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나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하나님의 기적은 멈추지 않았다. 한국에서 첫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정보기관에서 한창 조사받던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중국 베이징에서 헤어졌던 예림이가 비슷한 시간에 나와 같이 조사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 둘에게 이보다 더한 충격은 없었다. 예림이를 만나는 순간, 반가움과 기쁨으로 잠시 심장이 멎는 듯했다. 우리 둘은 서로를 끌어안고 한동안 엉엉 울었다. 그리곤 뜨겁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한순간도 잊어본 적 없는 사랑하는 동생 예림이를 만나게 됐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읽고 그렇게 스토리를 엮어주신 것이었다.

내가 베이징역에서 예림이와 헤어진 뒤 한국 영사관을 거쳤던 데 비해, 예림이는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한국으로 들어왔다. 결국 내가 한국에 도착한 며칠 후 예림이도 한국땅을 밟았던 것이다. 우리 사이의 혈육보다 더 진한 정과 사랑을 하나님이 곱게 보아주신 듯하다.

하나원 생활이 시작됐다. 중국에서 함께 지냈던 동생 예정이, 예림이와 함께 하나원에서 지낸다는 게 꿈만 같았다. 하나원 선생님들은 참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대한민국에 도착한 우리를 반겨주는 그들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북한땅을 떠날 때 상상도 하지 못했던 현실이 참으로 신기했다. 사흘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마고 어린 딸과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영원히 떨어져 살아야 하는 엄마의 아픔이 가슴 한구석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뿐인가. 중국땅 여기저기 팔려다니던 동족들, 무참히 짓밟히고 전기 곤봉에 맞아 쓰러지던 동료들, 중국과 북한의 감옥에서 몸부림치던 영혼들의 신음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다.

내가 지금 누리고 받는 축복은 어디에서 왔을까를 생각했다. 정녕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토록 우리를 축복해주실 줄 상상이나 했던가. 가족과 생이별의 아픔을 느꼈을 때 죽고만 싶었던 내가 축복의 땅 한국에 와서 누리는 행복은 정녕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가능했다.

하나원 37기. 어쩌다 보니 총무와 회장을 맡아서 하게 됐다. 탈북한 뒤 모진 고생을 겪어온 여인들과 조직생활을 하면서 2개월 이상 평온하게 지낸다는 게 쉽지 않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사람들인지라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고, 그러다 보면 여러 가지 마찰이 심했다. 역대 총무와 회장들이 예외 없이 몇 차례씩 울었다는 말이 실감났다.
 나름대로 그들의 마음속 상처를 어루만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른 아침이면 나는 조용히 방송실로 내려갔다. 그리곤 기상 시간이 되면 상쾌한 기상 구령과 함께 북한 음악을 틀어주었다.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아요."
"회장 언니, 너무 감사해요."
우리는 한동안 북한 노래조차 들어볼 수 없었다. 어떤 이는 내 손을 부여잡고 엉엉 울기까지 했다. 그랬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속에 모진 상처들을 갖고 있었다. 주일 아침이면 찬양으로 기상을 시켰다. 그러자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라며 모두 기뻐했다.
 
 하나원에서는 우리끼리 각자 재능대로 가끔 공연을 했다. 한번은 분과장 선생님의 생신이란 걸 알고 깜짝 축하공연을 준비했다. 예정이가 아코디언을 메고, 내가 석 줄짜리 바이올린으로 정성껏 공연했다. 선생님은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멋지고 감동적인 공연은 처음 본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전화카드로 가끔 중국 지인들에게 전화하고 북한 가족의 소식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모두 행복해했다. 막연한 가운데서도 저마다 작은 소망을 품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하나원 시절이 한국에 와서 가장 편하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 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