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인도해주신 주님 찬양하자”교육마친후 순회 간증집회

 

  2003년 5월4일.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하나원을 졸업하고 한국 생활의 걸음마를 뗀 뜻깊은 날이다. 하나원을 나서면서 동생들과 약속했다. 우리를 축복의 땅으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바치며 살자고. 그리곤 몇 분 목사님들의 힘을 빌려 거산교회, 수원화목교회 등 그동안 도움을 받은 교회들을 돌며 찬양간증집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부평대영교회. 나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새롭게 일깨워준 교회다. 나와 동생들로 이뤄진 찬양팀이 교회에 간다고 연락하자 교회는 잔치 분위기였다. 정영벽 목사님 부부와 장헌식 장로님을 비롯한 성도님들이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리는 교회에 가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 교회는 끊임없이 우리 같은 탈북자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왔다. 특히 우리가 내몽골 사막에 잡혀서 고생했던 6개월 동안 모든 성도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셨다. '아! 하나님! 우린 그런 것도 모르고…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간증과 찬양은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뜨겁고도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됐다. 우리뿐 아니라 수많은 성도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다. "우리가 뿌린 작은 씨앗이 이렇게 열매를 거둘 줄 몰랐다"면서 두 눈 가득 이슬을 머금은 장 장로님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나님,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겠습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신 그 사랑에 보답하겠습니다." 몇 달 동안 이어진 집회는 가는 곳마다 감동과 은혜로 넘쳐났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한번은 한 교회 새벽집회를 마치고 산기도를 가게 됐다. 상큼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산꼭대기에서 기도를 하던 중 식당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 이제는 하나님께서 다른 일을 하라고 하시는구나'하고 생각했다.

곧바로 담당 형사를 만나 식당 자리를 좀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금싸라기 땅 서울에서 가게 하나 얻기가 쉬운 일이겠는가. 거기다 식당으로 성공했다고 하는 탈북 선배들이 사기 등으로 고생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호프집을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호프집이 뭔데요?"

얼마 지나 담당 형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호프집이 나왔다는데, 난생 처음 듣는 호프집이 뭔가 싶었다. 생맥주집이라는 것이다. 18평짜리 자그마한 가게인데, 상계동 아파트단지에 있어서 입지조건은 괜찮다는 말에 솔깃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보증금과 권리금을 합쳐서 7000만원이란다. 도대체 7000만원이란 거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정착금으로 아파트 임대계약하고 남은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몇 군데 아는 사람들한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빌려줄 사람이 나타났다.

서둘러 계약을 하고 동생들과 함께 식당 개업준비를 했다. '평양 옥류관 라이브 음식점'으로 간판을 달아 호프집 간판을 가렸다. 그 무렵 몇 군데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기에 응했다. 그런데 그게 엄청난 효과를 냈다. 갑자기 유명해진 것이다. 손님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평양냉면, 평양온반 등 북한 고급 음식들을 만들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인산인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정도였다.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거리를 메웠다. 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손님들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이제 순탄하게 한국에 정착해 잘 사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한국 땅에서 겪어야 할 시련을 예비해 놓으셨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