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코너-538-

주의 분노가 웃사를 치다

(삼하 6: 1-8)

 

명예이사장 장한국 목사.jpg

웃사가 하나님 궤 실은 수레를 몰더라(3).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상징과 임재를 가리킵니다. 이미 삼상6장에서 젖나는 두 암소가 하나님 궤를 바로 주님의 인도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웃사는 이 하나님 궤를 몰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몰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시지요, 하나님이여 저렇게 하시지요.’ 라고 기도하며 신앙생활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목표와 그 갈 길을 정하여서 하나님께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마치 하나님을 몰 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갈 길을 미리 아십니다. 또 그 목표지를 먼저 정해 놓으셨고 그 길로 인도하시며 우리를 연단도 하시며 절대 불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23:10-14). 주님도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웃사는 이런 영의 눈이 감겼고 오직 혼적인 신앙이요, 자기 중심적인 인본적 신앙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5절에 아히오는 하나님 궤 앞에 가더라.’고 합니다. 주님 앞에서 가면서 주님을 이끌겠다,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충성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주님 앞서가는 시몬 베드로같이 말입니다(21:20-22).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로지 주님이 앞서가신 그 발자취를 뒤따라야 됩니다.

 

또 내 힘, 내 열성이 아닌 내 속에 계신 주님이 역사하는 그 역사를 따라 수고하는 것입니다. 또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들이 뛰고 하나님의 궤가 흔들리자 웃사가 하나님의 궤를 붙잡았습니다. 갑자기 왜 소가 뛰나요? 앞서가시는 주님이 뛰게 한 것이고 하나님의 궤를 흔들리게 하여 웃사나 아히오가 떨어지라는 것입니다. 몰거나 앞서지 말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웃사가 하나님 궤를 붙잡았지요. 왜요? 하나님 궤, 즉 하나님이 땅에 곤두박이로 떨어질까 도운 것이지요. 즉 하나님을 구하려는 것이지요. 어찌 이것이 될 말인가요? 이에 주의 분노가 발하였으니 하나님이 웃사를 치시므로 죽더라. 왜 주님이 치셨나요? 대상13:10에서 웃사가 하나님 궤를 손댔기 때문입니다. 절대 손대면 안되는 것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더 깊은 이유는 하나님이 이미 영이 죽은 웃사를 살리려는 그 사랑을 거부하고 오히려 더욱 악하게 나왔기 때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