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기도가 나왔다. 기도를 했는 데도 엄습하는 공포와 불안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죽음의 소굴에서 겨우 빠져나오자 더 무서운 죽음의 소굴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그때, 갑자기 귀가 멍해지더니 무슨 소리가 들렸다.“사랑하는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마라. 놀라지 마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네가 너무 고생하기에 내가 너를 직접 데리고 한국으로 가려 한다.”

 두 눈을 번쩍 뜨고 앞자리 운전자와 옆자리 검은 안경 쓴 남자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 다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면 방금 내 귀에 들린 그 소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정녕 하나님이 들려주신 음성이란 말인가. 다시 한번 듣고 싶어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나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내가 탄 차는 베이징 시내를 경쾌하게 내달렸다.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들었다.

내가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밖으로 나갔다. 수많은 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고 환영객들이 꽃다발을 건네줬다. 나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하나님 만세! 만세! 만세!”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너무 소리를 질러 더 이상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주 선생님, 다 왔습니다. 내리시죠.”꿈이었다. 잠깐 졸면서 꿈을 꾸었다. 내가 한국에 도착해서 수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는 꿈이었다. “자, 주 선생님. 여기는 대한민국 영토입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여기는 중국 주재 한국 영사관입니다.”2002년 11월4일. 참으로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였다. 북한 보위부 사람들에게 붙들려 끌려가는 줄 알았는데 한국 영사관으로 왔다니, 믿기지 않았다. 베이징 역에서 동생들과 함께 타지 않은 게 후회됐다. 그러면 나를 태워준 그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그 이후로 그 사람들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나를 구하려고 보내주신 천사들이라고 생각한다.

“야! 김정숙이다!”영사관 안 어디론가 갔는데 한 여자가 나를 알아보았다. 성형수술을 하고 세월이 흘러 많이 변해버린 얼굴인 데도 신기하게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30여분간 조사를 받고 한 방으로 들어갔다. 80여명의 남녀가 방에 꽉 차 있었다.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탈북민들이었다. 모두들 평온한 얼굴로 끼리끼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평범한 탈북여성으로 처신다며 그들 속에 들었다. 이들은 순서대로 한국으로 갈 예정이며, 나의 경우 석 달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았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넓고 넓은 만주 벌판에서 떠돌던 우리들에게 구원의 빛을 주시어 이렇게 축복의 땅으로 인도해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구한 사연들을 털어놨다. 사연들마다 아픔과 슬픔이 범벅이 돼 있었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그 시간에도 굶주림에 쓰러져가는 북한의 동포를 떠올리며 자신들의 축복에 감사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상의 땅 애굽에서 이끌어내시어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시키시고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그 하나님께서 오늘의 북한 땅, 그 우상의 땅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해주시기를 기도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만주 광야와 몽골, 베트남 국경 등을 전전하며 숱한 연단을 겪게 한 뒤 축복의 땅 대한민국으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계획이 신기하기만 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그분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증거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리라고 굳게 다짐했다.“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