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언니를 참 예뻐하시나 봐요. 언니 기도를 그렇게 잘 들어주시니까요." 나도 놀랐다. 예림이 뱃속에 있는 돈이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신기하게도 그렇게 됐다. 두만강을 건너기 전부터 한번도 대변을 보지 못한 예림이가 내 기도를 기다렸다는 듯이 변의를 느끼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표현하기 좀 그렇지만 변속에서 나온 돈 뭉치 세 개를 물로 씻고 소금물에 담갔다 다시 씻어도 역겨운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중국인 택시 기사는 코를 킁킁거리면서도 후한 요금에 마냥 싱글벙글이었다.

모든 걸 하나님께 맡겼다. 옌지까지 가는 도중에 있는 초소 3개를 무사히 통과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역시 검문이 예사롭지 않았다. 버스, 택시, 자가용 할 것 없이 다 세워놓고 검문했다. 우리가 탄 택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후줄근한 군인 한 명이 안을 힐끔 보고는 바로 보내는 것이 아닌가. 첫 초소야 우연으로 치지만 나머지 두 개 초소에서도 그런 식이었다. 하나님이었다.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황을 알고 지켜주신 것이었다. 이젠 옌볜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도 없었다. 우리는 한국행을 본격 결행하기로 했다.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베트남을 통해 가는 루트를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월드컵축구대회가 한창 벌어지고 있던 2002년 베이징의 브로커와 연결해 베이징을 거쳐 베트남과 가까운 난징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우리를 향한 시련은 멈추지 않았다. 긴가민가 의심스럽던 브로커가 돈만 받아 챙기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결국 베트남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독안의 생쥐 꼴이 되고 말았다. 중국 세관에서 우리의 가짜 증명서가 발각됐다. 역시 기다리는 곳은 감옥이었다.

이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다시 북송되면 영영 끝장이었다. 감옥 안에서 목놓아 울면서 기도를 드렸다. 옆에서 "재수 없는 예수쟁이들"이라며 눈을 있는 대로 흘겼지만 우리는 "하나님, 정녕 저희를 버리십니까"라고 외치며 기도했다. "저기 두 사람 나와!" 감옥에서 사흘만에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자 감옥 문이 열리고는 나와 예림이를 나오라고 했다. 처음엔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군인이 가리킨 두 사람은 분명 나와 예림이었다. 우리가 나가자 앞으로는 증명서를 제대로 갖고 다니라며 고향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우린 울면서 깡충깡충 뛰었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기적이었다. 사흘간에 걸친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이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16:25∼26) 베이징행 표를 끊어 서둘러 열차에 올랐다. 가방 깊숙이 넣어둔 휴대전화를 꺼내 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벨이 울렸다. 귀신에 홀린 듯 전화를 받았다. "와이(여보세요)" "주 선생이세요?" "예? 아, 예." "지금 어딥네까?" "열차 안인데요. 그런데 누구신가요?" 옌볜의 누구를 통해서 나를 소개받았다고 했다. 너무 긴장해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아는 사람 이름이 나오고서야 가까스로 진정됐다. 베이징 역에 내려 밖으로 나와 오른쪽을 보면 검은색 승용차가 있으니 타라고 하곤 전화가 끊겼다. 직감적으로 위험이 감지됐다. 예림이에게 베이징에 내려서부터는 일단 따로 행동하자고 했다. 열차는 거의 하루를 달려 베이징에 도착했다. "이리로 오세요." 역사를 막 벗어나려는 순간 검은색 안경을 낀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아세요?"하고 물으려는데, "이미 주 선생 사진을 보아서 압니다"며 답변부터 했다. 또 다시 체포됐다 생각하고 체념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