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가 새로 거듭나기 위한 진통을 치르고 있는 역사적인 순간에 난데없이 튀어나와 물길을 되돌리려는 인물들이 있다. 경향교회 석기현 목사를 비롯한 일부 극우 세력이 그들이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너무 뻔뻔스럽다. 인질사건이 발생하고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갈 때 가지 일언반구 없다가 개신교 원로들과 진보 교단을 중심으로 반성과 개혁을 촉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자 드디어 입을 열고 나선 것이다. 개신교의 자기 변화로 인해 가장 타격을 입을 집단은 수도권의 대형 보수 교회들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부자세습, 공금횡령 등과 아울러 냉전 수구세력과 결탁해 이념장사까지 벌여온 인물들이다. 평소 보수 우익 단체 집회 때마다 얼굴을 내밀었던 한 대형교회 목사가 저질러 온 불법행위들은 교회를 거짓말과 도둑질이 횡행하는 범죄소굴로 전락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석기현 목사의 논리는 단순하다. 그는 “이 사태에서 최고의 악은 탈레반인데, 오히려 피해자인 피랍자들과 미국을 비난하는 자들이 있다” 고 전제한 뒤 “이런 자들은 선과 악을 뒤 바꾸는 사탄의 무리들로써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위협한다. 그가 설교를 통해 정작 경계하고자 한 대상은 개신교 내부의 반성과 개혁의 목소리다. 그러나 그는 도입부에서 인질사건을 어린이 유괴사건에 비교하면서 사건의 구도를 철저히 단순화시킨 뒤 네티즌들과 비판론자들을 ‘뚱딴지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정신이상자들’로 몰아간다. 그가 단순화 시킨 사건의 구도 속에서는 네티즌들은 물론이고 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탈레반은 악마고 피랍자들은 천사다’라는 말 외에 불필요하게 두 말 이상을 지껄였거나 써 갈겼던 논자들 모두 피도 눈물도 없는 패륜집단으로 매도 당할 수 밖에 없다.

아프칸 인질사건이 ‘어린이 유괴사건’ 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도 구별할 수 없는 석기현 목사에게는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생각조차 떠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사건이 끝난 뒤 그래도 말이 통할 것 같은 박은조 목사를 비롯한 샘물교회 관계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석 목사 와 그의 설교에 동의하는 교우(교단에 관계없이)들에게 미리 대신 전하고자 한다. 그들이 내 의견에 동의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기대하는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마지막 자기 변론’은 해야 하겠기 때문이다. 비록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생산성이 터무니 없이 저조한 ‘노동집약적인 단기 봉사’라 하더라도 봉사활동 자체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불신자들은 선교를 논할 자격도 없다고 하니 ‘선교’를 주제로 한 새삼스러운 반론도 접겠다. 그러나 석기현 목사는 이라크와 이프카니스탄 전쟁의 본질이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추악한 내용을 담고 있는 지부터 다시 찬찬히 살펴보기 바란다.그런 다음에 ‘적성국의 이교도’들의 선교와 봉사가 과연 이 나라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다시 연구해 보기 바란다.

두 전쟁 모두 9.11 훨씬 이전부터 계획된 침략전쟁이다. 이라크 침략은 중동지역 자원확보의 안정성 유지와 미국의 전진기지인 이스라엘 보호를 위해, 아프카니스탄 침략은 중국과 러시아,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이란을 견제할 지정학적 공간을 확보하고 카스피해 주변에 매장돼 있는 엄청난 양의 원유와 천연가스를 차지할 목적으로 부시 정권이 집권 초반부터 기획한 프로젝트다.

이 두 전쟁은 동기와 과정 모두가 공개적으로 추악했다는 점이 특이했다. 이라크 전쟁은 에너지 메이저 와 Zionists 들의 조언을 받은 대통령이 정보기관의 고위 책임자들을 협박해 날조한 가짜 정보를 근거로 일으켰다. 아프카니스탄 침략 과정은 더 가관이다. ‘9.11 의 주범인 빈 라덴을 무조건 인도하지 않으면 침공하겠다’고 협박하더니 정작 탈레반 정권이 ‘빈 라덴이 9.11 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를 한 가지라도 제시하면 그를 인도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오마르 정부가 실제로 그를 미국에 인도할 수도 있다는 정보를 포착하자 마자 당황한 나머지 화급하게 쳐들어 간 것이 이 전쟁이다. 9.11 공격이 일어나고 불과 26 일 만 인 2001 년 10 월 7 일의 일이다.

부시 정권은 애당초부터 빈 라덴을 체포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눈치 없는 수색부대가 그를 어디서 잡아오기라도 할까봐 걱정이었다. 오마르 정권 전복과 친미 괴뢰정권 수립이 진짜 목적이었던 이유도 있지만, 당시 미국은 빈 라덴이 9.11 과 관련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 (solid evidence)를 한 조각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빈 라덴을 찾기보다는 오마르를 비롯한 탈레반 정부의 주요관리들을 색출, 사살하는데 전력을 집중했다. 그들의 도주로 와 은거지가 될만한 지역에는 예외 없이 무자비한 공습을 퍼부었다. 이 과정에서 수도 카불을 비롯한 수 많은 도시들과 마을들이 잿더미로 변했고, 5 백 여 만 명이 전쟁난민이 되어 길거리로 쫓겨났다. 미군과 동맹국 군대의 무차별 융단폭격으로 사지가 절단된 채 길바닥에 나뒹군 수 만 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의 시체 썩는 냄새가 6 년 째 이 나라 전역에서 진동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은 이 두 전쟁 모두에 미국의 동맹국으로 참전하고 있다. 아마 샘물교회나 한민족 복지재단은 탈레반을 토라보라 산중에 고립된 채 가끔 테러나 일삼고 있는 소규모 반군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오해가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그게 FOX 나 CNN 같은 서방매체들이 심어온 아프칸 전황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 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아프칸 국민의 절대다수가 현재의 카르자이 괴뢰정권을 지지하지 않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침략자 미국을 도와 군대를 파견한 국가의 민간인들이 몰려와서 이 괴뢰정권과 외국군대의 보호아래 벌이는 활동 역시 적대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군대와 괴뢰정권은 절해고도나 다름없는 수도 카불만을 간신히 장악한 채 그나마 최소한의 치안유지도 하지 못해 안절부절하고 있는 상황이다. 동맹국의 무장병력 조차 외곽 거점으로 이동할 때는 육상운송수단이 아닌 공격용 무장헬기나 수송기를 이용해야 한다. 이런 판국에 적성국의 민간인들이 대형관광버스를 전세 내 가장 위험한 루트를 이용, 칸다하르 까지 장거리 육상여행을 시도했다는 것은 백 번을 다시 생각해도 이해가 안가는 경솔한 행동이었다. 그들의 행동에 전 세계가 한심해 하고, 국민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샘물교회와 피랍자들은 물론 우리 기독교인들 모두 이 당연한 국민들의 분노를 야속하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석방 협상에서 오간 조건들과 비공식적으로 논의됐던 다른 대책들이 피랍자 본인들만이 아닌 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과 안위와도 직결되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가 비록 아프칸 사태를 보는 관점은 서로 달랐어도 이 점에서는 견해를 일치하고 제각기 다른 입장에서 피랍자들과 소속교회를 야박할 정도로 비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예로 탈레반의 모든 유격부대에게 외국인 납치를 지시한 탈레반 군 사령관 만수르 다둘라가 다름아닌 지난 3 월 이태리 기자 다니엘레 마스트로자코모와 교환된 석방 수감자라는 사실은 ‘사건의 연쇄성’ 과 관련해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정보의 부족이 고집이나 독선과 결합할 때 대죄(大罪)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으로 증명된 셈이다. 아직 진행 중인 사건이므로 단언하긴 이르지만 인질 사건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가 가장 크게 얻은 것은 국가적 자정능력에 대한 대외신인도 라고 본다. 황우석 사기사건 이래 두 번째다. 이게 또 무슨 소린가 하고 의아해 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당파와 입장을 떠나 논리적인 사고를 해 주기 바란다. 세계는 인질사건 자체보다도, 한국 개신교의 공격적 해외전도행위를 비판하는 한국 국내의 압도적 여론을 경이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를 크게 보도했다. 한국사회의 이런 의외의 여론은 대체로 팔이 안으로 굽는 전통이 강한 이슬람 국가의 국민들에게 특히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한국 정부의 비교적 성실한 협상자세와 함께 그 협상자세의 신뢰성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준 한국사회의 준엄한 개신교 비판 여론이 탈레반 지도부의 인질 운명 결정에 긍정적인 작용을 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한 번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자. 특히 이 전쟁을 일으킨 미국에 대한 한국 국내의 근원적 책임추궁 여론은 그들의 입장을 ‘적성국 포로들에 대한 보복 응징’에서 명분확보와 정치적 프로파겐다 쪽으로 돌려 놓는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The decision to free the pair had been made by the Taliban leadership council, headed by Mullah Mohammad Omar, as a gesture of goodwill towards the Korean people and South Korean diplomats negotiating for the hostages' release.”

직접 대면 협상 시작 직후 탈레반 대변인이 한 말이다.

‘한국 국민들과 협상단을 향한 탈레반 지도위원회의 선의의 표시’ ‘한국 국민과 탈레반의 좋은 관계를 위하여’ (Sake for good relationship between Korean people and Taliban) 등의 우호적인 표현이 탈레반 대변인을 통해 나온 것은 한국 국내에서 미국책임론이 제기된 직후였다. 이 같은 발언들은 ‘인질들의 기독교 선교행위를 적대적 선전포고로 본다’는 종래의 입장을 뒤집는 변화로 이 때부터 인질 살해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가능하게 했다. 만일 한국의 주류 여론이 ‘악마가 따로 있나’ 의 필자 김x길 씨나, 순교자론을 펼친 신문로 S 교회 이x영 목사 류의 주장으로 도배됐더라면 탈레반 지도부가 입장을 변화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탈레반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고 이념 형 원칙론자들 이기는 하지만 5 년간 한 나라의 운영을 담당했던 정치집단이고, 미국의 석유메이저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을 정도로 실리적 유연성도 갖춘 조직이다. 이런 그들이 한국 국민의 여론 동향을 파악하지 않았을 리가 없고, 그 여론동향을 근거로 한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결국 팔을 안으로만 굽히지 않은 우리의 냉정한 이성이 이들의 생명도 구하고 국가 공동체의 체면도 살리는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나는 믿는다. 앞 뒤 분간 못하는 천둥벌거숭이들처럼 주류여론의 중심에 있는 진지한 비판론들까지 함부로 반기독교 세력의 준동으로 몰아 부쳤던 보수 기독교인들은 이 점을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