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성령님으로 오신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라.

 

칼럼리스트 송택규 박사.jpg

 믿음은 우리의 생각 속에 일어나는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것으로서 어떤 사물에 대한 확신, 결심을 말하는데, 생각만 했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목적을 위한 계획일 수도 있고 마음의 결심 단계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생각한 믿음을 가지고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행함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아파트 10층에 사는 사람이 나는 집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하고 아파트 정문에 그대로 서있다면 그가 자기 집에 들어갈 수가 있겠는가. 갈 수 있다는 믿음은 생각 속에 일어나는 확신이다. 확신인 믿음만으로 행동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믿음은 그 일을 행하기 위한 자기의 신념이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물론 집에 가야겠다는 믿음(생각)이 없었다면 행위도 안 일어나고 집에 갈 수도 없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도 바울은 근본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믿음을 강조한 것이지 행위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17절에서 참 복음을 들으면 참 믿음이 생기고, 참 믿음이 있으면 행함이 따르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즉 믿음은 어떤 목적을 이루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작을 할 수 있는 열쇠(key)로서 이 열쇠를 사용하는 행위(Action)가 필요한 것이다. 이 말씀 속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과 행위의 양면성을 강조한 것이다. 믿음은 즉 행위임을 말한 것이다.

 

3) 구원에 대한 혼란

성경에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도 있고,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도 있으며,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도 있다.

 

(1) 믿음의 구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2:8-9)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1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3:27-28).

 

(2) 믿음과 행함을 동시에 강조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26) 이 말씀은 언뜻 보면 행함을 강조한 듯하나 이는 동시에 둘 다 강조한 말이다. 이 말씀을 거꾸로 말하면 믿음이 없는 행함은 죽은 것이다가 된다. 그러니 믿음과 행함은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7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이 말씀의 뜻도 믿음대로 행한 자를 말하고 있다.

 

로마서 1017-18절에서 사도 바울이 한 말씀을 살펴보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10:17-18). 이 내용은 참 복음을 들으면 참 믿음이 생기고 참 믿음이 있으면 행함이 따르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말씀들이 다 각각 다른가. 아니다. 이 말씀들의 의미를 볼 때 그 정신과 의미가 동일함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이 행위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니다. 기독교에서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전제하에서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16:31).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살전 5:9).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3:1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그러므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아무리 구원을 얻기 위하여 어떤 선행을 하거나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므로, 사람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

 

2.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학설의 배경

오늘날 무엇으로 구원을 얻느냐 하는 문제는 학자들 간에도 이견이 있을 수 있고 종파 간에도 이견이 생겨 가톨릭, 알미니안주의, 개신교 등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개신교 측에서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추종해왔다. 이 교리를 수용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16세기경 독일의 가톨릭 신부이자 신학교수였던 루터는 로마서 327-28절에서 강한 영감을 받고 비텐베르그 성문에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발표함으로써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고발하고, 종교혁명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그때 종교개혁의 기치로 내세운 표어가 오직 믿음’(Sola Fide)이었다. 종교개혁을 외치고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온 개신교의 캐치프레이즈가 오직 믿음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1) ‘오직 믿음’(Sola Fide)의 폐해

그러나 오직 믿음이란 구호는 오해를 낳게 되었는데, 이 구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믿음의 중요성을 너무나 강조한 나머지 행위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사도 바울의 오직 믿음이란 말은 행위를 부정한 것이 아니요,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뿐인데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수 많은 사람들은 행위는 어떻게 되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단편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