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대한 새로운 시적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정세훈 시집,  [부평 4공단 여공]

      † 갈수록 노동자의 궁핍화 경향을 부채질하는 시장 질서에 맞서 무엇이 좋은 노동이며
          그런 좋은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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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로 촉발된 희망버스 출현
,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23인의 희생 등 최근 최대의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노동()에 대한 새로운 시적 사유를 보여주고 있는 시집이 출간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문제의 시집은 1989노동해방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세훈 시인(57. 사진)의 신작 시집부평 4공단 여공(푸른사상사)이다.

이 시집은 소년 노동자로 영세한 공장 노동자 생활을 시작한 시인이 열악한 공장에서 얻은 직업병으로 오랜 세월 투병생활을 해오며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출간한 시집이어서 더욱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표제작부평 4공단 여공을 비롯하여‘2012년 노동판’‘풍만한 노동60여 편의 시를 통해 갈수록 노동자의 궁핍화 경향을 부채질하는 시장 질서에 맞서 무엇이 좋은 노동이며 그런 좋은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한지를 묻고 있다.

시집과 관련하여 정희성 시인은죽음의 고비를 넘어선 그의 시에는 푸성귀 같은 생기가 있다. 2006년 그가 생을 정리하듯이 내놓은 시집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이후,‘재생된 삶이니 더욱 공공선(公共善)에 투신하고 헌신하며…… 졸시들이 거기에서 벗어나 곁눈질하지 말기를 기원한다고 말하고 있다면서,“나는 그의 다짐을실직」「푸성귀같은 시에서 확인하거니와 일찍 세상을 앓다 간 박영근에게 보여준 각별한 애정에서도 그것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시인은 현대 노동시를 개척한 고 박영근 시인의 시비 건립위원장을 맡아 지난 91일 인천시 부평구 신트리공원에 박 시인의 '솔아 푸른 솔아가 새겨진 시비를 건립했다.

김사인 시인은섧고 고달프고 분한 고비에서도 시선과 목소리에 진실함을 잃지 않고자, 사람에 대한 미움에 발목 잡히지 않고자 그가 어떻게 애쓰고 있는지를 자세히 보라,“그 애씀의 한 끝으로엄동설한」「어머니가 우신다」「첫사랑」「야릇한 통증같은, 투명하여 가슴 아픈 가편(佳篇)들이 아무것도 아닌 듯이 여기저기 피어나 있다. 얼마나 힘센 소박함인가. 얼마나 무서운 선량함인가. 무엇이 그에 대적할 수 있겠는가고 말했다.

또한 평론가 고영직은 풍만한 노동을 위한 시적 상상력이란 제목의 해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정세훈 시인은 데뷔 이후 지금껏 민중의생활주의를 구현하는 시편들을 써온 시인이다. 민중의 생활주의적 감각에 근거한 정세훈의 시적 행보는 1990년대 이후 우리 시단에서 희유(稀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집 맑은 하늘을 보면(1990)을 비롯한 다수 시편들에서 정세훈이 보여준 이러한 민중의 생활주의는 일상의 노동 경험을 상상력의 젖줄로 삼아 특유의 소박성과 원시성의 미학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드러난 바 있다.

정세훈 시 고유의 이러한 미학적 특징은 1989노동해방문학5월호에 발표한 데뷔작 별따기와 초기 대표작 맑은 하늘을 보면같은 시들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맑은 하늘을 보면 / 걱정이 생겨/슬픔도 생겨/어디선가 갑자기/구름들이 달려와/하늘을/온통 덮어버릴 것만 같구먼.”(맑은 하늘을 보면전문) 저 하늘의 맑은 하늘을 보면서도구름들로 표상되는 갖은 생활난(生活難)을 예감하는 정세훈의 생활주의적 태도는 고된 노동과 질긴 삶을 온몸으로 살아내지 않고서는 얻어질 수 없는 시적 감각이라고 보아야 옳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이 시에 드러난 맑은 하늘의 이미지는 갖은 기교를 동원한 어떤 시적 표현보다 소박하지만 강렬한 심상으로 당대 독자들의 내면에 육박하는 시적 효과를 발휘하였다.

정세훈 시의 이러한 민중적 생활주의는 온당한 비평적 관심을 받지 못한 것 같다. 소위 투쟁의 국면을 갖고서 민중의 실체를 보려 한 1980년대 문학판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서정의 문법과 미래파의 새로운 감각에 요동쳤던 1990년대 시단에서도 민중의 생활주의는 비평적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가령 노동자의 현실을 다룬 1980년대 노동시의 성과를 말할 때, 박노해와 박영근을 먼저 언급하는 것도 그런 사례에 속한다.

신작 시집 부평 4공단 여공은 마침내 자기의 시대가 도래한 시인의 시적 비전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으리라고 단언할 수 있다. 정세훈이 지향하는 시적 비전은 한 마디로 말해좋은 노동’(good work)에 관한 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현장 체험에서 발병한 병마(病魔)와 오래도록 싸우며 죽다 살아난 시인의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과 사유 과정이 행간마다 묻어나기에 감히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단언해도 좋다. 시인 또한 시인의 말에서 재생된 삶이니 더욱 공공선(公共善)에 투신하고 헌신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지 않던가.

시집의 3~4부 시편들은 어느 시의 표현처럼서울 변두리 김포시/종합병원 7층 흉부외과 병동 침상”(오월 흰 구름) 위에서 쓴 이른바통증 연대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병동 침상 위에서도 정세훈 시인은 살고 싶다/정말 살고 싶다라고 절규하는가 하면, “살려만 주신다면/인간답게 살겠다고/나보다 더 힘든 이를 위해/헌신하는 삶을 살겠다”(혈관에 스며드는 마취제처럼)는 고통에 찬 실존의 내면풍경을 여과 없이 표현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 처절한 실존의 육성과 기록이 있기에 1~2부 시들에서 보이는 좋은 노동에 관한 시적 사유와 행동이 역설적 진리를 얻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맑은 하늘 하나 낳아보리바다는 정세훈 시인이 바라는 좋은 노동에 대한 태도가 자연물에 가탁되어 표현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시편들에서하늘바다가 수행하는 순정한 무위(無爲)의 노동에 관한 시인의 시선의 전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픈 상처/어루만져 주어//공존의 마을을/이루는 것//무지개로/마을을 하늘에 닿게 하는 것”(바다)이라는 순정한 시적 인식이다. 이것이 곧 자연이 묵묵히 수행하는 좋은 노동에 관한 시인의 시적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적 인식 때문일까. 정세훈 시에 등장하는하늘의 이미지 또한 저 1980년대 노동시와는 다른 구름 한 점 없는 말 그대로의 맑은 하늘그대와 더불어 함께 낳아보자는 적극적 연대의 감수성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점이 초기 시와는 변화한 정세훈의 시적 전환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데, 자신의 온몸을 동원하여 촉감(觸感)을 활용하려는 민중의 생활주의적 감각과 태도는 여일하다. 어쩌면 정세훈은 그런 시인의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

정세훈 시인은 1955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7살부터 소규모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1989노동해방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작 활동을 했다. 공장에서 얻은 병으로 30여 년간 투병 생활을 해오다가 2011년 초부터 건강이 호전되어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시집손 하나로 아름다운 당신』『맑은 하늘을 보면』『저별을 버리지 말아야지』『끝내 술잔을 비우지 못하였습니다』『그 옛날 별들이 생각났다』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 장편동화집 세상 밖으로 나온 꼬마 송사리 큰눈이, 포엠 에세이집 소나기를 머금은 풀꽃 향기가 있다.

                                              정세훈시집 표지01.jpg
                          정세훈 지음
127×205변형국판1288,000978-89-5640-963-4 푸른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