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국 목사, 계시록 15장 강해[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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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불이 섞인 유리바다

그렇다면 왜 불이 섞인 유리바다라고 하셨을까요? 여기서의 불은 환란과 진노의 불이 아닙니다. [12:49]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수님은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받을 침례를 말하는 것이고 이 침례는 십자가의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던지시는 불은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이 되셔서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요일 4:10) , 여기서 말하는 순교한 자들이 서 있는 불이 섞인 유리바다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순교하여 이곳까지 오게 된 순교자들이 그 사랑을 찬양하며 기뻐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유리바다에 선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앞서 [4:6]에서 상고한 바와 같이 유리바다에 서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속과 겉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속과 겉이 완전한 자여야만 그 유리바다에 설 수 있는 것인데, 이긴 자들이 여기에 설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피로서 속죄 구원의 의로 말미암아 겉이 깨끗해지고, 주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형상에 일치되어 결국 그리스도의 분량에 까지 이르게 되어 그 속도 깨끗해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4. 하나님의 하프들을 가지고 유리바다 위에 섰더라

이것은 이 땅에서의 하프가 아닙니다. 영적인 하늘나라의 찬양과 기쁨을 말합니다. 이긴 자들이 환란 날 믿음으로 이김으로 말미암아 순교하여 하늘나라에 올라온 뒤 일곱 호리병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을 기뻐하는 것일까요? 진노의 심판을 받는 자들을 고소해하며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을 승리하게 하시어 여기까지 이르게 하신 것을 기뻐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는 3절에서의 모세의 노래어린양의 노래라고 하는 것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 ‘모세의 노래[15]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바다를 육지를 건너듯 건넜으나 뒤쫓아 오던 애굽의 군대들은 물에 수장되어 죽었습니다. 이것을 목도하며 기뻐한 것이 바로 모세의 노래입니다. 자신들을 바로의 손에서 건지시고, 또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해주신 구원을 감사하는 것이 바로 모세의 노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리 바다에 서 있는 이긴 자들은 자신들을 이렇게 이기게 해주시고, 구원해주신 것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린양의 노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어린양은 제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노래는 예수님 안에서 어린양인 예수님과 똑같은 순교의 제물로 바쳐져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을 감격하고 찬양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상고한 바와 같이 [14:3]144,000명이 하나님의 하프 소리와 함께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바로 이것이 어린양의 노래인 것입니다.

 

[15]모세의 노래는 옛 노래가 되는 것이고, ‘어린양의 노래가 바로 새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이 새 노래는 오직 144,000명만이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말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되어진 것으로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의 능력과 주님의 고난의 교제를 알게 되면 그 소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고난을 알게 됨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 그리스도의 고난이 그리스도로 다 끝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를 세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의 몸에 채우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약시대 사도바울이 깨달아서 그의 사역 내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일을 한 것이고, 결국에는 순교로서 이기게 된 것입니다.

 

순교는 어느 한순간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고난을 기쁘게 여기며 계속 연단이 되어져야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주님의 고난을 기쁘게 여기는 것은 자신에게 예비 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본 자만이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영의 눈으로 확신하게 된 자만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그 영광을 자신의 것이 되게 인도해주시는 것임을 깨닫게 되어 기쁘게 동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순교의 신앙에 이르게 하고, 순교의 제물로 바쳐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도함을 받은 것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이 바로 새 노래를 부르는 어린양의 노래인 것이며 또 이것이 우리가 부르는 노래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5. 전능하신 주 하나님, 성도들의 왕이여

주님을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라 하고, ‘성도들의 왕이라 호칭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불가능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있을 수 없고 불가능한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기 자신을 승리하고, 이기게 하신 것을 말합니다. 자기 자신이 승리하고 이기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인데 이것을 가능케 하시니 전능하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의 왕이라 하셨는데 여기서의 은 큰 글씨의 왕으로 왕 중의 왕을 말하는 것입니다. 큰 글씨의 왕이 있으면 작은 글씨의 왕도 있습니다.

 

이는 [19:16]에 좀 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주님의 이름이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라고 하셨습니다. [17:14]에서도 나옵니다. 바로 작은 글씨의 왕은 불이 섞인 유리 바다에 서 있는 이긴 자들을 말하는 것이고, 이들이 만왕이며 이러한 만왕의 왕이 되시는 것이 바로 주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왕으로 임명받게 될 것이며 그 왕을 세우시는 임명권자가 큰 글씨의 유일한 왕이시고, 이것을 가리켜 성도들의 왕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실제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들과 큰 글씨 왕과의 관계가 확실히 믿어지고 깨달아지는 것이고, 또 이것이 믿어지게 되면 순교의 신앙으로도 확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왕들로 임명을 받게 되면 천년(千年)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으로 통치하게 됩니다. 이것은 또한 열매 맺는 일이 되는 것이고, 이 열매로 영원히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말하면 장자의 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복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