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국 목사, 계시록 15장 강해[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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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 내가 하늘에서 크고 놀라운 다른 표적을 보았는데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졌더라. 이로써 하나님의 진노가 그것들 안에서 끝마치리로다. 

1. 하늘에서 크고 놀라운 다른 표적

이것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이는 세 번째이고 마지막 표적입니다. 첫 번째 표적은 앞서 [12:1]의 해 입은 여자가 사내아이를 낳는 표적입니다. 낳을 수 없는 와중에 낳는 역사, 세상에 속한 것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적이고 표적입니다. 다시 말하면 금촛대 교회가 철장 권세를 가진 두 증인을 낳는 역사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특별역사로 하신 큰 이적이고 표적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12:3]의 붉은 용의 표적입니다. 붉은 용인 마귀가 하늘의 별 삼 분의 일을 땅에 떨어뜨리는 것, 그리고 해 입은 여자가 낳는 사내아이들을 삼키려고 하나 그들이 가진 철장 권세로 삼켜지지 않고, 결국 그 사역을 다 마친 후 하나님께서 철장 권세를 회수시키신 후에나 사내아이들이 죽게 되는 이것이 바로 두 번째 표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표적이 [15:1]의 표적입니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 모든 것을 끝내버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이적이고 표적입니다. 하나님의 의로 불의를 평정하고, 가증한 것,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그에 합세한 음녀교회들을 하나님의 의로 멸하시는 공의의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표적입니다. 또 이것을 우리에게 미리 알게 하심은 우리로 진노의 심판에 들지 않도록 경고하시는 것이며 지금 잠들어 있는 교회들에게 이 예언의 말씀으로 깨우치는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2: 내가 보니, 불로 뒤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그 짐승과 그의 형상과 그의 표와 그의 이름의 숫자에 대하여 이긴 자들이 하나님의 하프들을 가지고 유리 바다 위에 섰더라.

 

3: 그들이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며 말하기를 전능하신 주 하나님, 주의 행하신 일이 위대하고 놀라우니, 성도들의 왕이여, 주의 길은 의롭고도 진실하나이다.

 

2. 불이 섞인 유리 바다에 서 있는 이긴 자들

이 구절은 상당히 난해 구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교회들이 불이 섞인 유리 바다를 예비처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일곱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를 말하는 것이고, 이때 일곱 호리병을 갖고 있는 일곱 천사가 나오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첫째 나팔이 불 때 환란이 시작되게 되며, 이후 다섯째 나팔 불 때의 ‘5개월 황충의 화까지가 모두 전() 삼년 반의 일입니다.

 

그리고 전() 삼년 반이 끝나고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사도 요한은 이미 하늘 위에서 이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란 날에 승리한 순교한 자의 대표인 사도 요한은 다섯째 나팔을 분 이후에는 그 환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섯째 나팔을 분 이후에 지상에는 믿음으로 승리한 자들은 없습니다. 모두 순교가 끝나고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 삼년 반인 여섯째 나팔을 불 때 유프라테스 전쟁, 세계 제 3차 대전이 있게 되며 그 이후에 [15:1]의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이 시점에는 그 짐승과 그의 형상과 그의 표와 그의 이름의 숫자에 대하여 이긴 자들은 순교자들로써 예비처인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순교한 후 하늘에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불이 섞인 유리 바다는 이 땅(예비처)이 아닌 것이 너무나도 분명한 것입니다.

 

또한 [4:6]에서 이미 상고한 바와 같이 유리 바다는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통하여 이긴 자들이 서 있는 불이 섞인 유리 바다는 이 땅에 있는 예비처가 아니라 순교한 자들이 순교한 뒤 올라가는 하늘 나라인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교회들, 지도자들, 성도들은 어찌하든지 순교를 가급적 하지 않고 목숨을 부지한 채 복을 받기 원하기 때문에 예비처에 소망을 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이 신랑으로 오실 때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합당한 신부가 되기 위해 그들을 신랑의 차원으로 끌어 올려주십니다. 신랑과 같은 차원이라는 것은 신랑과 같이 부활체가 되어져야 하는 것을 말하고, 부활체는 반드시 죽음이라는 선제조건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죽음이 없이 휴거를 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부활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죽음 역시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라 예수님과 같이 제물로 죽임을 당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길을 따라 신앙의 정절을 지켜 이김으로 순교를 당하여 주님과 같은 영광의 부활체로 신령한 몸이 되어 주님과 신랑 신부의 관계로 혼인식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고 싶지 않아도 예수님을 제대로만 믿는다면 환란 날에 전부 죽임을 당하는 것이고, 만일 죽는 것이 싫다면 결국은 육신의 목숨 때문에 배도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배도를 한다고 해서 오랜 기간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기껏해야 삼년 반의 기간 정도 더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끝은 음부의 불꽃 가운데 직행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