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1일 기윤실 비전워크숍이 필그림하우스에서 열렸습니다. 공동대표와 이사들, 그리고 실무자들이 모여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교제하며 기윤실의 지난 날을 되돌아보고 재출발하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필그림하우스는 기윤실 공동대표이신 이동원 목사님이 사역하는 지구촌 교회의 영성센터인데 물 맑은 가평 수덕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루밤을 지내면서 나에게 ‘필그림 하우스’는 마치 기윤실의 순례의 여정을 풀어나가는 어떤 암호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녁 시간 이동원 목사님이 직접 환대하시며 일일이 필그림 하우스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설명해주셨습니다. 기독교 영성의 풍성한 전통을 담은 다양한 영성수련의 공간들과 자연친화적이고 미적인 감각을 지닌 현대식 건물은 우리들의 감탄을 자아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풍성하고 맛깔스런 만찬은 우리들의 마음을 녹여 이미 축복스런 금요일 밤을 예고해주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몇몇 분과 나눈 따뜻한 대화는 만남의 소중함과 서로에 대한 축복의 마음을 깊이 느끼게 하는 향긋한 ‘성도의 교제’였습니다. 특히 워크숍을 시작하면서 특별공연을 하였는데 세 분의 청년 음악가들이 선사한 바이올린, 플롯, 건반악기가 합쳐진 선율의 삼중주는 우리의 마음을 아늑한 은혜로 만져주었습니다.

‘워크숍(Work-shop)’은 말 그대로 ‘공부하고 토론하고 치열하게 논의하는 자리’라고 생각하는 나의 편견을 깨뜨리고 처음부터 쉼과 나눔, 따뜻한 마음이 가득하였습니다. 밤을 밝히며 진행된 비전워크숍은 말씀 나눔, 기윤실 브랜드 컨설팅 보고와 토론, 휴식과 환담, 기윤실 운동의 방향에 대한 토론, 사랑방 교제 등의 순서로 빡빡하면서도 심도 있게 짜여 졌습니다.

말씀(비전메시지)

잠깐의 쉼의 미학(막 6:30-31)이란 제목의 이동원 목사님의 메시지는 일과 쉼의 균형에 대해 우리 모두에게 상쾌한 도전을 주었습니다. 쉼(Rest)는 세 가지 차원이 있는데, 먼저 Reflection으로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차원, 그리고 현재를 새롭게 하는 Refresh의 차원, 아울러 새로운 미래를 다시 창조하는 Recreation의 의미가 있다는 요지의 말씀이었습니다. 특히 쉼에는 영성적 의미도 있으며, 윤리적 의미도 있음을 역설하셨습니다. 이 목사님의 말씀 중에 “기윤실이 그 동안 예언자적 역할을 잘 하여왔는데 앞으로는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제사장적 사역에 부름을 받고 있다.”는 비전의 방향타를 언급하신 것이 제 마음에 깊에 새겨졌습니다.

기윤실 브랜드 컨설팅

윤선민 대표(엣지본)의 컨설팅 중간보고는 보기 드물게 명료하고 영감 넘치는 프리젠테이션이었습니다. 윤 대표님은 기윤실을 둘러싼 이사진, 후원자들과 회원, 실무진, 대중의 역학관계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면서 보다 강건하고 단순하고 효과적인 조직과 운동이 되도록 방향을 제시해주었습니다. 특히 기윤실의 비전과 사명, 핵심가치를 분명히 하고 보다 단순히 할 것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라는 우리의 이름에 담겨 있는 종교성(기독교)보다 신앙의 본질(그리스도)을 보다 강조하는 방향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고, 특히 참가자들이 기윤실의 좌표를 잘 이해하고 자기의 생각을 솔직히 드러내고 활발한 토론을 할 수 있도록 등불 역할을 잘 하신 것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고액의 컨설팅 비용을 일체 받지 않고 자원으로 봉사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우리 모두는 가슴 뭉클함을 느끼며 감사해 하였습니다.

 

방향성에 대한 토론

임성빈 교수님(공동대표)의 발제는 기윤실이 그 동안 걸어왔던 자취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을 구수하게 말씀해주셨고 특히 우리가 몰랐던 구수한 뒷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특히 더욱 확장된 사회적 책무를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지도력 배양, 대중적 물리적 지지기반 확장, 저널리즘과 언론 매체와의 건강한 관계, 기독교적인 차별성을 지니며 시민운동으로서의 연대성을 넓혀나가는 일 등을 핵심과제로 제시하여 주었습니다.

윤선민 대표(엣지본)의 컨설팅 중간보고와 임성빈 대표의 발제에 이어 각각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는데 참가자 모두는 한분도 빠짐없이 기윤실의 정신과 꿈을 이루어나갈 시대적 과제와 방향성에 대해 기탄없이 말씀을 나누어주셨습니다. 토론 내내 웃음과 위트가 가득하였고 우리 모두는 서로의 생각에 귀 기울이며 모두가 하나가 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물론 첨예한 논쟁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논쟁이 아니라 깔끔한 토론과 브레인스토밍으로 이어진 것은 모두의 성숙함 때문처럼 보였습니다. 이 짧은 지면을 통하여 여러분들의 소중한 발언을 다 담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이런 아름다운 가슴과 깨끗한 지성의 소유자들이 우리 기윤실에 함께 하는 것이 축복이요 기윤실의 미래를 열어갈 큰 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방 나눔

밤 12시가 거의 다 되어 양세진 사무총장을 비롯한 간사님들과 몇몇 이사님, 운동본부장들이 ‘사랑방’에 모여 밤 2시 너머까지 사랑방 나눔을 하였습니다. 모두가 무언가 진지하고 속마음까지 다 털어놓는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생각되는데, 사실을 고백하자면 저는 자리에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만 있었습니다. 한참 잠들다가 웃는 소리에 눈을 떠보면 서로의 기발한 표현에 맞장구를 치면서 웃음을 터뜨리고, 또 다시 졸다가 잠들면 모두가 폭소를 터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했으며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솔직히 기억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밤을 밝히며 부대끼는 가운데 무언가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저는 졸리는 눈을 껌벅이며 견디었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계속 앉은 채로 졸며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옆 자리에 앉은 백종국 교수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나의 숙면을 방해하였다는 것과 송인수 선생님이 참 많은 말씀을 하셨다는 것, 김은혜 교수님이 대화의 Race를 주도하였다는 느낌과 모든 분들이 참 열띤 대화의 주인공이었다는 느낌이 지금 떠오를 뿐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내내 졸기만 한 사실이 약간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참여하기를 잘 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느냐하는 것 못지않게 ‘함께 함’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날 일정을 보낸 후 참가하신 분들과 더욱 친해졌다는 이 느낌은 워크숍을 통해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일 것입니다.

금요일 저녁 회의를 시작하면서 우창록 이사장님이 던지신 가벼운 일갈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모여서 회의도 해야 하지만 많이 놀아야 합니다. 함께 놀면서 서로 친해져야 합니다.”그렇습니다. 우리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윤리’를 강조하고‘실천’에 앞장서고 ‘운동’을 열심을 내는 만큼 동역자된 모든 회원들과 사역자들이 함께‘교제’하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 흩어져 예수님의 정신을 살아내고 실천하는 만큼 함께 모여‘기도와 사랑과 실천의 힘을 모으는 현장’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룻밤 만에 기윤실의 비전을 다 말할 수도 없었고 어떤 비전을 한 문장으로 다 정리할 수 없었지만 우리들의 가슴에는 비전의 씨앗이 심겨졌고 더욱 분명하게 자라남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윤실의 순례에서 필그림 하우스는 소중한 한 가지 진리를 던져 주는 듯합니다. 우리 기윤실 운동 역시 순례의 여정에 있으며, 모든 회원이 아름다운 순례자들이며,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 되어 함께 손에 손잡고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그 날 비전워크숍이 열린 ‘필그림 하우스’는 하나의 비유처럼 기윤실의 여정에 소중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