아서 가던 어머니. 그리고 얼마 뒤, 기숙사가 아니라 이번에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어머니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순간이었습니다. 잠깐 조는 사이에 교통사고를 내고 현장에서 사람을 죽여 교도소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억울한 건 그 사람이 죽게 된 게 내 실수만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뛰어드는 사람을 어떻게 피해간단 말입니까. 경찰서에 가 조서를 쓰는 동안 피해자는 나라고 강변하고 싶었지만 분위기에 눌려 제대로 말을 못한 채 교도소로 이송되어야만 했습니다. 교도소로 면회를 와 내 손을 잡은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어머니.

"죄송해요 엄마…." 나는 어머니를 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 눈을 돌려야 했습니다. "죄송하긴. 네 잘못만은 아니잖니?" "엄마" "교도소 밥이지만 밥은 잘 먹어야 한다." "네" "엄마.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제가 호강시켜 드릴게요." 그 때 어머니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래…. 기다리마, 기다리고 말구."

출소 후 난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일했습니다. 돈을 웬만큼 모을 때까지는 어머니 앞에 나타나지 않으리란 결심으로 명절 때도 찾아가지 않고 견뎠습니다. 그렇게 삼 년이 지나고 설을 앞 둔 어느 날, 드디어 난 어머니를 찾아 뵙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무엇을 좋아하실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예쁜 옷 한 벌을 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출발하기 전날 밤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뭐라고?" "횡단보도를 건너시다가 술 취한 사람이 모는 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그만…" "엄마가 형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밖에서 인기척만 나면 네 형인가 보다 하며 내다 보셨다구. 그 뿐 아냐. 큰 아들이 돈 벌어 호강시켜 준댔다며 엄마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아? 그러면서 나보고 형만한 아우 없다고 형에게 떳떳한 동생이 돼야한다고 백번도 더 말했어." "지난번 엄마가 아플 때 형에게 전화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극구 말린 거 알아? 형 걱정시키면 안된다고, 약 먹으면 금방 낫는다고. 난 화가 나서 왜 맨날 엄마는 형을 감싸기만 하냐고 대들었지. 그게 형을 사랑하는 거냐고 따졌지. 갑자기 엄마가 내 뺨을 때리는 게 아니겠어? 난 정말 형이 미웠다구. 근데 지금은 아니야."

"……"

"형 듣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