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소리에 통곡한 사람들(이종남 목사)

마태복음 26장 31절부터 35절까지의 내용은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할 것을 예언하신 내용이다. 이하 막 14:27~31, 눅 22:31~34, 요 13:36~38을 참고하면 사복음 모두 이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다 도망갈 것을 예고하신 말씀이다. 그 중에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한 것은 물론 거기에 있었던 모든 제자들이 예수에게 다짐했다.

그런데 마 26:69~75절에 보면 베드로가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라. 처음에는 네가 하는 말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그리고 두 번째는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완강히 부인했고 세 번째는 아마 예수 예자도 모른다고 했을 장면이다. 그런 후에 닭소리를 듣고 나가 심히 통곡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왜 닭의 울음소리에 베드로는 심히 통곡해야만 했는가? 그 닭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가끔 길가다가 성당이나 고전풍의 예배당 건물을 보면 지붕 위에 닭의 형상이 있는 건물을 보았을 것이다. 닭의 형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기에 달아 메어 놓았을까? 그 닭이 우상이 아니겠지만 왜 달아매어 놓았을까? 기독교의 상징이나 아니면 회개의 형상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것이다.

성경에 나온 ‘닭’을 다 살펴봐야 하겠지만 ‘닭’이라고 하는 단어를 추적하면 ‘산’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로 나타난다. 또한 ‘산’이란 단어를 추적하면 ‘하늘’이란 단어와 동의어 표현하고 있다. 닭이 산에도 살고 하늘에도 산다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자연적인 의미부여는 아닐 것이다. 분명히 우리들에게 깨닫게 하시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창세기 19:24절에 보면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라는 문구가 있다. 하늘은 곧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하고 있다. 시편 115:16절에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라는 문장을 살펴봐도 하늘은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한다. 즉 주기도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문장도 구약성경의 바탕에 의한 기도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하늘에도 분명히 하나님이 계신다. 그것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님을 전제로 하고 이 글을 봐야 한다. 과연 하늘은 우주 만물에 속한 가시적인 현상만 주장할 수 있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은 우주만물도 포함할 수 있지만 내 안에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내 안이 하늘이라고 하는 상태를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베드로가 부인하고 난 뒤 울었던 닭의 존재는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알았던 베드로는 심히 통곡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내용을 자주 만나는 사람에게 전하면 눈물을 흘리는 분들을 자주 본다. 그러면서 이런 고백을 한다. 저는 베드로가 부인했을 때 울었던 닭이 꼬꼬댁 닭으로만 알았지 하나님이신 줄 전혀 알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내 안에 하늘의 존재로서 하나님이 계심을 깨닫는 자가 주기도문의 첫 문장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높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부를 수도 있지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얼마나 친밀감이 있지 않은가? 교회학교나 초신자들에게 이런 내용을 올바르게 가르쳐 보라 얼마나 기도를 은혜롭게 하는지 관찰할 수 있다.

그 당시 베드로만 예수를 부인했을까? 그리고 닭소리를 혼자만 들었을까? 예수를 부인한 모든 사람들 하나님이신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심히 통곡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이신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면 가만히 있지 말고, 닭소리에 귀찮아  하지 말고 땅을 치고 통곡하며 울어야 한다.

그렇게 호언장담했던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 부인했다는 회수보다 부인하게 된 동기와 목적이 무엇일까? 우리도 주님을 버리지 않는다고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 말라. 아마 베드로보다 더 의리도 없이 배반하고 가차 없이 저버리는 냉혹한 사람이 될 가망이 많다. 어쩌면 너무나 많이 배반했기에 베드로처럼 심히 통곡하며 울어야 되는데 울 수 없을 만큼 감정도 없고 그렇게 배반한 기억조차 없다고 발뺌을 할 것이다.

배반이 무엇인지 아는가? 남자들은 바람을 피워도 다시 자기 본부인에게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지만 여자들은 배반하면 자기 본 남편에게 돌아가지 않는 편이다. 복음을 받아들여 생명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세상의 다른 남자들(명예, 인기, 돈, 권력, 기타 등등)에 빠져 사마리아 여자처럼 남편이 여러 명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남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닭소리를 들어야 한다. 옆집에서 들리는 닭이 아니라 내 안에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울부짖음인 닭의 소리를 듣고 땅을 치며 통곡하는 자기의 성찰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종남 목사는 현재 장로교 연합신문 편집국장으로 재직중에 있다.