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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종 때 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들을 모함해 죽인 정승 이기더러 '사필(史筆)이
두렵지 않는"고 한 친구가 충고한 적이 있었다.
이기의 반응은 이러했다.'<동국
통감(東國通鑑)> 따위를 어떤 사람이 본다던가.
쓸 대로 쓰라지' 한국역사가 무
슨 역사냐.
거기에 못되게 쓰였던들 무슨 탈이 있겠느냐 하는 자국의 역사를 깔
보고
비하하는 사대주의가 골수까지 사무쳐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세조 때 무법 무도하기로 유명한 정승 홍윤성(洪允成)이
<정원일기>에 자신의 죄
악이 낱낱이 기록돼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대국의 강목(綱目)도 사람들이 즐
겨 보지 않는데 하물며
 <동국통감>임에랴'고 코웃음을 치고 있다. 대국인 명나라의
 역사도 잘 보지 않는데 조선 역사쯤이야 하는 역시 자국의 역사를 얕보는
 사
대병의 개연성을 대변해 주고 있다. 사대주의가 극심할수록 자기 나라의
역사를 얕보고 깔보게 되는 것은 정한 이치다.

  세조 때의 문장 서거정(徐居正)의 <모과송(木瓜頌)>이 생각난다.
'겉도 노랗고 속도 노오란 것이 꼴도 제멋대로고 먹지도 못한다.
하지만 향기만은
 빛깔보다 꼴보다 뛰어나다.
외풍에 겉이 시들어도 향기는 시들지 않고 코로
맡아진다.'
유약하여 곧잘 문드러져버리는 겉과 속이 다른 바나나보다
빈곤과 외난에 시달려
몰골이 찌들어졌더라도 겉과 속이 같고
향기가 그윽한 모과이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