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국 목사, 계시록강해[73] (14:4~11)

 여자들과 더불어 더렵혀지지 아니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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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랑교회 장한국 목사(예장진리 총회장/cjtntv명예이사장)

여기서의 여자는 음녀로 일반적인 의미의 여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여자들과 더불어 더럽혀지지 아니한 자를 동정이라 했는데 실제 원문에서는 [virgin] 즉 숫처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여기서의 여자가 일반적인 여자라면 여자와 더럽혀지지 아니한 자를 숫처녀라고 함은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자는 일반적인 여자가 아니라 음녀로서 배도한 교회, ()진리의 무리들, 다른 예수, 다른 영, 예언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으로 사는 교회들이나 무리들과 더불어 더럽혀지지 아니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과 섞어지지 아니하고 접하지 않고, 거룩히 구별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

여기서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했는데 이는 십자가에 대속 제물 되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 어린양이 남기신 발자취, 십자가까지 가신 그 최종코스까지 그대로 따라가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사만사천의 종착역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신 것과 같이 죽임당하는 것이 자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 순교는 말이 되질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산 순교라는 말도 없으며, 죽지 않고 순교로 여기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는 반드시 제물로 육체의 죽임, 순교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물로 바쳐질 수 있게 주님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앞서 상고한 바와 같이 물소리와 뇌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양께 첫 열매

어린양께 첫 열매가 된 것은 일찍 죽임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자들[13:8] 중 제일 앞서서 녹명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 순교할 자로 녹명된 자들 중 가장 먼저 녹명된 자들로 순교할 자로 녹명된 자를 가운데 처음부터 순서대로 144,000까지 헤아리면 그들이 십사만 사천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그것을 듣고 지키는 자들이 따라오는데 그 녹명된 순서로 144,000명을 자르면 그것이 바로 십사만 사천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후 사람들은 십사만 사천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속한 첫 열매라고 함은 구약의 아담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차례대로 세웠을 때 첫 번째부터 십사만 사천 번째에 해당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 영광과 하나님 앞에 가장 가까이 서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22:3~4]의 그들이 바로 십사만 사천들이며 하나님 면전에서 하나님과 같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 보다 멀리 있는 자들을 새 예루살렘 성, 장자들이며 첫째부활의 영광을 받지 않은 자들은 같은 하늘나라이나 새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굉장한 은혜이고, 영광인 것입니다. 구약에서 믿음의 선진들인 다윗, 엘리야, 모세, 에녹보다도 앞서 있는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믿는다면 우리의 기도부터 다르게 될 것입니다.

 

입에서 교활함을 찾아볼 수 없는 자들

그들의 입에 거짓이 없다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말하는 도덕적, 윤리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 예수님, 진리, 말씀이 거짓 없이 참된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고 증거 한 자들도 해당되지 않고, 그렇게 믿은 자들도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일부 깨닫지 못해서 그 부분에 대해 증거 하지 못했다면 그들도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면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사진 찍어서 본 것을 말하는 것같이 transparent(명백하고 투명하게)하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벽옥과 같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에서 교활함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사진 찍혀진 것과 같이 그대로 거짓 없이 증거 한다는 것이고 이는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흠이 없다고 했습니다. 완전하다는 것인데 사람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완전할 수 없는 자들을 완전하라고 하심은 예수님이 그렇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서 그리스도와 같이 속과 겉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꽉 차게 되면 그리스도가 완전하신 것같이 완전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완전했다는 것은 홍수심판과 그 때 구원받을 말씀으로 잣나무로 방주를 지었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노아는 그 말씀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그 말씀이 꽉 차있기 때문에 말씀에 의해서만 사는 것이 되는 것이 되기에 그를 완전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의 평생이 다른 것이 없이 방주지은 것만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것으로 되어진 노아가 완전하다는 것이고, 우리가 속과 겉이 그리스도의 것, 특히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져 그가 세우실 종으로 되어진 것이 된다면 이것이 완전한 것이고 흠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철장권세를 가지신 것과 같이 같은 권세로 예언도 하고, 주님 재림 시 주님과 같이 심판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완전하신 것 같이 십사만 사천도 완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완전한 자가 되려면 요한계시록과 같은 주의 재림에 관한 진리로 속이 꽉 차서 1%도 다른 것이 없이 100% 그 진리로만 믿고, 그 진리에 의하여 모든 것이 집중되어 살아가면 그것이 완전이라는 것입니다.

6: 또 내가 보니, 다른 천사가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가는데 그가 땅에 사는 자들과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와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7: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분의 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이라.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의 원천들을 지으신 그분께 경배 드리라.”

 

영원한 복음을 가진 다른 천사[ἄγγελος 앙겔로스]

[14:6~11]은 앞서 142~5절 십사만 사천이 된 그들이 할 일과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믿고 깨달아 이 말씀을 실감나게 본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생명 되어서 이 말씀의 것으로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서의 영원한 복음을 가진 천사는 누구일까요? [1:20]에서 일곱별은 일곱 금촛대교회 천사, ἄγγελος[앙겔로스]라고 하셨습니다. 앙겔로스는 천사라고도 할 수 있고, 사자라고 할 수도 있는데 하나님의 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종을 말하는 것으로 육체가 없는 하늘의 천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6절의 다른 천사도 γγελος[앙겔로스]로 하늘의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천사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10:9~11]에서 펴 놓인 작은 책을 먹는 자는 사람입니다. 먼저는 사도요한이고 실제로는 두 증인들이 먹는 것이며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천사가 아닙니다. 이 두 증인들은 [10:11]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신대로 예언하게 되는 것이고 이들이 환란 날에 사역하는 하나님의 종들인 것입니다.

 

또한 [10:11]에서 그 예언의 대상 즉, 많은 백성들과 민족들과 언어들과 왕들 앞에서 예언한다고 했는데 이는 [14:6]의 영원한 복음이 전해지는 대상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영원한 복음을 가진 천사는 펴 놓인 작은 책을 먹고, 환란 날에 사역할 종으로 세움 받은 두 증인임을 알 수 있고, 그들은 십사만 사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를 분명히 믿고, 이것에 목숨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이러한 십사만 사천을 사모하고 있으면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영광을 돌리고, 경배를 드리라는 것은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누구나 드립니다. 배도한 자들도 드리고, 순교한 자들도 드리고, 하나님의 종들도 드리고, 평신도들도 드립니다. 심지어 이단들도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예배드리라는 것을 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셨는데 이는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분께만 예배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배도한 자들의 예배는 하나님께도 드리지만 다른 자에게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기독교 선진국인 미국과 같은 곳에서도 하나님께만 구원이 있고 예배드리라고 하면 법에 걸려 잡혀갑니다. 또한 우리들 속에도 하나님의 자리에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는 있지만 우리들 속에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인의 목숨이 될 수도 있고, 자녀, 공부, , 명예, 취미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한 분으로만 족하고 다른 것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아야만 그 분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과 동등하게 두는 것을 없애지 않으면 결국은 그것에 삼켜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타락하게 되는 것이고 타락해서도 예배는 드리지만 하나님께로는 떠난 사람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에 일치된 자로는 다니엘서에서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도 이에 해당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이들을 보고 우리 자신을 비교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이들과 비교하여 뭔가가 되지 않은 부분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정답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자로 그리스도의 것으로 산 제물 된 자이고 그렇게 산 제물 된 자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자기의 모든 것을 불사를 수 있으며 이렇게 하나님께 열납((悅納)된 산 제물 된 자는 순교 제물로 바쳐질 자가 되어지며 이러한 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거칠 것이 없으며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하나도 다른 것이 끼어들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되어졌는지 살펴보고 이것이 은혜시대 끝날 때까지 되지기를 바래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은혜시대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순교제물이 되지 않고 예배를 드려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복음을 증거 할 때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되면 목이 달아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와 어둠의 권세자들이 있는 때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자들에게 붙여서 이렇게 붙여 진 바 된 우리가 바른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목을 내놓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힘든 것이기 때문에 영원한 복음의 제 일성(一聲)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